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나물이지만 누구의 땅에 것이더냐"

시로 말한다 "성삼문 형장으로 끌려가며 백이숙제 꾸짖는 시..."

임효림 | 기사입력 2007/08/06 [13:22]

"풋나물이지만 누구의 땅에 것이더냐"

시로 말한다 "성삼문 형장으로 끌려가며 백이숙제 꾸짖는 시..."

임효림 | 입력 : 2007/08/06 [13:22]
▲ 백이숙제가 충절을 지키기 위해 수양산에 들어가 뜯어먹고 살았다는 고사리. 경남하동 고사리농장 홈페이지에서.

 
수양산을 바라보며

수양산 바라보며 백이숙제를 한하노라
주려 죽을지언정 채미(菜薇)를 한단 말이냐.
비록 풋나물이지만 그 누구의 땅에 것이더냐.

이시는 성삼문이 중국에 갔다가 마침 수양산을 지나가면서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성삼문의 충절에 대한 사상을 잘 나타내는 시라고 봅니다. 이정도의 기개와 충절 정신이 있었기에 그는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습니다. 
 
성삼문 그는 이런 시도 지었습니다.
 
擊鼓催人命 
回首日欲斜 
黃泉無一店
今夜宿誰家
 
북을 두드리며 인명을 재촉하네.
머리를 돌려보니 해는 기우는데
황천길은 묵어갈 여관도 없으니
오늘밤은 누구 집에서 잠을 자나
 
이 시는 내용으로 보아 형장에 죽으로 가면서 쓴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전에 오는 말도 그렇고요. 사형장에 죽으로 가는 사람이 이런 정도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성삼문입니다. 당대 누가 뭐라고 해도 최고의 학자였든 그가 충정이라는 선비의 가치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능지처참을 당하는 형장으로 가면서도 태연하고 당당하였습니다.
 
며칠 전에 우리는 인터넷저널의 식구들이 번개 팅으로 모여서 콩국수를 먹었습니다. 그때 신순봉 선생과 이야기 하다가 백이숙제 이야기가 나왔고, 백이숙제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이야기로 화제를 삼아 분분하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중국에는 충절을 상징하는 인물로 백이숙제가 있고, 우리 조선에는 성삼문이 있는데, 그런 성삼문이 백이숙제에게 '왜 수양산에 숨어서 고사리를 뜯어 먹고 살았느냐, 차라리 굶어 죽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준열하게 꾸짖는 말입니다.
 
백이숙제에 대하여서는 그날 분분한 이야기가 있고 난 뒤에 신순봉 선생이 내 불 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伯夷 叔齊 孤竹君之二子也 父欲立叔齊 及父卒 叔齊讓伯夷 伯夷曰 父命也 遂逃去 叔齊亦不肯立而逃之 國人立其中子
 
백이숙제가 '고죽군'의 두 아들이라 하고, 아버지가 졸한 뒤 둘이 양보를 해서 나라사람들이 그 둘째아들을 세웠다(立)고 하는 걸 보니……. 고죽국이 컸든 작았든 간에 임금이라고 부른 것 같네요.
 
그런데 은나라가 어떻게 구성되었었나, 더 상세한 자료를 찾아보니까 왕이 직접 통치하는 대읍이 있고 나머지 지방은 족읍이라 하여 왕에게 충성하는 방백들이 관할하는 체제였다고 하네요.
 
그러다 후기로 가면서 그 족장들을 후, 백 등의 작위를 줘서 다스렸다 하고요. 이렇게 은나라의 기본 구성은 읍이 핵심이고, 그 가운데서도 제후들에게 나눠 준 '족읍'이 가장 중심인데, 족읍은 원래 혈연관계로 맺어진 씨족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사는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렇게 대읍-족읍-소읍 등으로 구성된 만큼 '읍' 상호간에도 중층적인 예속관계가 있었다 하고요. 이렇게 볼 때, 고죽국은 이 가운데 족읍, 즉 제후국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어떤 자료에는 고죽국을 봉한 사람이 탕왕이라고도 나옵니다.
 
아무튼 스님 말씀이 맞습니다. 저는 백이와 숙제가 주나라 무왕의 신하가 될 수 없다는 말을 했던 것만 생각하고 그 사람들의 출신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아무튼 이번 기회에 스님 덕분에 새로이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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