고독한 실존자, 비상 그리고 대자유

녹색반가사유⑨ 장마의 끝 인욕의 세월 마치고 투명한 날개짓...

정미경 | 기사입력 2007/07/29 [14:34]

고독한 실존자, 비상 그리고 대자유

녹색반가사유⑨ 장마의 끝 인욕의 세월 마치고 투명한 날개짓...

정미경 | 입력 : 2007/07/29 [14:34]
여기, 버려진 한 생이 있습니다. 물위에 버려진 가엾은 한 생의 시작. 부모의 눈길 한번 받아 보지 못하고 그렇게 내동댕이 처진 한 생은 출렁거리는 물속에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멀미부터 적응을 해야 했습니다.
 
흐르는 물 따라 떠돌아 다녀야 했고, 가닿는 모든 곳은 하나같이 낯선 곳, 대부분의 형제들은 이 과정에서 이산가족으로 헤어지고, 그나마 살아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지 알 수가 없어요.
 
▲ 물 위에 버려진 가엾은 한 생의 시작.  (잠자리의 산란)   ©정미경

다행히 수초나 바위틈 사이에라도 자리를 잡으면 행운중의 행운, 하지만 통째로 집어삼키는 천적은 사방에서 이 가녀린 목숨을 집요하게 노리고 있습니다.
 
겨우 살아남은 인연이지만, 먼저 간 이들에게 곡을 해줄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위협은 갈수록 커갑니다. 버려진 고아로서 지독한 추위를 견뎌야 했으며, 나른한 봄날엔 알 수 없는 어딘론가 또 흘러가야만 했지요.
 
▲ 아득한 곡절과 사연에서 겨우 살아남은 몸.(잠자리 애벌레)     © 정미경

때로는 지루한 여정에 답답해하기도 하고, 급한 물살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휩쓸려가기도 했던 헤아리기도 아득한 곡절과 사연에서 겨우 살아남은 몸. 그렇다고 쉴 수가 없습니다.
 
긴 세월을 그러한 혹독한 시련 속에서 보내야만 했던 한 생이지만, 추적거리는 긴 장마는 왜 그리도 지루 하던지….
 
오로지 홀로 그것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외로움을 도대체 어느 누가 알아준단 말입니까. 자신의 목숨을 노리며 살아가는 생들은 환호작약하며 있을 텐데.
 
▲ 긴 장마가 끝나자 탈피를 거쳐 날 준비를 합니다.     © 정미경

 물속에서의 한 생이 가혹함의 연속이었다면, 쏟아지는 장마는 이 가엾은 존재에게는 공포 그 자체입니다. 그렇다고 함께 할 그 누구도 없으니 더더욱 외로울 수밖에. 과연 그에게 부모가 있었던가.
 
오로지 장마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인욕의 세월을 저며 오는 외로움으로 지켜  보아야만 했습니다. 얇게 썬 슬픔을 켜켜이 쌓으며 말이에요.
 
그리고 장마는 끝났습니다. 한번도 경험 해보지 못한 따가운 햇살 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상, 전혀 듣도 보도 못한 딴 세상입니다. 그래서 지난 시기의 외로움을 벗고 섧디 설운 누더기를 던져 버리기로 하였어요. 탈피를 거쳐 날기 시작합니다.
 

▲ 선형의 몸체를 직교로 가로지르는 투명한 날개, 그것을 교차로 파닥거리며 대자유를 만끽합니다.     © 정미경

 선형의 몸체를 직교로 가로지르는 투명한 날개, 그것을 교차로 파닥거리며 대자유를 만끽 합니다. 움직이는 모든 것은 망막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찰나를 위해 살아온 지금까지의 한 생, 그러기에 날개를 접을 수 없는 운명까지도 받아들이며 대자유를 호흡합니다. 물속에서 일렁거렸던 지난 생을 뒤로 하고 광휘로운 햇살 속을 하늘거리며 유유자적합니다.
 
▲ 상하 좌우 전환이 자유자재하며 겹눈에 머리회전까지 가능하니 3차원의 공간은 바로 이들이 주인공이지요.     © 정미경

 상하좌우 전환이 자유자재하며, 회전과 후진은 물론이고 정지 또한 마음대로입니다. 겹눈에 머리회전까지 가능하니 3차원의 공간은 바로 이들이 주인공이지요.

가슴 졸이며 시달렸던 지난 세월을 보상 받기라도 하듯, 닥치는 대로 잘근잘근 씹어 삼킵니다. 슬픔을 잘근잘근 씹어 삼키며 외로움을 아작 아작 씹어 삼킵니다.

불가사의한 선회비행을 하는 그 앞을 가로막는 장애는 이제 아무것도 없어요. 고독한 실존자의 대자유가 이렇듯 자재할까! 
 
▲ 고독한 실존자의 대자유가 이렇듯 자재할까!     ©정미경

차례진 유일한 여름, 무리자유 속에서 짝을 만납니다. 그리고 허공에서의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온몸을 기울여 혼신의 정성으로 치루는 이 합궁은 사실상 유일무이한 사랑이지요. 이것은 누가 뭐래도 완성된 밀교 수행의 극치입니다.
 
▲ 온몸을 기울여 혼신의 정성으로 치루는 이 합궁은 사실상 유일무이한 사랑이지요.     © 정미경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부모가 그랬듯이 물위에 산란을 한 후 아무런 미련도 없이 사라집니다. 절정의 순간에 그렇게 보란 듯이 사라지지요.

자신의 부모가 그래왔듯이 자신의 분신을 물위로 떠내려 보낸 후 그렇게 사라집니다. 버리고 사라집니다. 끈길 듯 생사가 아슬하게 이어지고, 표표한 인연이 포개져 완성된 진화를 장식해나갑니다.
 
▲ 고독한 실존자의 대자유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잠자리는 수행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나투신 부처입니다.     © 정미경

하늘을 나는 잠자리를 수서곤충이라고 부르고, 3억 년 전에 진화를 멈춘 개체종으로 이르는 것은 질투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억지일 뿐입니다.
 
고독한 실존자의 대자유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잠자리는 수행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나투신 부처입니다.
 
아제 아제 바라승 아제 모제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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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요비 2007/08/02 [19:33] 수정 | 삭제
  • 빤쮸, 혹은 팬티
  • 불우선생 2007/08/01 [23:08] 수정 | 삭제
  • 매미소리 물고 잠자리 날아든다/장맛비에 물러터진 복숭아처럼/꼭지 잃은 말들이 썩어가는 동안/삼 억년 이상의 아름다운 여행/멈추지 않은 너를/기다려 왔는지도 모른다//
    교정지와 출판사와 제본소를/오가는 사이/뜨거운 햇살과 내통하듯/비틀거리던 생각을 한다/짧은 그늘 비껴 걸으며/눈빛 붉어지고/입 안엔 단내 풍겨 나왔다//
    여름 물가에서 차례차례 껍질을 벗고/오늘 아침 창가에서/투명한 그늘 펼치는 잠자리떼/내 발목에도 말랑한 피가 도는 것이다/지금 나는/겹눈 훔쳐 달고/검붉은 자루 속을/빠져나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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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외우고 있는 詩인데 잠자리가 사진에 등장하여 한 번 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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