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맡긴 운명, 절묘한 작품으로...

녹색반가사유⑫ 여름날 한가로히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은 여유...

정미경 | 기사입력 2007/09/02 [16:12]

바람에 맡긴 운명, 절묘한 작품으로...

녹색반가사유⑫ 여름날 한가로히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은 여유...

정미경 | 입력 : 2007/09/02 [16:12]
 가을의 길목에 비가 내립니다. 밤부터 내리던 비가 하루 종일 내리고 있어요. 바로 엊그제 까지만 해도 온몸으로 맞고 싶은 비였는데, 세상을 가라앉히는 사색의 비로 바뀌어버렸습니다. 들뜬 마음도, 짜증 섞인 번거러움도 언제 그랬냐 싶게 말끔하게 씻겨 나갔어요. 이제 문지방을 넘으면 가을입니다. 이 길목에서 지난여름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장마가 끝나가는 가 했더니, 그때부터 시작된 우기(雨期)는 우리 모두에게 기후변화의 재앙을 몸으로 느끼기에 충분했었지요. 아열대화된 한반도! 오래전에 바다는 아열대성 물고기들의 북상으로 그 전조를 보여주었지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내륙이 아열대화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리던 비가 그치자 온 대륙은 가마솥더위에 어쩌지를 못하고…. 
 
 
▲ 이글거리는 하늘에 유난히도 많았던 여름날의 구름을 보면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 정미경

 
 그러던 중 조국의 북녘은 또다시 상상할 수도 없는 홍수피해에 넋을 잃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널뛰기 날씨의 연속이었습니다. 유럽의 어느 나라는 나라의 절반이 타들어가고 있는 재앙을 맞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위시한 책임 있는 나라들은 조금도 개의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리어 아열대화 되고 있는 기후를 어떻게 하면 상품화할 수 있을까에 골몰하는 기업은 그들의 환호성만큼이나 뜨거운 냉방기기의 열기를 달구어진 높다란 시멘트 건물 밖으로 뿜어내고 있어요. 
 

▲ 뭉게구름은 여름날의 한가로움을 상징하는 여유입니다.     ©정미경

  그래서 그랬던가. 이글거리는 하늘에 유난히도 많았던 여름날의 구름 말이에요. 지구 전체로 보자면 구름은 남태평양 상공에서 집중적으로 형성된다고 합니다. 고온다습한 지역이기 때문이지요. 대륙에서는 상승기류를 만들어내는 산 주변과 일사열로 데워진 도심의 상공에서 집중적으로 만들어집니다. 이 구름을 보면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유난히도 많았던 지난 여름날의 구름들을 보면 특히나.
 
 대기가 상승하는 곳에서 만들어 지는 구름. 새벽녘 골짜기에서 피어오르는 안개구름과 바람에 휩쓸리며 흩어지는 연무는 구름이 생성되는 초기의 모습입니다. 강변의 새벽을 휘감아 도는 물안개 또한 마찬가지이지요. 
 
▲ 바람에 맡긴 운명은 그렇게도 절묘한 작품으로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지요.     © 정미경

  증발과 응결, 강수로 변해가는 물의 순환운동에서 기화된 첫 번째 모습이기도 합니다. 증발과 증산이 이러한 신비스러운 영상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지요. 그것이 대기권의 권계면에 다다라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작은 얼음으로 응결하거나 물방울의 집단을 이루어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 이른바 강수입니다.
 
 구름은 수직고도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화폭에 수놓는 형상이 제각각입니다. 분분히 날고 있는 흩어져가는 구름이 있는 반면에 홀연히 나타났다 황망하게 사라지는 구름도 있습니다. 
 
 

▲ 꽃구름. ©정미경

▲ 꽃구름은 물방울에 회절된 햇살의 비껴든 찰나의 향연이었습니다.     ©정미경

하지만 지나간 여름날엔, 유난히도 공중습도도 많았고 이글거리는 땡볕 때문에 모든 빛을 혼합시켜 하얗게 뭉실거리는 뭉게구름이 무척이나 많았었지요. 더 이상 하얀빛이 없을 정도로 빛나는 운정의 둥글둥글한 모습과 담색의 운저가 빚어내는 음영의 조화는 푸르른 하늘을 배경으로 얼마나 유유자적 했던지.
 
 서로를 바라보며 무심하게 허공을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평화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도무지 한눈에 쓸어 담을 수 없는 하늘가 한 모퉁이에서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은 여름날의 한가로움을 상징하는 여유입니다.
 
▲ 운저의 두터운 구름 사이로 부챗살 문양의 햇살이 퍼져 나갈 때 그 얼마나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던가.     ©정미경

  
 바람에 맡긴 운명은 그렇게도 절묘한 작품으로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지요. 거스름 없이 바람 따라 자신을 수놓아가는 뭉게구름은 역천의 문명이 일구어낸 마천루의 천박함을 꾸짖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 흘러만 갈뿐.

이러한 뭉게구름이 발달하여 수직으로 상승하는 웅대적운으로 될 때면 세상은 다만 '와우각상지쟁' 일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다가 구름 틈 사이로 햇살이라도 비추이면 그 얼마나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하였던가. 얇은 구름 커턴에 가린 햇무리와 태양 코로나, 보랏빛과 주황색 붉은 계통의 꽃구름은 물방울에 회절된 햇살의 비껴든 찰나의 향연이었습니다.
 
▲ 빛의 회절로 생기는 태양 코로나.     ©정미경

 투명한 운정의 테두리가 빛나고, 운저의 두터운 구름 사이로 부챗살 문양의 햇살이 퍼져 나갈 때 대지는 그 얼마나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던가. 저무는 나절의 역광과 그것이 빚어내는 실루엣에 우리는 얼마나 숙연해 졌었던가. 그러므로 구름한점 없는 여름날의 대지가 얼마나 쓸쓸했을까를 상상해 봅니다.
 
 바람에 맡긴 운명! 그 운명이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바람을 거스르는 운명, 그것이 우리를 재앙으로 이끌어갑니다.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운명을 바람에 맡길 생각입니다. 밀면 밀리는 대로, 흩뜨리면 흩어지며 바람과 함께 바람 속으로 내 생을 맡길 생각입니다.
 
▲ 저무는 나절의 역광과 그것이 빚어내는 실루엣에 우리는 얼마나 숙연해 졌었던가.     © 정미경

 그러다 정말 그러다 햇살 비추이면 바람에 맡긴 생의 아름다움을 맘껏 드러낼 것입니다. 역천의 문명을 조롱하는 바람의 여신이 되고자 합니다. 지나간 여름날, 잠깐이나마 꾸어본 한바탕 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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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거리 2007/09/19 [17:39] 수정 | 삭제
  •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린 이번 여름
    초가을....시의 적절한 탐구이군요.
    저도 바람따라 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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