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한국인 물세례 난장 ‘띤잔축제’

미얀마공동체·버마작가모임, 13일 부천운동장서 버마전통축제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8/04/14 [18:35]

버마·한국인 물세례 난장 ‘띤잔축제’

미얀마공동체·버마작가모임, 13일 부천운동장서 버마전통축제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8/04/14 [18:35]
버마인들의 이색 물 축제가 13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렸다. 원어로 ‘띤잔’(Thingyan)인 이 축제는 새해를 앞두고 벌어지는데, 이웃에게 물을 뿌려 깨끗한 한 해 삶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불교 국가인 버마와 태국에서 벌어지는 이 축제는 불교(북방)력으로 새해를 앞두고 사흘 동안 벌어진다. 대개 4월 13~15일 사이인데 운세를 보는 사람들이 결정해 발표한단다. 이웃사람과 부처에게 물을 뿌려 찌든 때(죄, 부정)를 씻어내며 복을 빈다. 태국서는 ‘송크란’, 버마에서는 ‘띤잔’이라 부른다.
 
“찌든 때 씻고, 새해 복 가득...”
 
한국에 거주하는 버마인들 500여명과 한국인 2백여명이 지난 13일 낮 12시부터 4시간 동안 부천종합운동장 원형광장 야외무대에서 띤잔 축제를 열었다. 이날 행사는 미얀마공동체(회장 킨 마웅 인)가 주최하고,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모임(회장 임동확)과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석왕사가 후원했다.

▲ 띤잔축제에서 서로 물을 뿌리며 즐거워하는 버마공동체 회원들.     © 최방식

▲ 새해를 사흘 앞두고 열리는 물축제는 서로에게 찌든 때를 물로 씻어내며 한해 복을 비는 난장이다.     ©최방식

▲ 13일 부천종합운동장 원형공원 무대에서 열린 물축제에서 한 어린이가 물을 끼얹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 최방식

▲ 띤잔 축제가 열린 부천종합운동장 원형공원 상설무대.     © 최방식


정오를 조금 넘어 띤잔 축제를 선포하는 공식 행사가 시작됐다. 킨 마웅 예인 회장의 대회사에 이어 임동확 버마작가모임 회장 등의 축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한국 시인 2명이 기념시를 낭독했다. 작가모임 소속 시인이다.

박몽구 시인이 ‘거리를 넘어 우리는 하나이다’(아래 박스에 전문 게재) 시 낭송을 시작했다. 박 시인은 77년 월간 ‘대화’ 시당선으로 등단했으며 ‘개리 카를 들으며’, ‘마음의 귀’, ‘봉긋하게 부푼 빵’ 등의 시집을 냈다. 이어 박윤일 시인이 ‘고추잠자리’를 낭송했다. 박 시인은 계간 ‘시작’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1부 기념식이 끝나자마자 물세례가 시작됐다. 무대 중앙에는 서너 개의 큰 물통이 등장했고, 여러 군데서 수도꼭지에 연결한 물 호스가 등장했다. 100여명의 버마인들이 무대 중앙으로 몰려나와 서로 물을 뿌리며 새해 복을 기원했다.
 
▲ 버마민족민주동맹 회원이며 시인인 조모루인에게 친구가 물을 끼얹고 있다.     © 최방식
▲ 버마민족민주동맹 지도부. 아웅 민 스웨 의장(왼쪽)과 르윈 부의장.     © 최방식
▲ 한국의 새알죽과 비슷한 버마 전통 음식을 만드는 버마공동체 사람들.     © 최방식
▲ 부천외국인노동자의집에서 나온 한 활동가. 신철영 전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의 딸로 확인됐다. 친구들에 의해 물에 풍덩 빠진 뒤 장난스럽게 웃고 있다.     © 최방식

“버마 형제들의 땅에 새벽을”
 
한쪽에서는 축제에 참여한 한국인들도 이들과 함께 어울려 봄날 오후를 즐겁게 보냈다. 이날 축제에 참여한 한국 민간단체는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 소속 회원·직원들과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모임 회원들이었다.

무대 위에선 버마 가수들이 지칠 줄 모른 채 흥겨운 노래와 음악을 쏟아냈고, 리듬에 맞춰 축제 참여자들은 소방호스를 흔들거나 바가지에 물을 퍼 흩뿌리며 펄쩍펄쩍 춤을 추었다. 기자도 여러 차례 물벼락을 맞았다.

안면이 있는 버마 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 소속원들을 대부분 만날 수 있었다. 아웅 민 스웨 의장을 비롯해 르윈 부의장, 네투나잉 총무, 조모아 기관지 편집국장, 조모루인 시인, 뚜라 버마액션 대표 등이 반갑게 맞았다.

 
▲ 버마인에게 물세례(조금)를 받은 김자흔 시인(오른쪽).     © 최방식
▲ 버마인으로부터 물세례를 받는 김이하 시인.     © 최방식
▲ 물축제를 후원한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모임 소속 회원들.     © 최방식
▲ 띤잔축제에 함여한 작가모임 소속 회원들. 축제 문화에 어울리지 않게 부동자세로 찰칵...ㅜ.ㅜ     © 최방식

작가모임은 오후 3시쯤 축제장을 나와 뒤풀이 장소로 이동했다. 상춘객이 얼마나 몰렸는지 사방 길이 막혀 빠져나오는데 애를 먹었다. 부천시 경계를 넘어 시흥 어딘가 한 식당에 들러 늦은 점심과 소주잔을 기울였다. 음식값이 너무 비싸 불편했는데, 임 회장이 초청한 한 분이 자진해서 바가지(?)를 썼다. 버마는 이제 새해라는 데 그 분 복을 빈다.
 
‘교양있는분’ vs. ‘교양없는자’

 
소사역 어딘가에 있는 막걸리 집에서 2차로 잔을 기울이며 저물어가는 봄날 어느 일요일 오후를 보냈다. 막걸리를 마시기 싫어하는 ‘교양 있는’ 몇몇은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교양 없는’이들이 시작한 막걸리판에 결국 모두 참여했다.
 
 

▲ 띤잔 축제에서 서로 물을 부으며 즐거워하는 버마인들.     © 최방식
 거리를 넘어 우리는 하나이다
/ 박몽구 시

 
 

 

 
 
 
검은 파도 험한 산 넘어
철의 숲으로 둘러쳐진 집에서
울고 있는 한 여자에게서
나는 광주의 잔인한 봄을 읽는다

 
온통 빨간 가시 돋은 해 피하지 않으며
진종일 봄뜰을 가꾸고
맑은 눈의 아이들에게
깨끗한 새벽을 안겨줄 수 있다면
한 줌 재로 사라져도 좋은 어머니들
무너진 가슴에 겨누어진 총구에서
뜨거운 금남로의 봄을 본다

 
달콤하게 부푼 의자를 차지할 수 있다면
깊은 밤에도 반짝이지 않는 별
숨은 신이 쥐고 흔드는 대로
제 형제들의 주머니를 터는
구린내 나는 자본을 지키기 위해서
구릿빛 근육으로 제 땅을 지켜온
피붙이들을 몰아내고
검은 석유를 퍼울리면 그만인 모리배들에게
광주의 어두운 닮은꼴을 만난다

 
대낮에도 어둡게 거리를 덮은
무기의 그늘에 맞서서
잠시 책을 덮은 채 거리를 메운
젊은이들, 절을 버린 채 어두운 거리에 선 비구들
쟁기를 던져둔 채 달려나온 농부들
굶주리는 수많은 형제들에게 등을 돌려
눈먼 자본에게 나라의 허파를 떼어준 채
숨가쁘게 깊은 늪으로 끌고가는
검은 손에 맞서서 온몸으로 깨끗한 새벽을 여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하나이다
잔혹한 시간을 견디며 언제나 한마음이다

 
높은 산 부르튼 발로 넘어
거친 파도 맞잡은 손으로 함께 건너
어떤 사악한 무기로도
막을 수 없는 봄뜰 일궈냈듯
어두운 권력의 눈 다시는 뜰 수 없게 감겨 주었듯
버마, 형제들의 땅에
끝내 누구도 막지 못할 봄이 올 것을 믿는다
검은 파도 넘어 험한 산 넘어
우리가 하나일 때
마침내 깨끗한 새벽이 동터올 것을 믿는다

 
 
고추 잠자리
/ 박윤일 시

 
 

 

 
 
 
장릉 연못 벤치에 벌써 한 시간째 앉아 있다
모두 떠났는데,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발그스름히 충혈된 눈 속에
꽃 진 물밭을 담고서 있다
애인과 함께 산책하던 아이
꽃들 지나간 시간 위에 앉아 있는
잠자리 날개 꺾어
바람에게 한 점 던져 주었다
놀란 잠자리들 다른 자리로
모두 옮겨갔는데,
꼭 그 아이 때문도 아닌 것 같은
처음 시작부터 아득한 울음이었던 날갯짓
뼛속까지 붉은 잠자리 한 마리가
들썩이는 등받이 난간 위에
꼼짝없이 걸터앉아 있다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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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gard77 2008/04/22 [13:41] 수정 | 삭제
  • 늦게까지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괜한 질문을 해서 귀가가 더 늦어지셨죠? 한 나라의 문화와 기후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 기자 2008/04/15 [22:29] 수정 | 삭제
  • 버마인들은 신명나게 노는 데 우리만 뻘쭘하게 노니 좀 민망했습니다.
    물에 젖은 분은 그래도 축제를 좀 즐긴건데요 뭘.
  • 콩미 2008/04/15 [15:31] 수정 | 삭제
  • '교양있는 분(높음)'과 '교양없는 자(낮음)' 제목 압권이네요. 근데 어케요, 젖은 목아래가 다 드러나 민망해져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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