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돈 말라, 물 잃은 물고기신세?

[기획연재] 재래시장의 역사와 기능③ 모란시장의 하루(하)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9/09/26 [11:29]

재래시장 돈 말라, 물 잃은 물고기신세?

[기획연재] 재래시장의 역사와 기능③ 모란시장의 하루(하)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9/09/26 [11:29]
“조선 사람들이 최대의 즐거움은 장을 보러 가는 일이다. 조선에는 상점이 거의 없고 매 5일만에 장이 열리면 그곳에서 자기가 만든 물건을 바꾸고 자기의 의견을 교환하기 때문이다. 장터에서는 물건을 사고팔고, 행상을 하고 남의 얘기를 늘어놓는 일 외에 기분풀이로 술 마시고 싸우는 일이 허다하다. 옷감을 사러 왔다가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가는 농부도 흔히 있지만 마냥 즐겁기만 하다.”

19세기 말 조선을 여행하며 본 바를 ‘은자의 나라, 한국’이라 책으로 엮어낸 미국인 그리피스 목사(동양학자)의 눈에 비친 저자거리의 모습이다. 대한제국의 멸망을 예고했던 저자. “세계를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닫힌 나라”라는 부정적 글을 썼던 이다. 그의 눈에도 조선 장터의 경제·사회적 기능과 그 역동성이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각설하고, 조선시대 생겨나 전국 먹을거리와 생필품, 그리고 공상품의 유통을 도맡아왔던 장시(場市). 정보의 수집·배포, 오락과 흥의 터전이었으며, 이웃과 만남의 장이 돼 온 장터. 서구에 ‘광장’이 있다면 우리에겐 ‘저자거리’가 있다고나 할까. 이제 그 명운이 다했는지 민속장, 재래시장 모두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하여, 본지가 재래시장의 역사와 기능, 재벌들의 골목상권 대공습에 맞선 동네상인들의 반격을 조명하는 기사를 연재한다. 민속시장을 중심으로 쇠락해가고 있는 전국 700여개 전통 5일장의 모습과 이들의 현주소를 몇 차례 나눠 살펴볼 예정이다. 그 첫 기획으로 성남 ‘모란시장의 하루’를 싣는다. /기자주
 
예비역 군인들의 경제공동체?
 
<지난 글에 이어> 성남시 중원구 상남동 대원천 하류 4천여평에 들어선 모란장은 60년대만 해도 수진2동 모란예식장 주변에만 섰다. 70~80년 그 규모가 커지며 성남 시외버스터미널 주변으로 상설시장과 함께 불어난 것이다. 민속 5일장은 4일, 9일에만 선다. 다른 날에는 성남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는 공영주차장으로 사용된다.

▲ 전통시장은 이제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수도권 최고를 자랑하던 모란장도 쇠락의 길을 간다. 4천명 장터가 이제 찾는 이가 적어 적적해지고 있으니...     © 최방식 기자

▲ 국화빵을 굽는 아낙. 돈벌이가 시원찮으니 일도 전처럼 신명나지 않는다. 사는 이 별로 없어도 그저 구울뿐... 장이 서도 이젠 재미가 없단다.     © 최방식 기자

 
시장의 탄생도 흥미롭다. 월남한 한 군 출신 인사의 땀방울이 깊게 배어있다. 평양 태생으로 혈혈단신 남하한 김창숙. 한국전쟁 때 군 생활을 했고 58년 7월 32살의 나이로 육군대령에서 예편했다. 쿠데타로 군 출신이 대거 정계로 진출하던 61년, 그도 임명직 광주군수를 3개월여 지냈다. 그리고 물러 않은 데가 지금의 모란시장 자리.

그는 시장자리가 될 돌마면 하대원리 버려진 땅을 개간해 제대 군인들의 커뮤니티를 세웠다. 자신도 고향을 등져서 그랬는지 돌아갈 고향이 없는 예비역 군인들을 모아 무슨 개척단이라는 것을 결성했다. 그리고 대원들의 생계를 위해 62년 시작한 게 바로 모란장이다.

현재 모란장에는 1천여명의 등록 상인이 있다. 1990년 정기적으로 출시하던 상인과 뜨내기 상인 등록을 받아 850명을 추첨·배정한 게 등록제의 시작이었다. 허가된 장터엔 등록상인만 자리한다. 그 주변으론 여전히 500~600여명의 비등록(무허가) 상인이 늘 판을 벌인다.

70~80년대 수도권(전국?) 최고의 유명세를 구가했던 모란장도 이젠 쇠락해 별 볼일 없는 시골장터(?)로 전락했다. 향수를 달래려는 노인, 주변 거주민만이 찾는 한적한 장터가 됐으니... 장사를 하든, 가업을 잇든 남부러울 게 없던 상인들. 이젠 용인으로, 이천으로, 안성으로 장돌림(장돌뱅이)을 해도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신세가 됐다.
 
‘장돌림’, 입에 풀칠하기 힘들어
 
백화점에 이어 대형 유통할인매장이 하나 둘 늘어갈 때도 전통·재래시장 상인들은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소비자도 상인도 줄어드는 추세이니, 돈 많은 이들은 그리 가겠거니 했었으니까. 그런다고 큰 변화를 체감하지도 못했으니까.

▲ 뜨거운 햇볕을 받고 자란 곡식은 이제 튼실한 열매로 맺혔다. 시장상인들의 손에서 손으로 그리고 소비자의 곡간을 거쳐 먹을거리로 가야하는 곡식들이 시장 한 귀퉁이에 그냥 쌓여있다.     © 최방식 기자

▲ 늦여름 점심 뒤의 오수. 천하에 가장 무겁다는 눈꺼풀이 무거웠는지 상인은 시장 한 가운데서 점잖게 누웠다. 물거을 사겠다고 소리지르기 전에는 일어날 성 싶지가 않다.     © 최방식 기자

 
하지만 대기업들이 소형할인점으로 동네 골목을 밀고 들어오면서는 좀 달라졌다. 골목상권과 재래시장에 직격탄이 됐으니까. 슈퍼도, 시장도, 그리고 전통 민속장도 졸지에 파리 날리는 신세가 됐다. 시장에 돈이 말랐으니, 상인들은 물 잃은 고기신세가 되고 말았다.

모란시장에 남은 또 하나의 희망(?)은 새 거처에 새 둥지를 틀기로 한 것. 성남시가 장터를 이전키로 하고 2만3천여 평방미터의 대안 부지를 마련하는 등 새 도시계획을 짜고 있단다. 하지만 상인은 별로 달가워하는 기색이 아니다.

등록상인들이야 번듯한 자리 하나씩 마련해 준다니 말없이 기다리기는 하지만 돈벌이를 보장해주는 건 아닐 테니 근심·걱정은 여전하다. 서울의 풍물시장이나 다른 재래시장의 전철을 밟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 여느 현대화시장처럼 겉모습만 번지르르 할 뿐 돈이 돌지 않으면 어쩌나? 벌써부터 불안감이 엄습한다고 했다.

비등록 상인들은 불만이 크다. 조금의 자릿세를 내긴 했지만 그래도 시장 한 귀퉁이에서 벌어먹고 살아왔는데, 현대화한 시장이 열리면 자신들의 운명이 어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시장 뒤편에 현수막을 걸어놓고 나름의 이주대책을 당국과 시장연합회에 촉구하는 까닭이다.
 
“이전하면 뭐해, 돈벌이 돼야지”
 
시장의 한 상인은 “요즘은 사는 게 별 재미가 없다”고 했다. “벌써 옛 이야기지만 내 돈벌이가 괜찮아서 그런지 영감은 돈벌이가 없어요. 내가 벌어 네 아이를 다 키웠죠. 이젠 다 컸으니 노인 둘이 그럭저럭 먹고살지만... 장날 하루 10만원도 못 버니, 원... 그렇다고 예순에 어디 가 뭘 하겠소?”

▲ 시장에 가면 가장 향을 많이 풍기는 건어물. 멸치, 새우...     © 최방식 기자

▲ 튀밥의 달인? 30여분이면 한번씩 시장을 울리는 '뻥'소리에 졸음에 겨운 상인들이 눈을 치켜 뜬다. 그리곤 퍼져가는 고소한 옥수수 튀긴 내음...     © 최방식 기자

 
기자가 앉았던 포장마차에서 두 시간여 노인 한명이 막걸리 한 통을 비우고 사라지고 또 한명의 노인이 찾은 게 전부였다. 사진 몇 컷, 그리고 약간의 취기에 만족하고 기자도 자리를 떴다. 주인장이 섭섭한 눈치다. 뒤통수에 내뱉는 한 마디가 처량하다. “술이라도 먹으면 기분이라도 좋은데...”

카메라를 추켜들고 장터 뒷골목으로 들어서니 여긴 또 딴 세상이다. 강원도 어딘가에서 왔다는 ‘어설픈 각설이’다. 장단도 노랫말도 그저 그랬지만, 취중이라 그런지 신명은 전해온다. 호객 노인이 많은데, 뭐 하나씩 돌린다나, 어쩐다나. 노인들 등쳐먹지나 말았으면...

장터 맨 끝에 오니 비등록 상인들의 세상이다. 시장 구역 밖에서 주로 음식장사를 하고 있다. 돼지 껍데기와 내장을 즉석에서 구워 파는데 참 재미있는 장사를 하고 있다. 술 한 병에 오천원을 받고 안주는 맘대로 먹는 거였다. 검증된 장삿속이겠지?

한쪽엔 튀밥장사도 손놀림이 바쁘다. 30여분 만에 한번 씩 들려오는 “뻥” 소리는 한가한 상인들의 졸음을 깨운다. 늦여름 오수,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눈꺼풀. 흥정도, 뻥튀기 소리도 낮잠은 방해 못한다. 하기야 손님이 찾아오기 전에 누가 그 깊은 잠을 깨운단 말인가?
 
“술취하면 기분이라도 좋으련만...”
 
딱히 할일 없는 기자도 이제 시장을 떠날 시간인 모양이다. 마침 취기도 조금 오른다. 어디 시원한데 있으면 늘어지게 낮잠이라도 즐기고 싶건만. 사진은 컴퓨터로 확인해봐야 알 테고... 에라, 버스에 앉아서라도 자자. 혹시 알아? 다섯 살 산골 꼬마 처음으로 장에 간 날 추억이라도 떠오를지? 아직도 잊히지 않는 단팥죽 꿀맛이라도 느껴볼지? 꿈에... <끝>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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