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망각의 강으로 ‘따로 또 같이’ 흘러

[탐방여행-배꼽마당②] 정배리 마을공동체 싹틔운 컨테이너책방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12/05/05 [14:01]

낯선 망각의 강으로 ‘따로 또 같이’ 흘러

[탐방여행-배꼽마당②] 정배리 마을공동체 싹틔운 컨테이너책방

최방식 기자 | 입력 : 2012/05/05 [14:01]
[지난 글에 이어] 배꼽마당 대표 백영화씨의 고향은 서울 금호동. 남편이 직장을 서울에서 포천으로 옮기며 남양주로 이사했답니다. 도시 보단 시골이 좋아 기꺼이 응했고. 둘째아이 취학문제로 고민하다 정배리로 찾아든 것이었습니다. 그는 한 때 가계에 좀 도움이 될까 싶어 숲해설사 활동도 했지만 지금은 학부모회와 마을총무 일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남편 벌이로 살고 있죠. 여긴 도시와는 살림살이가 좀 다릅니다. 마을총무와 배꼽마당 대표 일을 본다고 마을 주민들이 먹을거리를 곧잘 챙겨주거든요. 된장에 고추장... 도시에 살면 모두 생돈 들여 구해야 하는 것들이죠. 품질 좋은 건 말할 것도 없고요.”

그는 둘째 아이에게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아이 덕에 이렇게 좋은 곳에 정착하게 됐으니 늘 고맙게 여겨야죠. 게다가 이 좋은 마을이 아이들의 고향이 된 셈이니 그것도 큰 복이랄 수 있고요. 이웃사촌이 다 좋으니, 인제 여기서 쭉 살아야겠죠?”

학교살리기로 시작해 마을공동체 운동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건 서울사람들이 전원주택지로 선호하는 이곳 서종면의 특성도 없지 않았지만 주민들의 배려도 큰 몫을 했답니다. 농촌·시골마을에 가면 어디나 그렇듯 외지인들이 나타나면 원주민들은 의혹의 눈초리를 갖기 일쑤고 곧 소통단절로 이어지게 마련인데... 이 마을에선 그걸 극복한 것이죠.

“어르신들, 저희를 어여삐 봐주신 거죠”

“학교 때문에 들어온 이주민들이 40%쯤 될 겁니다. 마음을 열지 않던 원주민들이 학교살리기 운동을 거치며 달라지기 시작했죠. 다가가려는 눈물겨운 노력과 그 진정성을 원주민들이 알아준 것일까요? 마을문화운동을 벌이며 섞이고 어울리는 우리들을 어여삐 봐주신 거죠.”
 
▲ 마당지기 백영화씨가 방문자에게 배곱마당 운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컨테이너를 개조한 이 책방은 정배리 한적한 산꼴마을 한 가운데 느티나무 아래 덩그러니 서 있죠.     © 최방식

▲ 모내기를 하려고 써레질을 마치고 물을 가둬놓은 무논에 반사한 찬란한 봄볕이 배꼽마당 책장사이로 파고듭니다.     © 최방식



배꼽마당 일이 이제 정배리에서는 이주 정착한 학부모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주민, 교사까지 흔쾌히 참여하거든요. “제가 배꼽마당을 월~목 지키는데, 토요일에는 정배학교 교사 한 분이 지켜줍니다. 과거 이곳 마당지기를 하다 인턴교사로 갔는데, 토요일 자원봉사를 해주죠. 은퇴한 교장 선생님 한 분도 책을 모아주는 등 늘 지원해주시고요.”

물론 배꼽마당의 최대 주인은 마을 아이들. 그들은 학교를 가다 오다, 아님 동네 어디서든 놀다가 그냥 들린답니다. 물먹으러 오고, 심심해서 오고, 늘 그렇게 찾아오는 것이죠. 그들이 언제 올지 모르기에 자물쇠도 아예 번호열쇠로 바꿨답니다. 언제든 들어올 수 있도록 하려고요.

학교에 도서관이 있고 책도 거기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학교도서관엔 방과 후 또는 쉬는 날 늘 들를 수가 없죠. 친구가 있어 늘 재미있고 엄마들이 가끔 맛난 걸 싸다주는 이곳과 비교할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러니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배꼽마당을 더 좋아 할 밖에요.

어른들도 마을회관이 있지만 이곳으로 자주 외출(?)을 온답니다. 영화·연주회·전시회, 그리고 잔치가 시시때때로 열리기 때문이죠. 아들·며느리와 손자손녀를 볼 수 있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문화를 엿보고 배울 수 있기도 하고요. 세대를 뛰어넘는 남녀노소 소통공간이 되고 있는 셈이죠.

방문자의 직업병(?)에 마당지기가 취조(?) 당하느라 고생인데, 주민들이 쉴 새 없이 들락거립니다. 이장부터 학부모들이 하나 둘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합니다. 방문자와 마당지기 대화가 지쳐갈 즈음,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둘러보니 꼬마 5명이 과학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학부모 한 명이 교사를 맡고요.

“목말라도 심심해도, 늘 그냥 놀러와요”

“(교사=학부모)여기에 바퀴를 달아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아이들 여럿이 제창)당연히 달아야죠. 모터로 굴러가게... (한 여자 아이)저는 안 달았으면 좋겠어요... (교사)자 그럼 다수결에 따라... 그리고 여기 꼬리 부분에는 볼트를 끼워 좀 더 단단하게 고정하고...”

▲ 책장너머 논배미. 소통이 이뤄지기까지 원주민과 이주 학부모 사이가 꼭 그 모습이었을까요?     © 최방식

▲ 산·논·마을 안 배꼽마당 하나 가득한 책장. 마을 어르신들이 드디어 이 곳 배곱마당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 최방식


조금을 더 앉아있자니 방문자와 마당지기 탁자에 샌드위치가 하나씩 놓입니다. 학부모 한 분이 아이들이 배고플 때라며 음식(빵과 음료)을 준비해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지역 유기농 재료로 만든 ‘로컬·슬로우 푸드’입니다. 샌드위치 한쪽과 발효 음료수 한잔... 맛요? 더 말해 뭐하겠습니까?

컨테이너책방 한 귀퉁이. 방문객이 열정적 대화(?)에 지쳐 가는데도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놀이, 학부모의 발걸음은 멈추질 않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며 멋쩍게 “근처 식당이 없냐”고 물으니, 눈치 빠른 마당지기 “함께 갈게요”라고 가방을 챙겨듭니다. 방문자 꼬임에 말려 서너 시간 떠들었으니 목도 말랐을 겁니다.

마을 위·아래 두 개의 슈퍼가 있는데 위쪽으로 가잡니다. 시골이라 멀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차로 불과 2~3분 거리. 중미산으로 향하는 어느 산중턱에 자리한 아늑한 가게. 안팎에 불이 다 켜져 있는데 주인은 안 보입니다. 마당지기에게 물으니 아래쪽 펜션도 운영하는데 거기에서 기르는 개가 새끼를 낳아 갔다 오는 중이라네요.

그렇게 계곡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풍광좋은 슈퍼에서 막걸리 판이 벌어졌습니다. 도시촌놈에게 가장 궁금한 건 역시 이주해 온 이들의 삶. 역시나 시기·질투를 부릅니다. “난 언제 이런데 살아보나요”라고 하소연하니, “그러지 말고, 당장 오세요”라고 염장(?)을 지릅니다.

지난 2년간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답니다. “처음에는 주도하는 이가 없어 서로 눈치 보며 1년여를 보냈습니다. 그 땐 정말 힘들었죠. 주민들도 ‘저것들이 뭔 짓을 하는 지, 언제까지 저러는지 한 번 보자’는 식으로 뒷짐 지고 주시하고 있었고요. 다행히 학부모들은 지치지 않았습니다. 운영하는 공간도 유지했고요. 주민들도 결국 마음을 열더군요.”

정배리 슈퍼에서 막걸리판 벌어지니

술기운이 올랐을까요? 마당지기 목소리가 커집니다. 오래전 추억을 꺼내려니 가슴 속 생채기가 아린 모양입니다. 뒤풀이는 여행에 동행한 친구 신순봉씨(내일신문 퇴직)가 주도했습니다. 운전을 해야 하는 슬픈(?) 처지에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려니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 종이배로 만든 집단창작인가요? 아이들, 학부모,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하나씩 만들어 붙였을 겁니다. 갠지즈 강에 소원을 담아 촛불을 붙여 ‘디아’를 띄우듯이...     © 최방식

▲ 기자가 마당지기를 취조(?)하는 동안 과학놀이에 열중하는 동네 아이들. 배꼽마당의 당당한 주인들이랍니다.     © 최방식


마당지기의 인생을 맨 정신(?)에 들으려니 그게 좀 그렇습니다. 불콰해진 동행자가 자신의 ‘옛 고생’으로 ‘맞장’을 떠주니 그나마 ‘면피’(?)했다고 위안 삼았습니다. 학생시설 남동생과 아버지의 느닷없는 죽음, 어머니의 고생, 결혼 전 시댁의 반대와 이후 애틋한 시아버지 사랑.

누구나 그렇지만 그도 많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둘은 약간의 술기운에 재밌고도 아픈 이야기들을 늘어놨고, 전 ‘깐죽’(?)대는 재미로 그들 곁에 앉아 맞장구를 치고.... 그 덕에 마당지기와 하이파이브를 열 번도 넘게 했나이다. 부디 생채기를 다 치유하길 바랍니다.

둘은 취기에 성동지역에서 사회운동을 했던 기억을 더듬어 동지의식(?)도 찾더군요. 그렇게 옛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타임머신을 타고 어제·오늘을 오가는데, 기자는 슬슬 몸이 떨려옵니다. 취기가 있어 그들은 괜찮았을지 모르나 ‘장단 맞추기 깐죽’으로는 추위를 떨치기 어려웠거든요.

‘며느리(미운)에게 쏘인다’는 봄볕의 강렬한 햇살이 어느새 빨간 노을로 기우는가 싶더니 이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몰려옵니다. 벽시계는 9시를 향하고 있습니다. 반팔에도 더워 초저녁까지만 해도 외투를 벗고 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 막걸리를 마셨는데, 문을 닫고 외투를 입어도 몸이 오들오들 떨립니다.

둘은 취해가는데 맨정신에 깐죽대려니...

슈퍼 한 귀퉁이를 비닐로 막아 식탁을 하나 들여놨는데, 문을 닫아도 추워 둘러보니 위쪽이 조금씩 트였습니다. 서울에서 불과 80킬로미터 남짓인데 내륙·산골이 확실하긴 한 모양입니다. 일교차가 이리 심할 줄 몰랐죠. “여긴 한 여름에도 이래요. 어두워지면 추워서 문을 닫아야 할 정도죠. 에어컨 켤 일도 없고요.”

▲ 과학박스 짜맞추기 놀이를 하며 바퀴아래 쪽에 모터를 달지 말지 토론에 열중인 아이들.     © 최방식

▲ 어느 봄날 문뜩 찾아들어 마당지기를 붙들고 왜 여기 사는지, 여기서 무얼 하는지를 묻다 지쳐 거길 나와 마을 앞 삼거리에 앉아 넋 놓고 바라본 배꼽마당.     © 최방식


미래 비전을 물으니 마당지기 머뭇거림이 없습니다. “제 아이들이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 몰라요. 야생의 삶이 아이들에게만 좋은 건 아닌가 봐요. 저도 남편도 모두 즐겁거든요. 처음 마을공동체운동을 벌일 땐 정말 깜깜했었죠. 늘 머뭇거렸고요. 하지만 이제 깨달은 것 같습니다. 따로 또 같이 간다는 것을요. 때론 어울리고 때론 제멋에 살고. 걱정 붙들어 매기로 했습니다.”

마당지기와 헤어지고 여행자 둘은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산골짜기 마을을 등지고 얼마나 달렸는지 모릅니다. 꿈결, 천상, 아님 무릉도원? 분명 낙원이었습니다. 수중궁궐 같기도 하고. 장마 때면 큰물이 넘쳤다는 ‘무너미’(문호리) 마을을 지나는 데 고요한 호수에 강건너 오색찬란하게 하늘거리는 불빛들이 어서 오라고 유혹합니다.

북녘 금강산에서 발원해 낭천과 모진강이었다가 양평 들어 넉넉해진 품을 자랑하는 북한강. 칠백리 휴전선 한 가운데를 굽이돌아 아픔을 씻어내는 망각의 강. 대성리·남이섬의 젊음을 껴안은 낭만의 강가에 서니, 혈기도 취기도 그리고 잡념도 깨끗이 사라집니다. 자궁 속 생명을 잉태했던 태고의 어머니, 그 강 깊은 곳으로 어느 봄날 여행자는 한없이 빠져듭니다.

여행자는 거기 그 강가에 멈춰서지 않았습니다. 어떤 인연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그랬을 겁니다. 그 어머니의 강이 부서지지 않기를 소망하며 아른거리는 북한강변을 조용히 달렸습니다. 숨도 쉬지 않고서. 백영화씨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여행자 모두에게 이 사랑의 노래를 바칩니다.

어머니의 강에서 울려나는 ‘사랑노래’

“저 어둔 밤하늘에 가득 덮인 먹구름이/ 밤새 당신 머릴 짓누르고 간 아침/ 나는 여기 멀리 해가 뜨는 새벽강에/ 홀로 나와 그 찬물에 얼굴을 씻고/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또 당신 이름과 그 텅 빈 거릴 생각하오.../ 짙은 안개 속으로 새벽 강은 흐르고/ 나는 그 강물에 여윈 내 손을 담그고/ 산과 산들이 얘기하는 나무와 새들이 예기하는/ 그 신비한 소릴 들으려 했소/ 강물 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고/ 내 맘속엔 또 내가 서로 부딪치며 흘러가고.../ 우리 이젠 새벽 강을 보러 떠나요.” <끝>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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