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난 주인, 광화문일대서 ‘촛불난장’

[길거리통신] ‘72시간국민행동’ 5일밤 시작, “머슴 혼내주자”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8/06/06 [19:38]

뿔난 주인, 광화문일대서 ‘촛불난장’

[길거리통신] ‘72시간국민행동’ 5일밤 시작, “머슴 혼내주자”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8/06/06 [19:38]
72시간 릴레이 국민행동이 시작된 5일 밤 광화문·시청·종로 일대는 난장이었습니다. 내리 사흘간 촛불문화제를 지속한다는 데 하나 같이 밝은 모습입니다. 딸·아들과 함께 나온 아빠·엄마들, 연인·친구와 손잡고 모여 앉은 이들, 급우와 함께 나온 학생들 모두는 무례한 머슴을 용서할 수 없다고 다짐하고 외쳤습니다.

오후 6시를 조금 넘겼을까요? 후배 기자 한 녀석이 문을 밀고 들어섭니다. 촛불문화제에 참여하러 나왔다가 들른 모양입니다. 어쩝니까, 배라도 든든히 채워줘야죠. 세종문화회관 뒷골목 맛이 꽤 알려진 순댓국집에 자리 잡고 앉았습니다. 막걸리도 한 잔씩 따라놓고요.

뚝배기 한 그릇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해치우고 허리를 펴는데 한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선배 언론인 한분이 들어섭니다. 부인과 아들을 대동했는데, 반바지 차림에 운동화 바람입니다. 어쩐 일이냐고 물으니 손가락으로 광화문 쪽을 가리킵니다. “촛불집회에 한 번 참여하려고.”

▲ 새문안교회입니다. 광화문으로 통하는 모든 길을 경찰이 다 막아버렸습니다. 이 곳 담을 넘어 광화문으로 가는 데 교회 안에 경찰이 꽉 들어찼습니다. '금관의 예수'는 어디로 가셨을까? 이 신성한 땅을 내놓으시고...     © 최방식 기자

▲ 교회 담을 넘어서니 광화문 일대에 '성난 촛불'이 가득합니다. 신문로 쪽으로 향하는 대행진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 최방식 기자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가족을 제쳐두고는 우리 막걸리판에 끼어듭니다. 반주 한 두 잔 한다는 게 꽤 여러 잔 늘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일본식 청주 한 잔으로 입가심을 하겠다고 자리를 옮겼습니다. 사케 두어 잔은 취중 이별의 아쉬움을 차분히 가라앉혀 줍니다.

“왜 길을 막아 이쉐이들아”

시끌벅적 하던 이 집이 한산합니다.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촛불문화제에 갔거나 집회시위가 싫거나 무서워 잽싸게 집에 들어간 때문일 겁니다. 그렇게 조금 있으니 멀리서 구호가 들려옵니다. 우리를 부르는 소립니다. 이쯤해서 일어나야 합니다. 촛불을 들어야 하니까요.

광화문 네거리로 통하는 모든 도로를 꽉꽉 막아놨습니다. 정말이지 운전실력 하나는 대단합니다. 버스 앞뒤를 사람 하나 못 지나가도록 딱 붙여놨습니다. 골목길로 들어서니 중무장한 전투경찰이 두세겹 막아섭니다. 광화문에 볼일이 있다는 데도 막무가냅니다.

담치기를 했습니다. 새문안교회 뒷문을 넘어 정문으로 나가려고요. 그런데 담에도 경찰이 지켜서 있습니다. “왜 막아 이 쉐이들아” 호통을 치며 경찰을 제치고 담을 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교회 안에도 전경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 꼬마들을 데리고 엄마들이 나왔군요. 도대체 이들의 배후는 누구란 말입니까? 집에서도 잘 노는 아이를 들쳐 없고 나온 엄만가요? 아님 텔레비전 좀 보려는 데 밖에 나가자고 조른 꼬맹이들인가요?     © 최방식 기자

▲ 고교생, 대학생들이 광화문 일대를 차지하고 걸거리에 나앉았습니다. 주인에게 거짓말 하는 머슴을 용서할 수 없다고요. 국민을 방망이로 때리고 방패로 찍는 조폭경찰을 그냥 놔둘 수 없다고요.     © 최방식 기자

87년엔 안 그랬습니다. 경찰이 교회(또는 성당) 밖을 에워싸고 교회 안에 시위대가 있었습니다. 어디 경찰이 교회 안에 들어와 진을 치고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명박 장로를 좋아하는 교회가 시민들 두들겨 잡으라고 내줬나요? 교회까지도 권력의 도구화한 느낌이 씁쓸합니다.

교회 정문을 넘어 광화문 대로로 나오니 촛불을 든 시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광화문 사거리 넘어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어떤 이는 촛불 하나, 또 다른 이는 ‘이명박 OUT' 피켓을 들었습니다. 정비된 대오도 일률적 구호도 없습니다. 마냥 즐겁게 잡담과 수다를 떨며 행진합니다. 학생들이 주축인 모양입니다.

“교회까지 권력의 도구로...”

보도에 따르면, 이날 서울대, 연세대, 이대, 홍익대, 서강대 등 여러 대학이 동맹휴업을 벌였습니다. 신촌일대에서 촛불집회를 마치고 광화문으로 온 모양입니다. 민주노총도 찬반투표를 거쳐 ‘총파업’을 벌인다고 했는데 어찌됐는지 모르겠습니다. 10일 100만명 촛불대행진으로 집결하겠지요?

우린 대오를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광화문 네거리로요. 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여긴 정말 난장입니다. 2002 월드컵이 열리던 날 바로 그 시각에 딱 이랬습니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신문로까지, 시청과 종로1가까지 이어지는 이 도로엔 수만명의 시민이 들어찼습니다.

 
▲ 어린 학생입니다. 청년들입니다. 이들이 길거리에 앉아 있는 겁니다. 머슴에게 주인을 배반하지 말라고 외치면서요. 거짓말 좀 그만 하라면서요.     © 최방식 기자
▲ 주한 미대사가 말을 막 하더군요. 한국인들에게 과학도 모른다고. 이 나라 심장부에 우리를 능멸하는 이가 있으니, 이 정권은 국민이 아닌 이런 인간들 편에 서겠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 최방식 기자

광화문 네거리 충정로 방향 귀퉁이에 마이크 성능이 괜찮은 트럭이 한 대 있습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관계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젊은이가 마이크를 잡고 좌중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쥐새끼는 쥐구멍으로, 국민은 이긴다” 구호를 연호합니다. 주변에선 뒤 따르고요.

저만치 오마이뉴스 한 후배기자가 반갑다고 아는 체를 합니다. 기사를 쓰거나 송고하러 가는 모양입니다. 조금 지나선 아내의 대학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제 친구 연락처를 모른다며 나더러 알려달라는군요. 그 곁에 교수로 소개받은 한 남자와 무심코 인사만 건넸는데 남편인 모양입니다.

트럭 위에서 참가자들의 연설이 시작됐습니다. 한 중년의 아저씨는 부산에서 올라왔다고 그랬습니다. 정말 이럴 줄 모르고 이명박을 찍었는데 후회한다고 반성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72시간 국민행동’을 보고 참여하려고 일부러 올라왔다는군요. 큰 박수가 터집니다.

“쥐새끼는 쥐구멍으로...”

몇 분 연사가 거쳐 갔을 겁니다. 대부분 중년의 남자입니다. 그러다 사회자의 좀 다른 목소리가 터집니다. “지금까지 남자였는데, 여기 여잡니다. 그 것도 여고생이군요.” 광화문 네거리 일대는 환호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와, 장하다...”

 
▲ 여전히 촛불문화제 주인공은 여학생입니다. 돈 좀 벌게 해주겠다는 거짓말에 현혹된 남자들의 실수를 이 젊은 여성들이 만회하고 있는 겁니다.     © 최방식 기자
▲ 한국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잔다르크로군요. 양손에 촛불을 든 그대 너무 아름다워요. 희망의 촛불을 밝혀 든 손에 밝은 미래가 보이나니...     © 최방식 기자
 
가늘고 떨리는 앳된 목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전 00고교생입니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100일밖에 안됐는데 국민을 못살게 굽니다. 저희들에게는 ‘0교시’, ‘우열반’으로 숨조차 쉴 수 없게 하겠답니다. 시민, 학생을 무시합니다. 이젠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거기 서 있었는지 모릅니다. 문득 주위를 돌아보니 그 넓은 광화문 네거리 가득 사람들이 앉아 조그만 트럭 위 연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나만 한 가운데 서있는 중입니다. 후배 녀석도 안보입니다. 화장실에 갔을 거라 여기고 뒤로 빠졌습니다.

대열 뒤 즉석집회에 참여하지 않은 쪽엔 또 다른 난장입니다. 한쪽엔 뮤지션 서넛이 공연을 한창 벌이고 있습니다. 벽안의 중년 외국인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군요. 눈을 지그시 감고서요. 한참을 지켜보는데 관중이 조금씩 늘어납니다. 지폐를 빼든 이도 여럿 보입니다.

미대사관 쪽으로 눈을 돌리니 말썽을 빚은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를 비난하는 길바닥 구호가 눈에 띕니다. “과학 좋아하는 버시바우! 주한미군 10년 먹여 과학적으로 검증하자”는 글귀입니다. 한국인을 무시하는 듯 한 그의 무례한 언사를 꾸짖는 구호군요.

 
▲ 촛불은 그렇게 소녀의 눈에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그 맑고 고운 눈엔 언제나 희망이 넘쳐납니다. 새 하늘 새 땅을 그리는 이쁜 가슴 속 깊이에서...     © 최방식 기자
▲ 꼭 종합운동장에 응원 온 느낌입니다. 젊은 이들은 저렇게 아무데서나 일어서 즐겁게 춤을 춥니다. 보는 이도 몸을 흔드는 이도 마냥 신이 납니다     ©최방식 기자
 
“이젠 참을 수가 없습니다”

종로 쪽으로 들어서니 유원지 어딘가에 온 느낌입니다. 함께 온 이들끼리 무리지어 둥그렇게 모여 앉은 팀이 대부분입니다. 그 중엔 시원한 음료수나 캔맥주를 즐기는 이들도 눈에 띄는 군요. 지칠 때 먹으려 가져온 듯 한 과자를 꺼내놓고 담소중인 이도 있고요.

촛불문화제에 배후가 있다고 그랬습니까? 초는 누가 대느냐고 대통령이 그랬다죠? 경찰은 다 알겁니다. 10만명이나 있으니 집회 실정을 왜 모르겠습니까? 그런데도 청와대와 그 주인, 그리고 나팔수 조중동만 모른답니다. 알면서 그리하는 거겠죠? 지난 50여년 써먹던 수법이니까요. 허나 어쩐답니까, 이젠 안 먹히니...

“시민이 이긴다, 우린 시민이다”는 외침이 거듭 터져 나옵니다. 배후가 있긴 있습니다. 밖에 나가자고 보채는 딸과 아들을 데리고 야외 축제에 온 아버지와 어머니 말이죠. 아니, 아빠와 엄마를 앞세우고 문밖 발걸음을 꼬드긴 어린 아이들이 불손세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0교시’와 ‘영어몰입교육’, 그리고 ‘우열반’이 싫다고 교실을 뛰쳐나온 여고생과 후배들의 ‘피말리는 경쟁’이 애처로워 학업을 제쳐놓고 나온 새내기 대학생들이 배후였습니다. 청년들의 문화제가 궁금해 슬며시 나와 본 중장년의 아저씨, 아줌마도 불손하달 수 있겠군요.

 
▲ 촛불문화제에 벽안의 중년 뮤지션이 오셨군요. 거침 없는 바이올린 연주에 탄성이 터져나옵니다. 광화문 네거리를 들뜨게 하는 음악인은 스스로 즐겁고 젊습니다.     © 최방식 기자
▲ '72시간 국민행동' 난장에 나온 이들은 모두가 이렇게 하얀 밤을 세웠습니다. 100만 촛불대행진의 그날로 함께 나아가려고요.     © 최방식 기자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어쩌다 마주친 민주노동당 또는 민주신당 깃발 든 이들, 아니면 이명박 탄핵 어쩌고 하는 단체를 꼽으려고 그러는 거겠죠. 하지만 이들은 촛불문화제의 주역도 배후세력도 아닙니다. 그들은 그렇게 불러주기만을 바랄 겁니다. 안타깝게도 아닌 걸 어찌하나요.

“우린 시민, 시민이 이긴다”

기자가 7일 새벽까지 광화문 일대에서 본 촛불문화제는 축제였습니다. 붉은 악마의 그 축제 그대로였습니다. 다른 게 있다면 이명박 물러가라는 구호였습니다. 국민을 무시하지 말라는 분노였습니다. 잘못을 숨긴 채 꼼수를 두고 잔머리를 굴리는 장난에 화났다는 겁니다.

어쩌겠습니까? 개발독재의 시대로, 그 화려했던 경찰(검찰·정보부대)테러의 시대로 되돌리고 싶은 그대들의 속마음이야 잘 알지만 권력의 주인들이 이렇게 싫다며 하얀 밤을 지새우는 데 어쩌겠습니까? 머슴인 그대들이 포기해야지. 주인이 진짜 혼나기 전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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