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리 아등바등 어리석게 살았지”

[몽골리포트③] “몽골선 한꺼번에 많은 일 하거나 화내지 말라”

윤경효 통신원 | 기사입력 2008/03/25 [10:02]

“왜 그리 아등바등 어리석게 살았지”

[몽골리포트③] “몽골선 한꺼번에 많은 일 하거나 화내지 말라”

윤경효 통신원 | 입력 : 2008/03/25 [10:02]
3월 3일 월요일. 사무실 이사도 마치고 이제 본격적으로 몽골지부의 업무가 시작되는 날이다. 날씨도 어느새 풀려 봄기운이 완연하다. 푸른아시아 몽골지부의 새 출발을 축하해 주는 듯... 몽골 활동가들과 푸른아시아 몽골지부의 비전과 전략을 공유하고 "으쌰 으쌰, 파이팅"하며 새롭게 출발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렌다.
 
아침 9시. 사무실 살림들을 다시 살뜰히 살피고난 뒤 오늘 할 일을 생각해 본다. 오전에 회의를 마치고 업무시작 기념 점심식사를 맛있게 먹고, 오후부터 서울본부에서 요청한 일들을 처리하면 될 것이다.
 
9시 30분. 바야르팀장이 오지 않아 연락해 보니, 받아야 할 수하물의 세관문제 때문에 늦는단다. 마침 다와팀장도 몸이 안 좋아 병원진료를 받아봐야 할 것 같다하여 오전에 다녀오라 했다. 오전에 계획한 회의는 아무래도 물 건너 간 듯... 오후 2시에 회의를 하기로 하고 오전 내내 프린터와 인터넷 연결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으싸 으싸, 파이팅"
 
몽골에서 인터넷 속도가 너무 느려 하기 힘들다고 얘기 들었는데, 정정해야 할 듯하다. 속도가 느려 힘든 게 하니라, 모뎀이다 보니 중간 중간 인터넷이 끊기는 것이 사람 복장 터지게 한다. 업무에 필요한 컴퓨터프로그램을 인터넷 자료실에서 다운로드 받다가 중간에 끊기는 정도는 귀엽게 봐줄 만하다. 다시 받으면 되니깐...

▲ 푸른아시아 몽골지부 사무실. 전에 한국인이 법률사무소로 사용했던 곳이란다. 지붕 위의 간판은 바로 그 법률사무소 것. 돈도 아낄 겸 플래카드로 덮어 씌어 재활용할 생각이다. 독채에 화장실이 딸려 있어 편할 것 같다. 사무실 앞 작은 정원에 나무도 심을 계획이다. 식물 키우기를 성공한 적이 없는데, 이번엔 꼭 살려야지...     © 윤경효

 
일껏 장문의 이메일 답장 써서 보내기 단추 눌렀는데 연결이 끊겨 도로 아미타불 되면... 헐~ 나름의 노하우라면 한글문서에다 내용을 작성한 뒤 옮겨 붙이기 방법을 쓰는 것이다. 여하튼, 이메일 쓸 때 수시로 인터넷 연결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일주일 사이 생긴 버릇이라면 버릇이다. 채팅 메신저프로그램을 인터넷 연결 상태를 확인하는 지표로 사용하는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바야르팀장이 5시에야 왔다. 세관에서 요청하는 서류들이 많아 여기 저기 돌아다니느라 이제야 마무리되었다고. 음... 예전 한국에서는 이런 상황이라면 나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화를 냈었다. 아주 우렁차고 명료한 목소리로... 그런데 이상하게도 화가 나질 않고 오히려 일이 잘 마무리되었다니 다행이라고 말해주었다. ‘이제 왔으니 회의 합시다’라는 말이 참, 편안하게도 나왔다. 서울에서 사전에 주지한 게 있어서 그런가?
 
여하튼, 설레는 마음으로 활동가들과 “으쌰, 으쌰” 하려던 계획은 아스라이 사라져버렸고, 그 후 일주일 동안 정말 하루에 1~2가지 일을 했다. 월요일엔 1년 동안 할 일에 대해 공유를 했고, 화요일엔 이번 주에 할 일을 공유했다. 수요일엔 지부사무소에 걸 간판사이즈를 쟀고, 국제전화를 신청했으며, 목요일엔 묘목가격과 우물관정 견적을 알아봤다.
 
"단지, 기다리기만 하라"
 
▲ 윤경효 통신원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한 일을 돌이켜 보니, 이 정도를 일했다고 말해도 되는 것인지 우습기도 하다. 그래도 참 놀라운 것은, 이번 주 7가지 일을 계획했었는데, 금요일, 모든 것이 하루에 다 정리되었다. 심지어 그사이 무선 인터넷 공유문제가 해결되어 통신작업환경이 개선되었다. 일전에 총장이 “몽골에서 일이 안된 적은 없다. 단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라고 말하던 게 문득 생각났다.
 
푸훗. 갑자기 한국에서 뭐에 쫓기듯이 일을 처리했던 것이 생각난다. 가만 돌이켜보니, 한국에서도 하루에 잡다한 일을 포함해서 기껏 1~2가지 일을 마무리한 게 다였다. 그런데도 하루 일과를 시작할 땐 항상 비장했다. 오늘은 모든 것을 해치우고야 말겠어라는 의지를 불태우면서...
 
사람이 현명하면 일이 될 때와 안 될 때를 알고 여유 있게 처신한다고 했던가. 그동안 나는 참으로 아등바등 어리석기 그지없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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