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숲 속에서 찾은 ‘이별의 기쁨’

[시네프리뷰]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가족애 다룬 ‘너를 보내는 숲’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8/04/17 [10:43]

마침내 숲 속에서 찾은 ‘이별의 기쁨’

[시네프리뷰]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가족애 다룬 ‘너를 보내는 숲’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8/04/17 [10:43]
▲ 포스터.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은 큰 생채기를 남긴다. 죄책감, 동정심, 또는 그냥 밀려오는 뜻 모를 슬픔까지 아파할수록 병은 더 깊어간다. 어찌하면 이런 아픔을 치유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이별 방정식을 풀어가는 영화가 있다. 그 것도 숲 속에서. 7년 전에는 ‘나라아먀 부시코’였고 이번에는 ‘너를 보내는 숲’이다.

소스라치게 놀라는 숲을 느닷없이 마주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언뜻 본 된바람과 숲의 절규는 분명 소슬하다. 넓디넓은 들판 한 가운데서 희미한 풍경소리. 만장 몇 개와 일단의 무리는 숲으로 가는 행렬이자 암시다. 어머니를 지개에 지고 나라야마로 향하는 아들의 천근만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좇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그 앵글과 유사하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과의 만남은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에서 졸지에 이뤄졌다. 97년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수자쿠’에 이어 ‘너를 보내는 숲’으로 지난해 다시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일본의 거장 여성 감독을 마주한다니 행운을 잡은 셈이다. 한데, 감독이 독감으로 시사회에 못 오게 됐단다. 아쉽지만 영화 속에서 만날테니 그리 낙담은 하지 않았다. 개봉은 4월 24일.
 
“독감으로 시사회에 못 온데”
 
영화 제목을 듣곤 처음 고개를 갸우뚱했다. 원제 ‘모가리노 모리’(殯の森)를 보고서야 짐작되는 게 있다. 불현 듯 떠오른 게 쇼헤이의 ‘나라야마 부시코’. 그도 숲을 무대로 한 이별의 영상미학을 보여줬잖은가. 노모를 ‘고려장’(숲에 버리는)하고 내려오는 데 하얀 눈이 내리며 평화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바로 그 장면말이다.


▲ 아들 잃은 마치코(오른쪽)와 아내를 잃고 치매에 걸린 시게키가 녹차밭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역자는 ‘모가리’를 ‘소중한 이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시간 또는 장소’라고 번역했다. 제작자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으니 기자가 아는 빈(殯)은 주검을 묻는 곳이다. 굳이 너를 보내는 숲도, 소중한 사람과 이별하는 숲도 아닌 그냥 보내고 이별하는 곳인 것이다. ‘너’나 ‘소중한’ 이가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말이다.

각설하고, 숲, 들판, 그리고 바람과 나뭇잎을 담은 카메라는 시골의 한 요양원에서 90분 드라마를 시작한다. 사고로 아들을 잃고 이 요양원에서 간병일을 시작한 마치코. 자기의 실책으로 아들이 죽었다는 죄책감에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는 요양원에서 시게키라는 치매 걸린 노인을 만난다. 시게키의 기억 속엔 33년 전 죽은 아내 마코 뿐이다.

▲ 마치코와 시게키가 붓글씨를 쓰고 있다. 

둘은 가슴속 아픔을 드러내지 않지만 서로를 이해해 간다. 마침내 마치코는 마코의 무덤을 찾아 떠나는 시게키의 여행길에 동참한다. 하지만 자동차 사고. 그리고 긴 숲 속 여정이 시작된다. 둘은 그 숲에서 서로의 아픔을 토해낸다. 사무치는 그리움을 따라 마침내 마코의 무덤.
 
사무치는 그리움에 숲으로...
 
▲ 마코의 무덤을 찾아 마침내 아픔을 내려놓는 시게키와 마치코.
시게키는 마코를 그리워하며 33년간 써왔던 일기를 꺼내놓는다. 그녀가 좋아했던 자명종과 함께. 미친 듯이 무덤 한 귀퉁이를 파고는 몸을 구겨 흙 속에 포갠다. 그리움의 여정을 마치는 일종의 의식이다. 아픔을 내려놓는 것이다. 곁에서는 아들에 대한 자책을 날려보내는 마치코가 또 하나의 이별을 하고 있다.

시놉시스는 간단하다. 이 영화의 묘미는 숲이 전하는 메시지. 영상만 좇다보면 숲의 소리를 놓치기 십상이니 조심하시길. 소슬 바람의 움직임,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소나기, 나뭇잎의 속삭임, 수풀과 바위가 내는 소요, 삶과 죽음을 오가는 리듬을 듣는다면 표값은 건지는 셈이다.

또 하나 놓쳐선 안되는 게 숲의 얼굴을 보라는 것이다. 마치코와 시게키가 무덤을 찾아 첫 발걸음을 뗐을 때 숲은 어떤 메시지도 주지 않는다. 제 아픔을 털어놓지 않는 폐쇄적인 절망에 숲은 길도 보여주지 않는다. 마침내 모두가 제 아픔을 드러냈을 때 숲은 품을 내어준다. 상처를 치료할 수 있도록.

졸지에 가족을 잃었던 이들. 숲 속 묘지에 남겨둔 아내가 애달파 33년을 아파했던 시게키. 아들의 주검에 자학의 몸부림을 쳐 온 마치코. 둘은 숲에 안기어 생명과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이고서야 이별의 의미를 파악했다. 아름답게 이별하는 법도 그 다음 깨닫는다. 마침내 둘은 그 숲 속에서 그리운 가족을 재회한다. 환영이 아니다.
 
“귀 활짝 열고 숲소리 들으시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에서 봤왔던 살아있는 숲. 가와세 감독의 작품에서 보니 느낌이 남다르다. 다츠헤이가 어머니를 숲에 남겨두고 집에 들어오는데 아들이 부르는 기쁨의 노래가 다시 들려오는 듯 하다. “할머니는 운이 좋아. 눈이 오는 날에 나라야마에 갔다네.” 쇼헤이의 숲 속 메시지는 가와세 영화에서 자명종 소리로 길고 선명하게 울려 퍼진다.

아들 잃은 아픔, 그 쓰디쓴 아픔을 내려놓으며 숲과 소통하는 오노 마치코의 연기는 나름대로 합격점. 치매 노인역을 잘 소화한 우다 시게키, 연기를 해본적 없는 편집 스태프의 변신이라는 데 놀랍다.

이 영화의 티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설정 몇 개가 의아하다. 마치코와 시게키의 느닷없는 녹차밭 숨바꼭질 장면이 그 중 하나. 연인영화에 등장하는 ‘나 잡아봐라’ 연기. 수박을 들고 또 한 번 벌이는 ‘나 잡아 봐라’ 씬도 마찬가지. 연인이 아니어도 사랑을 그리 표현할 수 있다는 발상이 좀 놀랍다. 힌트도 없이 말이다.

추운 밤을 지새우며 마치코가 시게키를 덥히기 위해 체온을 전하는 장면인데 윗옷을 벗고 가슴을 드러내며 노인을 뒤에서 껴안는 모습이 또 다른 하나. 꼭 젖가슴을 드러내야 했는지 모르겠다.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노인에게 대신 마코가 되어주는 설정으로 보면 양해 할 수 있겠지만. 생뚱맞다.

한편, 가와세 나오미 특별전이 17일부터 열흘간 하이퍼텍 나다에서 이어진다니 그녀의 주옥같은 가족영화를 만끽해 보시길. '너를 보내는 숲'을 포함해 '출산', '그림자', '사라소주', '벚꽃편지', '카카라바아', '수자쿠' 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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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콩미 2008/04/28 [19:48] 수정 | 삭제

  • 차밭에서의 초록 숨박꼭질은 생채기의 치유를 상징하는 게 아닐까요?
  • 영화광 2008/04/21 [01:07] 수정 | 삭제
  •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네여. 꼭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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