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콰이어’와 히스 레저 죽기전 며칠

[픽션저널리즘] 유명 작가 동원 명사들의 삶 극화해 관심끌기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8/03/13 [11:00]

‘에스콰이어’와 히스 레저 죽기전 며칠

[픽션저널리즘] 유명 작가 동원 명사들의 삶 극화해 관심끌기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8/03/13 [11:00]
‘브로그백 마운틴’, ‘기사 윌리엄’ 주연으로 유명한 배우 히스 레저가 뉴욕의 소호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죽은 채로 발견 된 건 지난 1월 22일. 그가 떠난 지 7주만에 죽기 전 며칠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픽션으로 재구성한 일지가 나와 관심을 끈다고 프랑스에서 발행되는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이 보도했다.

‘히스 로저의 마지막 날들’이란 제목의 이 글은 월간 패션잡지 ‘에스콰이어’의 편집장인 데이비드 그랭거의 주문에 따라 작가 리사 테디오가 썼고, 다음 주에 판매가 시작될 4월호에 실렸다. 온라인판에는 지난 5일자로 올랐다.

에스콰이어에 따르면, 히스는 런던에서 잭 니콜슨과 모로코음식을 먹고 뉴욕으로 돌아와서는 도심에 있는 ‘비트라이스인’이라는 나이트클럽에서 파티를 즐겼다. 그리고 맨해튼 ‘리틀이탈리아’에 있는 한 카페에서 스테이크와 계란을 먹었다. 그리고 죽기직전 바나나넛 머핀을 조금 즐겼다.

▲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지에 실린 히스 레저 관련 '에스콰이어' 보도 논란.     © 인터넷저널


이처럼 에스콰이어에 보도된 내용 중 사실로 확인된 것은 없다. 다만 작가가 재구성한 것인데 히스가 일기에 기록한 형식으로 쓴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글을 시작하고 있다. “네가 죽은 뒤 죽기 직전 그 며칠이 어떠했는지 중요해졌다.”
 
“죽기 전 며칠이 중요해졌다”
 
회의적인 독자들은 테디오가 어떤 새로운 것도 밝혀내지 못했으면서 그저 관심을 끌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랭거 편집장 이야기는 좀 다르다. “비록, 픽션이라는 문패를 달아 게재했지만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는 아니다.”

그랭거는 또 과거에도 이런 것을 한 번 해봤는데 논픽션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애썼다며 “정말 공을 들인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최대한 현장성과 관련성을 살리려고 많은 작가들과 씨름을 했답니다.”

▲ 생전의 히스 레저. 
픽션을 동원한 재구성 보도의 첫 시도는 2006년 10월 미프로야구 플레이오프 중에 보도된 ‘데렉 제터의 죽음’이란 제목의 글. 뉴욕 양키즈의 유격수인 제터의 시선으로 기술된 그의 스포츠에 대한 고찰과 유명인사, 그리고 죽음을 그린 내용이다.

갱스터는 이에 대해 “우리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어떤 상황을 가능하면 보다 더 생생하게 묘사해보고 싶어 픽션으로 구성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며 “가능한 서둘러 사실을 재구성해보려는 염원으로 그리 한다”고 강조했다.

에스콰이어 역사를 돌아보면 이 매체가 얼마나 언론형 글쓰기를 활용한 픽션곡예에 능숙한 지를 잘 알 수 있다. 실제 1996년 11월호에 실린 엘리그러 콜먼이라는 여성 이야기가 커버스토리에 오른 적이 있는데, 이 또한 가상의 섹시한 캐릭터일 뿐이었다.
 
엘리그러 콜먼도 가상 캐릭터
 
그랭거 국장 시절인 지난 2001년에도 에스콰이어는 인기 3인조 그룹(91년 그래미상 최우수 팝 그룹 퍼포먼스상) R.E.M의 보컬가수인 마이클 스타이프 관련 글을 하나 게재했는데, 이 글 역시 픽션이 가미된 것이었다.

이어 이와 비슷한 조금씩 속임수를 가미한 글들이 계속 나왔다. 섹시한 흑인 여배우 홀 베리가 인터뷰 전문가인 존 스튜어트를 역 인터뷰 하는 글도 그 중 하나이다. 이 이야기는 모두 살아있는 명사 이야기지만 사실이 아닌 경우이다.

하지만 레저 이야기는 최근 죽은 사람이야기를 재구성한 픽션. 명예훼손에 따른 법적 소추를 피하려고 그랭거는 히스관련 글을 커버스토리로 싣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어떤 경우든 글이 약용되는 걸 원친 않습니다.”

▲ 에스콰이어 온라인판에 '히스 레저의 마지막 날들'이란 제목으로 실린 픽선.     © 인터넷저널


이에 대해 레저와 그의 가족의 공식 대변인인 마라 벅스바움은 논평을 피했다. 그녀는 가족들이 에스콰이어에 실린 내용이 뉴욕타임스에 보도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벅스바움은 보도 뒤 그랭거에게 보도 내용을 요청해 받아 놓은 상태다.

레저가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게 밝혀진 뒤 그랭거는 대형스타도 아닌데(그랭거가 보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털어놓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고 말했다. “호기심이 생겼죠. 왜들 그리 호들갑을 떠는 지 이해할 수 없었거든요.”
 
“왜들 그리 호들갑을 떠는지...”
 
골프 매거진 부편집자이자 유능한 픽션 작가인 테디오는 레저가 죽은 뒤 그의 행적을 따라 레스토랑, 카페, 공원 등을 나흘 동안이나 찾아다녔다. 이에 대해 그랭거는 테디오가 쓴 출판 안 된 소설을 읽고 있었으며 결국 그녀에게 줄 일거리를 찾고 있던 참이었다고 말했다.

테디오가 이 일을 맡게 됐을 당시에는, 결과물을 픽션으로 처리할지, 아니면 논픽션으로 할지 확정돼 있지 않았었다고 그랭거는 주장했다. 그는 내막을 알아보기 위해 유능한 작가를 우선 먼저 현장에 보냈던 것이었다.

그녀 글 중 일부는 사실이다. 레저가 죽기 전 사흘 동안 런던에 있었던 점, 그리고 곧 뉴욕으로 돌아온 것도. 카페 ‘마이로’에서 바나나넛 머핀을 먹은 것도 사실로 밝혀졌다.
 
에스콰이어는 이처럼 픽션을 가미한 문학적 기술을 활용하는 ‘새 저널리즘’ 매체의 선두주자 중 하나. 이런 흐름은 1060년대 시작됐는데, 게이 탈레스, 헌터 S. 톰슨, 톰 울프 등의 작가군이 개척한 당시에는 새로운 매체 글쓰기 흐름. 서술적 논픽션 보도를 할 때 이용됐었다.

당시 이런 문학적 보도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것은 탈레스가 1966년 에스콰이어에 게재했던 ‘프랭크 시나트라는 감기 걸렸다’는 제목의 글. 이 작품은 현대 유명인사의 근황을 소개하는 보도 장르에서 선구적인 것으로 꼽힌다.
 
‘프랭크 시나트라 감기걸렸다’
 
이에 대해 뉴욕대학(NYU)에서 매거진 글쓰기를 가르치며 당대 전문가들과 인터뷰한 실험적 글을 모은 책 ‘새롭고 새로운 저널리즘’을 펴낸 로버트 보인톤 교수는 자신이 제창한 형식이 활동되는 것에 대해 환영의 입장을 드러냈다.

“매거진들이 실험적 글쓰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완벽한 새 글쓰기 형태를 만들어 내야합니다.”

에스콰이어에서 ‘엘리그러 콜맨’(1996년) 스토리를 만들어냈던 전직 유명 작가인 마르타 쉐릴(지금도 에스콰이어 발행인란에 보면 작가로 기록된)은 히스 레저 기사에 대해 에스콰이어식 ‘언론성격 멍텅구리’(저널리스틱 톰플러리) 보도스타일에 딱 맞는다고 주장했다.

“당신이 에스콰이어 구독을 원한다면, 그리고 이런 보도에 놀라지 않을 태도를 가졌다면 당신은 분명 보수적 독자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풍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사람들이 에스콰이어를 찾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랭거는 1997년 이후 에스콰이어 편집인을 해오고 있다. 그의 임기동안 판매 부수는 꾸준히 올랐다. ABC(미국발행부수인증기구)에 따르면, 65만8천부에서 지난해 말 72만1천부까지 상승세를 기록했다.

언론계에서 에스콰이어는 이런 새 글쓰기로 극찬을 받고 있으며, 그랭거 체제하에서 10여개 나라에서 잡지관련 상을 받았다. 그랭거는 라이벌인 GQ에도 한 때 근무했었는데, GQ의 발행부수는 91만4천부다.
 
‘멍텅구리’가 좋아? 싫어?
 
하지만 이런 글쓰기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워싱턴 앤드 리 대학’(버지니아주 렉싱턴 소재) 언론학과 에드워드 바서맨 교수는 “각 장르의 최대 무기를 모두 희생시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보도문에서 진실성, 픽션에서 상상력을 잃는다”고 경계의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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