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녹색휴가, 귀향에의 길

녹색반가사유⑪ "숲속 산책은 여여함을 즐기는 천상의 소요"

정미경 | 기사입력 2007/08/23 [14:06]

이방인의 녹색휴가, 귀향에의 길

녹색반가사유⑪ "숲속 산책은 여여함을 즐기는 천상의 소요"

정미경 | 입력 : 2007/08/23 [14:06]
 계곡을 한참 올라 널찍한 숲속의 빈터에 도착했습니다. 아마도 이곳이 야영장이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새들이 머무르며 노는 보금자리로 되었음직한 곳이지요. 두리번거리는 다람쥐, 기웃하는 숲속 새들도 빼앗겼다고 탓하지 않는 열려있는 마당입니다.
 
 옹기종기 배열되어 있는 데크 중에 빈 자리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가장자리에 있는 평상이었지요. 둘레는 비교적 최근에 숲 가꾸기를 한 탓인지 키 큰나무와 작은 관목들이 깔끔하면서도 잘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초본류와 버섯 또한 지천에 널려 있었고요. 
 

▲ 오랜만에 떠난 녹색휴가, 숲속의 야영장에 텐트를 쳤습니다.     ©정미경

 바위와 작은 돌로 계곡물이 넘쳐흐르게 쌓아놓은 물놀이 시설도 다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쓴 흔적이 보입니다. 한켠엔 벌써 수박과 맥주 등이 돌로 눌려져 얼어가고 있었으니 정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뉘엿해가 저물어 가기 전에 텐트를 치고 저녁을 지어야 하겠기에 깨끗한 계곡물을 커다란 물통에 받아왔습니다. 이제는 텐트를 치기 시작할 차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쉬어가는 우리네 평상. 그늘이 드리울 땐 한 숨 낮잠을 자고 싶은 편안하고 아담하며 너른 자리이지요.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함께 밥 먹고, 별마저 졸기 시작하는 깊은 밤에는 남몰래 사랑하는 사람과 몸맞춤도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정겨운 우리들의 자리입니다. 
 
 떠날 땐 등에 지고 떠나지만 머물만한 곳에 자리를 잡으면 집으로 변하는 달팽이집, 소중한 나의 텐트를 이 평상 위에 세웠습니다. 매트를 깔고 비닐덮개를 씌우고 나니 비바람이 불어와도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 우리들의 야영문화는 원시적 야성, 바로 그대로입니다.     ©정미경

 집 떠나 멀리 갈 때는 꼭 가지고 가는 이 작은 텐트가 나는 무척이나 좋습니다. 침낭까지 곁들였으니 잠자리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우산처럼 펼치기만 하면 세워지니 번거러울 것도 없고요. 우산을 접듯이 정리할 수 있어 더없이 편리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통풍을 위한 방충망도 있으니 편안한 잠자리는 그것으로 족합니다. 부피도 작아 휴대하기에 더없이 좋아요.
 
 한밤중에 쏟아지는 장대비도 겪었고 거친 바람까지 막아주었으니 집으로 치면 이것처럼 좋은 집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웃하는 사람들과 닫혀 있지만, 언제든지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좋습니다. 웬만한 것을 텐트밖에 내어 놓아도 잃어버릴 걱정이 아예 없으니 우리들의 야영문화는 원시적 야성, 바로 그대로입니다. 
 
 음악을 듣기 위하여 혹은 TV를 보기 위하여 전자기기를 가져오는 사람도 없어요. 더욱이 신문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 바람 지나가는 소리, 서그러운 숲빛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지요. 야생으로 돌아가고플 때는 언제나 텐트 하나면 충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저녁밥을 짓고 찌개를 끓이며 소박한 밥상을 준비합니다.     ©정미경

 
 사랑하는 사람과 둘이라면 더없이 좋을 듯 합니다. 자지러질듯 소리 내어 사랑을 나누고 싶다면 계곡 속으로 가기만 하면 누구도 눈치챌 수 없을 거예요. 혹여 한밤중에 산책을 하다가 길바닥에서 미친 듯이 사랑을 하고 싶더라도 마음 내키는대로 할 수 있는 야생의 사랑도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텐트를 치고 나서 해거름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어둑어둑한 숲속을 홀로 걷는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살갗을 간지럽히며 지나가는 바람에 저절로 가슴은 열려 지고 솔향은 폐 속 깊숙이 훑어 돌며 찌든 생각들을 말끔하게 씻어줍니다. 과거에 대한 회한도 흔적하나 없이 사라지고, 현재에 대한 집착도 말끔하게 없어지며, 미래에 대한 걱정 또한 아예 없어져 버립니다. 그저 무심함이 조용하게 흐를 뿐이에요.
 
 떠있는 조각달에 상처는 무슨 상처! 오고감이 없고 들고남이 없는 무아에의 몰입입니다. 길섶의 혹간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만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줄 뿐, 삶과 죽음 같은  대립물이 하나로 혼융되어 있는 원시 이전, 너머의 시간 바로 그 문턱에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더없이 좋습니다.
 
▲ 숲속 산책은 우리를 신적 존재로 고양시키는 마력을 지녔습니다.     © 정미경
 
 미명의 시간이 실존의 벼린 아픔을 서늘하게 느끼게 해준다면, 그것과 더불어 앙상블을 이루는 해거름의 숲속 산책은 존재 이전과 이후의 여여함을 포근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천상의 소요(逍遙)입니다.
 
 내키는 발걸음 따라 걷는다 해도 방황하는 것이 아니며, 더구나 서성거리는 것도 아니지요. 그만큼 저녁나절의 숲속 산책은 우리를 신적 존재로 고양시키는 마력을 지녔습니다. 조용히 둥지로 들어가는 미물들과 부시시 잠에서 깨어 눈을 뜨기 시작하는 야행성의 이웃들과 한 몸이 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은 홀로 있어야 합니다. 꼭 그래야만 합니다.
 
 또다시 몸 누일 집으로의 회향. 이제 저녁을 지어야겠어요. 코펠에 쌀을 씻어 조립한 버너 위에 올려놓습니다. 해발고가 높은 지역이니 커다란 돌을 뚜껑위에 올려놓는 것은 상식. 점화를 하고난 직후 다른 냄비에 준비해온 찌개거리를 넣고 다음 차례를 기다립니다.
 
▲ 떠있는 조각달에 상처는 무슨 상처! 오고감이 없고 들고남이 없는 무아에의 몰입입니다.     © 정미경
 
 잠깐 사이에 취나물과 민들레 등을 한웅큼 뜯어왔어요. 벌써 밥이 끓기 시작합니다. 가열된 불을 한 단계 낮추기 시작하면 주방에선 들을 수 없었던 밥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며 은은한 밥 내음이 몸 세포 전체를 열어놓기에 충분합니다.
 
 참으로 이상도 하지요. 밀폐된 주방에선 듣지 못했고 맡지 못했던 뜸 들이는 소리와 익어가는 내음이 툭 터진 야외에서 이렇게 은근하면서도 저릿하게 자극으로 와 닿을 줄을….  잠시 틈을 내어 뜯어온 산나물을 계곡물에 씻어옵니다. 그리곤 다 익은 밥을 내려놓고 찌개거리를 올려놓습니다. 오랫동안 약한 불에 익힌 밥은 여간해선 맛볼 수 없는 고슬고슬한 햇반으로 지어졌어요. 김을 훌훌 불며 그냥 먹어도 될 햇반으로 말이에요.
 
 지글자글 끓는 찌개 내음 또한 숲속의 빈터를 휘감습니다. 묵은 김치에 참치 통조림이 전부이지만 번져가는 냄새에 모두들 입맛을 다시는 것이 귀에 들어옵니다. 끓어 넘치는 찌개국물에 버너불이 꺼지고 이렇게 하여 저녁상은 준비 완료. 고추장에 마른멸치를 찍어 먹어도 좋고, 뜯어온 나물로 쌈을 싸서 먹는 밥에 찌개 국물을 곁들이면 천하별미가 따로 없어요. 쌉싸름하고 얼큰하며 담백하기가 짝이 없는 조촐한 식단이지요.
 
▲ 어렴풋이 보이는 벤치에 누워 밤하늘을 우러러봅니다. 숲바다에 누워, 그리워 터져 버린 그리움의 별과 마주합니다.     ©정미경

 
 저녁을 먹고는 잘 덖은 녹차 한잔으로 식사시간을 마무리합니다. 번져가는 향내가 숲향과 버무려져 산노을 속에 묻혀 가는 해거름의 행복한 시간, 새들은 벌써 둥지 속에 들어갔습니다.
 
 알맞게 불어오는 바람에 도무지 바람이 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땐 그저 나서야 합니다. 어렴풋이 보이는 벤치에 누워, 밤하늘을 우러러봅니다. 숲바다에 누워, 그리워 터져 버린 그리움의 별과 마주합니다. 야심한 별바람 소리가 계곡물 흐르는 소리로 끊이지 않고 흐릅니다. 별과 별 사이로 불어오고 불어가는 별바람, 야심한 별바람은 한번도 쉼 없이 그렇게 흘러갑니다. 흘러옵니다.
 
 바람에 흔들리다가 기어이 떨어져 나간 유성이 일탈의 긴 꼬리를 태우면 그때 우리는 비로소 느낄 수가 있어요. 우리는 별에서 온, 별의 자식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우리는 우주에 속해 있다는 잠재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곳간의 비밀 열쇠가 스르르 풀려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자연에 속해있다는 뼈저린 소속감을 이토록 절감할 수 있는 밤 숲의 비박이 그래서 나는 좋습니다.     ©정미경

 시리게도 푸른 별, 시리게 일렁이는 바다, 시리게 흐르는 강, 그리고 시리도록 푸르른 숲의 잔영이 온몸 깊숙이 박혀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와 닿습니다. 야심한 밤을 찌르는 각성의 바늘 앞에 몸 둘바를 모르겠어요. 자연에 속해 있다는 뼈저린 소속감을 이토록 절감할 수 있는 밤 숲의 비박이 그래서 나는 좋습니다.
 
 도대체 몇 시에 텐트 속으로 들어와 잠을 청했는지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새벽녘, 분명 새벽녘의 매미소리에 잠을 깼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습니다.
 
오랜만의 녹색휴가, 고향을 다녀온 이방인의 만족감이 온몸에 피처럼 흐릅니다.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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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거리 2007/08/31 [14:18] 수정 | 삭제
  • 하루, 자연 속의 삶
    성찰과 누림의 시간이
    잔잔하게 다가오는군요
  • 프리다 2007/08/28 [18:23] 수정 | 삭제
  • 녹색휴가의 경지는 바로 이런것이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글과 그림과 녹색....
    자연이 베푸는 무한한 자비를 느끼게 합니다.
    좋은 글 감사히 읽고 또 읽습니다.
    자미님...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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