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하는 몽상의 꽃, 바람의 그림자

녹색반가사유(16) 깊은 사색의 빛깔로 하늘의 꿈을 용해하는...

정미경 | 기사입력 2007/10/16 [19:24]

부재하는 몽상의 꽃, 바람의 그림자

녹색반가사유(16) 깊은 사색의 빛깔로 하늘의 꿈을 용해하는...

정미경 | 입력 : 2007/10/16 [19:24]
 저마다 물들어 가는 만추의 계절에 탈색으로 맞서는 꽃 하나. 버려지고 잊혀진 습기 찬 땅에서 겨울을 보내고, 때가 되면 핼쑥한 얼굴로 고개를 내미는 무념무상의 꽃, 물매화.
 
▲ 만추의 계절에 탈색으로 맞서는 꽃 하나.     © 정미경
 
  그 매화초가 올해도 어김없이 나풀거리는 바람의 그림자로 산록 습지에 그득하게 피었습니다. 손에 잡힐 것 같은 애잔함, 눈에 띄지도 않는 숨어있는 꽃이 깊은 사색에 빠진 모습으로 하늘거리고 있어요.
 
고요함 속에 누구의 가슴을 스잔하게 하려는지, 여름날의 잔영으로 무리지은 쓸쓸함으로 피어있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꽃처럼, 물위에 비친 달처럼!


▲ 무념무상의 꽃, 물매화.     ©정미경
 정열의 가을빛을 지우려는 듯 가느다란 꽃대위에 하얀 꽃으로 말이에요.

숨어 있기에 눈에 띄는 꽃. 깊은 사색의 빛깔로 투명한 하늘을 용해시키고 있는 이 꽃을 보노라면 문득 그 안에 아른거리는 꿈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 숨어 있기에 눈에 띄는 꽃.     © 정미경
 
 모두가 자기의 슬픔으로, 혹은 자기 연민에 빠져 짙어 가지만, 유독 이 물매화 만큼은 허허로운 하늘을 하나 그득 품고 있어요.
 
하여, 살포시 내려앉은 하늘도 그 하늘거림에 함께 흔들리고 있습니다. 울먹이는 가슴을 감추고서 말입니다.
 

▲ 청순가련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의연하다고 해야 할까?     ©정미경

 청순가련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의연하다고 해야 할까? 방울방울 꽃망울로 발돋움하고 있는 품새가 더더욱 가슴을 스잔하게 하고 있습니다.
 
 햇살 머금은 망울은 바람에 흔들리고, 보듬은 잎새는 기다리고 있으니 대지의 모든 빛깔은 또 그렇게 물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 허허로운 하늘을 하나 그득 품고 있는 꽃.     © 정미경

 
 여기에 가을이 숨었습니다. 모두가 숨었어요. 부재(不在)하는, 몽상의 꽃으로 발밑에서 흐느끼고 있습니다.

 
그대는 아시는가.
이 흐느낌으로 물들어 가는 가을을…
이 흐느낌으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이 흐느낌으로 자꾸만 멀어져 가는 푸르른 하늘을…
어둑어둑 저무는 계절의 언덕배기에 저토록 가련함이 흔들리고 있기에 가을이 그렇게 깊어 가는 줄을…
자신의 혼백을 죄다 넘겨주고 넋 빠진 빛깔로 하늘거리기에 우리의 가을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을….


▲ 거울 속에 비친 꽃처럼, 물위에 비친 달처럼! 무리지어 핀 물매화.     ©정미경

 매화꽃이 매서운 가지 끝에서 시린 꽃을 피워내기에 봄이 살금 기어 나오듯이, 쓸쓸함을 온몸으로 받아 안고 휘청거리고 있기에 가을은 그렇게 내리달리고 있습니다. 밑으로 밑으로, 안으로 안으로!

부재하는 몽상의 꽃, 물매화는 가을의 한복판에 서 있는 쓸쓸하기 그지없는 고독입니다. 그러므로 고독은 가을을 피워냅니다.
 
▲ 부재하는 몽상의 꽃, 물매화.     © 정미경

 거울속의 꽃처럼, 물위의 달처럼 숨어 있는 물매화는 투명한 우리 모두의 본성입니다.
내 가슴의 물매화가 흠뻑 피어나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알아주지 않지만, 그럴 필요도 없지만… 하늘마저 자꾸 멀어져만 가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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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거리 2007/10/31 [09:56] 수정 | 삭제
  • 자신의 혼백을 죄다 넘겨주고, 넋빠진 빛깔로 하늘거리기에
    우리의 가을은 아애로아래로 내려간다는 것을...
    물매화 앞에서 견성하신 것 같습니다.
    참 평온하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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