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 허물어진 서울, 삽질거리 생겼네

[광화문단상] 숭례문 전소 소식에 내 가슴엔 구멍이 뻥 뚫린...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8/02/11 [18:50]

불타 허물어진 서울, 삽질거리 생겼네

[광화문단상] 숭례문 전소 소식에 내 가슴엔 구멍이 뻥 뚫린...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8/02/11 [18:50]
참으로 허망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600년을 굳게 서있던 숭례문이 불타 무너져 내렸습니다. 언론은 앞 다퉈 ‘나라가 무너져 내린 격’이라고 비보를 전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선 여야가, 관리당국에선 소방서와 문화재청이 서로 ‘네 탓’ 타령을 하고 있습니다. 범인을 잡아서 목을 매달아야 한다고 흥분하는 이도 있습니다. 왜, 정초에 이런 날벼락이 떨어져 내렸을까요?

설 연휴 마지막 날 밤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다말고 깜짝 놀랐습니다. 남대문이 불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불이 사그라지고 있다며 소방물줄기 속에서 연기만 나는 모습을 보여줘 그나마 안심했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깨어서는 정말이지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버린 느낌이었습니다. 망연자실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불이 나고 곧 10여분 안에 서울 종합방재센터에 화재신고가 들어왔다고 그랬습니다. 저녁 8시 50분경이었고 3분만에 중부소방서 대원 10명이 현장에 도착, 2층에 올라 화재진압을 했다고 그럽니다. 야간 화재경보를 책임지는 KT텔레캅에는 3분 빠른 47분에 경보가 울렸지만 10분이 지난 56분에서야 관계자가 현장에 도착했다는군요.
 
정초 날벼락, 네 탓 타령만
 
1시간여 동안 안팎에서 진화작업을 벌였고 불길이 어느 정도 잡히고 연기만 나는 상태 때 기자는 소식을 접한 것이었습니다. 소방관들이 노력하고 있으니 곧 진화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전 거센 물줄기에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불길은 다시 피어올랐고 결국 소방당국과 문화재청이 서너시간 허둥지둥 하는 사이 600년 수도서울의 정문이었던 숭례문은 불타 허물어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아름다운 위용을 자랑하던 숭례문.  ©인터넷저널


경보기도, 소방차도, 물대포도, 감시카메라도 하나 없던 지난 500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난리통에도 끄떡없던 숭례문이었습니다. 62년 문화재보호법이 재정된 이래 국보1호로 한국을 상징하는 나라의 보물이었습니다. 서울을 자랑할 땐 언제나 첫 번째로 꼽히던 자랑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집권 한나라당 측의 해괴망측한 이야기부터 들어볼까요? “노 정권이 엉뚱한 데 신경 쓰다 안전에 허술해 이런 비극을 불렀습니다.” 원내대표인 안상수씨의 말입니다. 나경원 대변인 논평도 들어볼까요? “노 정권이 봉화마을에 쓴 관심의 1/10이라도 문화재 관리에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한나라당은 총선 역풍을 우려해서 그랬답니다. 민심의 분노를 잠재우려면 책임을 상대에게 물어야 했겠죠? 그러니 관리책임자인 문화재청에 한 방 날린 것이지요. 문화재청의 잘못은 물론 크지요.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분노대로라면 청장의 멱살을 잡고 귀싸대기라도 한 대 날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한나라당의 해괴망측한 소리
 
하지만 한나라당의 정치공세는 수긍되지 않습니다. 문화재청이 현지에 공무원을 직접 상주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서울시와 중구청에 대리 관리를 시키고 있기 때문이지요. 결국 가장 큰 관리책임은 한나라당 출신 시장이 관리하고 있는 서울시와 중구청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구청장도 한나라당 출신이라죠?

▲ 숭례문의 아름다운 간판과 단청.   

 
그뿐이 아닙니다. 남대문을 개방한 게 이명박 당선자니까요. 서울시장 시절인 2005년 5월 27일 “시민과 어울릴 공간을 만들겠다”며 숭례문 앞에서 개장식을 하며 북을 울린 이가 바로 이 전 시장이었으니까요. 이 전 시장이 ‘국보1호, 100년만에 문 활짝’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개방결정을 했을 때 일부에선 ‘화재위험’을 경고했지만 묵살됐다는 당시 기록까지 있습니다.

소방당국 화재진압 능력도 문제로 대두됐습니다. 9시경 10여명이 내부로 진입해 화재작업을 벌였고, 10시경 불꽃이 사라지고 ‘훈소’ 상태라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무너져 내린 뒤 해명을 들으니 이렇습니다. 외부에서 아무리 물을 뿌려도 방수처리가 돼 있어 기와속의 불은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방당국에 문화재 전문 소방능력이 없었다는 거지요? 안팎에서 확실하게 소방작업을 했는데도 석가래 안에서 불이 타오르는 줄도 모르고 쓸데없이 지붕위에 물만 뿌리고 있었다는 욕을 먹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문화재청이 훼손을 우려해 제대로 진압을 못하게 해 그리됐다고 책임을 떠넘깁니다.
 
"당선자, 2년여전 민간개방"
 
문화재청엔 애초부터 큰 책임이 있습니다. 아무리 지방정부에 관리를 위임했다고 하지만 평소 화재예방을 위한 대책과 화재시 소방지침 등을 전혀 준비하지 않은 책임을 어찌 피해갈 수 있겠습니까? 그리곤 소방이 제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그리 됐다고 변명하고 있으니 가증스럽긴 마찬가집니다.
 
▲ 성곽이 온존하던 100여년 전의 숭례문 일대.     ©


중구청의 위임을 받아 야간(공무원이 퇴근한 시각인 저녁 8시부터 이튿날 10시까지) 관리를 맡은 사설 무인경비업체인 KT텔레캅도 막중한 책임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화재경보가 울리고 10분이 지나서야 현장에 출동했다고 하니까요. 이미 소방요원들이 화재진압을 하고 있을 때 도착했다는군요.

숭례문 없는 서울 하늘 아래 있어 본적이 없는 우리 모두는 슬픔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누군가 일부러 불을 질렀다면 그이는 속이 시원할까요? 분통이 터지는데 그 자를 잡아 엄벌에 처하면 우리 맘이 시원해질까요?

새롭게 복원하면 더 멋진 숭례문이 될까요? 문화재관리법을 고치면 이런 일이 더 이상 생기지 않을까요? 조선 500년간 문화재법이 없어서 숭례문이 고이 보존돼 왔을까요? 그 때에는 홧김에 불 지르는 이가 없어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던 것일까요?

답답합니다. 지난 500년 수도 서울의 정문이었던 숭례문을 누가 무너뜨린 것일까요? 지난 100년 손발은 잘렸지만 제 몸뚱이 만으로라도 질기게 버티고 서 서울의 얼굴 노릇을 해왔던 그 숭례문은 이제 어디에 가야 볼 수 있단 말입니까?
 
▲ 불타 무너져 내리는 숭례문.   

 
손발 잘리고도 질기게 버텨왔는데..
 
남 보기에 창피해 죽겠다고 그럽니다.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이젠 국보 1호마져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목도해야 하는 우리로선 체면이 말이 아니긴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그런 겉치레나 찾고 있을 때입니까? 무너진 자존심은 없나요? 형편없는 우리의 실력부터 창피하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요?

아, 그러고 보니 확인해둬야 할 게 있군요. 언제 우리가 이런 아름다운 유산을 제대로 대우해줬던 적이 있었던가요? 청계천에 있던 수백년 유산은 어떻게 됐습니까? 제대로 복원하자는 이야기는 먹혀들어가기나 했나요? 전국토를 파고 헐어 콘크리트로 덧칠해놓으면 최곤 줄 아는 우리 아니었던가요? 

행여 허물어진 김에 치워버리고 광장이나 만들자고 하지나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역에도 한 번 가보시길 바랍니다. 그 넓고 고즈넉하던 모습은 이제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중앙역사 하나만 놔두고 모두가 바뀌었으니까요. 운하로 한반도를 세조각 내자는 당선자도 있으니까요.
 
아, 제 귀에는 옛 소리가 들립니다. 오경(새벽 4시)이면 보신각에서 어김없이 들렸을 서른 세 번의 파루(罷漏) 종소리.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며 서울도성으로 바삐 들어오는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밤 10시면 스물여덟번의 종소리와 함께 육중한 문이 닫히며 내던 그 문소리.
 

▲ 2005년 5월 27일 숭례문 앞에서 개방을 선언하며 북을 치는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

 
문화유산, 제대로 대우했나요?
 
관악(冠岳山)의 화기(火氣)를 누르려고 대문에 내 걸었던 ‘숭례문’이 불에 떨어져 내렸으니 참으로 아이러니입니다. 세종의 형인 양녕대군의 신통한 ‘어필’이 타고 떨어져내렸으니 이제 서울의 길운은 어찌 보장한답니까? 인의예지(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 4대 수호신 중 의(義, 돈의문)에 이어 예(禮, 숭례문)가 사라져버렸으니 서울의 질서와 문화는 또 어찌되는 겁니까?

말없는 숭례문은 그렇게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렸지만 기구한 운명은 역사가 기억해주겠죠? 600년간 당당했고 자랑스러웠던 그 모습을요. 일제가 식민통치를 시작하기에 앞서 황태자를 서울에 파견했을 때 ‘비루한 문으로 통과할 수 없다’며 양쪽 팔다리를 다 잘라 버렸어도 제 몸만은 버텨냈던 그 문을요.

오랜 세월 위용을 뽐내며 높디높아 보이던 무지개를 닮은 홍예문과 석축기단. 그 위로 뺑 두른 여장(女墻)과 동서로 조그맣게 열어놓은 협문(夾門). 여장 안에 곱게 분칠을 한 2층 누각. 600년 역사가 살아 숨쉬던 다포(多包) 처마. 사다리꼴의 우진각지붕. 모두가 이젠 그립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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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숭례문 2008/02/14 [13:51] 수정 | 삭제
  • 무너진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다 무너지기도 전에 복원얘기를 하지 않나. 눈가림막을 설치하고선 유적 잔해를 쓰레기차로 퍼다 마구 버리지를 않나. 3년이면 복원한다고 하질 않나... 이 못되먹은 버르장머리는 어떡할꼬...
  • 자미 2008/02/11 [23:35] 수정 | 삭제
  • 숭례문 전소 소식에 할 말을 잃었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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