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습지② 자유 허기진 구속된 요람

녹색반가사유(18) 문명과 거리둔 철새들의 고단한 날개짓이...

정미경 | 기사입력 2007/11/01 [10:09]

장항습지② 자유 허기진 구속된 요람

녹색반가사유(18) 문명과 거리둔 철새들의 고단한 날개짓이...

정미경 | 입력 : 2007/11/01 [10:09]
박목월님의 <기러기 울어 예는>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읊으면 읊을수록 애잔한 가슴이 싸리한 상처투성이로 점점 더 크게 멍울져만 갑니다.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어,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 장항습지, 큰기러기의 나래짓.     © 정미경

아무르 강가나 캄차카 반도 또는 시베리아 벌판의 그리운 산하를 남겨둔 채로 떠나가는 겨울철새의 심정을 절절이 그려낸 수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드넓은 중화대륙을 활동무대로 삼던 야생거위 이른바 '개리'도 그렇고, 희귀조로 관찰하기가 어려운 저어새 또한 마찬가지이지요. 한반도를 주요무대로 하는 가창오리의 떼울음과 휘황하기 그지없는 군무는 더더욱 가슴을 미어지게 만듭니다.
 
▲ 희귀조로 관찰하기 어려운 노랑부리저어새.     © 정미경

조용하게 바라보며 반가사유하는 왜가리나 황로는 또 어떻고요. 고니도 그렇고 검독수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몇 남지 않은 매는 차라리 헤어질 상대도 없을 정도로 되어버렸으니 정녕 가을은 고픈 계절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니 장항습지에 빗돌면서 내려앉는 저들의 품새는, 진한 아쉬움을 가을 하늘에 흔적으로 남겨두려는 것이려니….빼앗긴 자유를 뒤로하고 새로운 자유를 찾기 위하여 고단한 나래짓을 도대체 몇 번이나 하였던가.
 
▲ 조용하게 바라보며 반가사유하는 큰고니.     © 정미경

그곳도 고향이고 이곳도 고향인 저들은 드넓은 대륙을 활동무대로 하는 고독의 대명사. 그래서 그곳에서는 자유가 간다고 아쉬워하고 이곳에서는 자유가 온다고 반기는 것인가. 고독이 그리운 사람은 고독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높게 날고, 멀리 보며 휑하니 넓은 곳을 버겁게 오고가는 저들은 언제나 문명과 거리를 두고 세상을 관조하는 고독을 먹고 사는 자유입니다. 피곤한 나래짓의 그 과정을 자유라고 했다면, 정녕 자유는 피하고 싶은 고통일지도 몰라요.
 
▲ 그곳도 고향이고 이곳도 고향인 저들은 드넓은 대륙을 활동무대로 하는 고독의 대명사, 큰기러기.     © 정미경

하지만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뒤엉킨 공간을 헤치며, 작열하는 태양을 걺어지고 나아가는 저들에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차라리 포기하고픈 나래짓을 그래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빈 마음으로 찾아 헤매는 이유는 분명 있을 거예요.

얼어붙은 새벽의 무거운 이슬을 털고, 어둠속에서 실루엣으로 노을과 함께 침잠하는 적멸의 삶을 그토록 희구하는 이유 말입니다. 칼바람 소용돌이를 마다 않고 에돌아 날아온 이유가 반드시 있을 겁니다.
 
빛살을 뚫고 자유에 허기져 찾는 본성에의 부단한 갈망, 자유에 허기져 사람을 찾으면 찾을수록 존재자체를 갉아먹는 허무에 빠져버리고 마는 우리네 인간들과는 다른 길을 가는 그 이유가 도대체 뭘까?
 
▲ 단 한 번도 부딪히지 않는 새들의 간격은, 자유라는 고독은 '여럿이 함께'여야 한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지요.     ©정미경

저들은 자유가 그리울수록 내면 깊숙한 본성, 바로 야성에의 길로 나아갈 뿐입니다. 단 한 번도 부딪히지 않는 새들의 간격은, 자유라는 고독은 '여럿이 함께'여야 한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지요.

그래서 야성은 우아합니다. 환각적 빛깔과 우아한 걸음걸이, 그것은 표피적으로 흐르는 문명의 천박함을 외면하는 충만한 고독의 모습,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 당신! 내가 그토록 그리우면 그리울수록 그냥 그대로 계셔요. 다가오지 마시고 그냥 그대로 머물러서 당신 속으로 빠져들어 가셔요. 우리들은 새들의 간격을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될, 새들의 간격으로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 당신이 떠날 때, 나 또한 떠나올 것을 약속하지요. 손가락 걸고.     © 선재 소녀

그리고 가장 높이 날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 본성이 가리키는 충동대로 원초에의 향수를 마음껏 누리셔요. 그때 당신은 알 것입니다. 당신은 나! 바로 내가 당신인 것을….
 
장항습지는 구속되어있는 자유의 요람입니다. 남과 북의 통일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현재진행형이잖아요. 그러니 서둘지도 마셔요. 당신이 떠날 때, 나 또한 떠나올 것을 약속하지요. 손가락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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