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정신 차리려면 멀었나?

진보깃발 이분법적 접근만, '10년 프리미엄' 갇힌 민주당꼴

서문원 기자 | 기사입력 2009/11/27 [00:53]

한겨레21, 정신 차리려면 멀었나?

진보깃발 이분법적 접근만, '10년 프리미엄' 갇힌 민주당꼴

서문원 기자 | 입력 : 2009/11/27 [00:53]
메일함을 열어 보니 '한겨레 21'에서 날아온 편지 한 장에는 '발행부수를 공개합니다'는 제목으로 박용현 편집장의 글이 적혀 있었다. 꼼꼼히 올린 자료 몇개와 그간의 회고를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서문에 걸린 '슈피겔' 관련 글을 읽다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독일의 진보적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독일 민주주의의 지원 함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단다. 군사용어가 차용됐지만, 곱씹어보면 참 예쁜 별명이다."
 
'한겨레21'이 뭘 보고 이런 글을 썼을까?
 

▲ 위 사진은 이른바 독일 언론탄압사건으로 기록된 슈피겔 사건(Spiegel-Affare)을 제공한 '팔렉스 62'라는 대소련 나토방어망구축을 폭로한 기사     ©슈피겔

슈피겔紙의 명성은 거대권력 감시와 기자들의 취재근성으로 정평이 나 있다. 영국 가디언紙의 경우 집권당과 재계의 압력이 거세지면 타협점을 도출할 때까지 기사를 안 내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반해 슈피겔은 다르다. 아데나워 보수정권을 교체할 만큼 집요하니까.


 

지난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과 워싱턴에서 항공기 테러가 발생했을 때부터 4년 가까이 부시정권의 암약을 다뤄왔다. 그 정보들이 쌓여 결국 미국 내 반발 여론을 끌어내는 자료로 활용될 정도다. 그런데, 한겨레21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슈피겔의 유명세 우연히 생긴게 아니다
 
여전히 "우리는 진보매체"를 외치며 겉포장에 열중이다. 2006년말부터 시작된 미국경제위기로 언론이 굶어간다고? 그렇게 따지면 미국의 메이저 미디어에 비해 소매상 수준인 슈피겔은 벌써 망했어야 했다. 또 "인터넷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핑계에 불과하다.
 
슈피겔의 성공에는 그만한 밑거름이 있었다. 어렵게 볼 것 없다. 이 매체의 힘은 진정성이다.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지 못하면 그 건 끝이다. 왜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즈, 가디언, 르몽드, 레베라시옹 등 글로벌 매체가 최근 몇 년 사이 기자들을 대거 해고하며 내리막길을 걷고 있을까?
 
보수매체인 '더 선'(영국)이나 빌트(독일)紙처럼 선정적인 나체 사진 몇 장 올려놓고, 돈이나 벌어보겠다고 하면 더 할 얘기도 없다. 오늘의 운세, 날씨, 연예스캔들, 스포츠로 지면을 채우고, 정재계 비사나 주식동향분석기사로 메꾸면 그만일 것이다.
 
한국도 요즘 그렇다. 그 정도만 해도 하루 뉴스거리 된다. 돈도 되고. 하지만 시사주간지는 아니다. 더 앞을 내다봐야하고, 예측능력도 정확해야 하는데 '한겨레21'이 그렇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다음 아고라'가 되레 사회·경제·정치 전반을 분석해 관심을 끌고 있다. 시사주간지에서 그나마 나은 게 '시사IN' 정도다.
 

▲ 2007년에 전세게 네티즌들을 열광케한 시대정신 포스터. "이 영상을 함께보자"는 의미로 일명 'Z day'행사를 2008년 3월 1일 전세계     ©Zeitgeist

2008년 주요매체는 미네르바와 아고라였다
 
작년 한 해를 달궜던 '미네르바 선풍'만 해도 그렇다. 한겨레와 경향이 앞장서서 보수 '신동아'와 반대편에서 뭔거 찔렀어야 하는데 그런 거 하나 없었다. 지금의 민주당처럼 이분법적 접근으로 대립각만 세우고는 "진보매체 한겨레가 할 일 다했다"고 외치는 게 고작이다. 대체 뭘 잘했다고 진보매체 타령뿐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일례로, 세계 네티즌들의 관심을 끈 다큐멘터리 동영상 '시대정신'이 나온게 2007년 가을이다. 미국은 물론 유럽의 주요매체들이 이 희한한 다큐멘터리를 기사화하고 제작자의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작은 온라인매체인 본지만 해도 2007년말 '시대정신' 기사를 보도했다.
 
하지만 이 작품이 국내에서 관심을 끌기 시작한 건 2008년 여름. 누리꾼 '미네르바'가 한참 주가를 올리던 때다. 그때서야 이구동성으로 '시대정신' 운운하던 기자들. 2007년 겨울엔 입도 뻥끗하지 않던 언론인들이 왜 한참을 지나서야 시대정신에 호들갑을 떨게됐을까?
 
간 시사잡지 판매로 2억5천만 유로(약 5천억)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는 슈피겔紙가 그렇게 부러우면 슈피겔이 지난 수 십년동안 민영 RTL과 독일공영방송사에 '추적60분' 같은 프로그램을 영상제작해 납품했던 것처럼 MBC제작진과 협의해 아웃소싱 프로그램이나 제작하면 안되나?
 
그 좋던 시간은 다 가버리고 'PD수첩'만 홀로서기 하다 이제 무너져 내리는 지금. 한겨레21 편집장의 '볼멘소리 같은 호소'는 우습기 짝이 없다. 참고로, 잡지매출 외 슈피겔그룹 매출은 연간 3억2천만 유로(약 7천억)다.
 

▲ 위 사진은 다음 아고라 캡쳐.     ©서문원 기자

진보매체면 진보답게 진정성으로 승부하라!!
 
아직 한국여론을 끌어가는 진보 매체는 없다. 네티즌들이 자기돈 들여가며 짬짬히 올린 글을 통해 고된 세상속 이야기를 만나는 정도가 고작이다. 한겨레가 '우리도 최선을 다했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주변부에서 볼 때는 여전히 지난 10년 '여당 프리미엄'에 갖힌 민주당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보수매체와 비슷한 정보를 색깔만 다르게 제공하는 진보매체의 존재이유는 그리 크지 않다. 고작 그 기반을 메꾸기 위해 이분법으로 무장 '적과 아군'이라는 테제 아래 무조건 '이명박 까대기'로 지면을 메꾸는 걸 누가 돈 주고 보겠는가? 사방천지가 다 그런 글들인데?

국회, 당사, 프레스센터에서 나눠주는 보도자료로 기사쓰는 기자가 어디 한둘인가. '토크쇼'를 보면 연예인들도 보도자료 베껴먹는 기자들을 비꼬지 않던가? 이면 이야기가 없는 보도, 그게 제대로 된 기사인가? '말'도 민노당 기관지 노릇하다 문 닫았는데, 한겨레21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있나?

 
슈피겔, 독일어임에도 세계인이 주목하는 매체
 
한겨레가 알고 썼는지 아니면 그냥 질렀는지 모르지만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독일어 매체인데도 유럽각국은 물론 뉴욕과 도쿄, 서울, 심지어 이집트 카이로에서도 볼 수 있는 시사잡지다. 통계치를 보면 주간 판매량이 100만에서 140만부 이상이다. 영어를 빼고 독일·프랑스어판으로 전세계에 잡지를 판매하는 사례는 드물다.
 
프랑스 르몽드와 월간 '디플로마티크'의 경우 프랑스어권 국가들(캐나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있어 판매에 큰 무리가 없다. 반면 독일어를 모국어로 혹은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고 더욱이 독일어판을 세계각국에서 판매하는 매체는 슈피겔 등 몇개 뿐이다.
 
2차대전 전의 상황까지 합해 카타리나 여왕시절 러시아로 이주한 슈바버 사람들과 과거 아프리카 식민지 나미비아, 2~3세기전 남미 파라과이와 아르헨티나 등에 자리잡고 있는 독일 청도교 마을 정도가 독일어권이다. 독일어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언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 위 사진은 슈피겔 최근호 표지다. 기사제목은 '수조억달러 폭탄'이다. 이는 최근 미국금융구제조치가 실패로 돌아간 상태에서 월가위기설과 맞물려 최악의 금융패닉사태를 예고하고 있다.     © 슈피겔

 

그럼에도 시사잡지 슈피겔을 비롯해 Stern(스타), Focus 등 3대 시사잡지가 세계 어디서나 버젓히 팔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예파티잡지 Gala, 수드도이치차이퉁, 디차이트, 파츠, 디벨트, 타츠 등도 전세계 호텔에서 구하기 쉬운 독일 일간지다.


 

물론 중국화교들 사이에서 팔리고 있는 중화권 교포신문 혹은 일본관광객들을 위해 소량으로 판매되는 산케이, 마이니치 그리고 아사히 정도도 세계 여러곳에서 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한국신문은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수 많은 독일어 신문이 세계 곳곳에서 쉽게 발견되는 이유가 뭘까?

곰곰히 생각해봐라. 국민들의 욕구불만을 제대로 해소해줬는지? '선데이서울'처럼 뒷북이나 쳐댄 건 아닌지? 과거비사나 다루고, 한국일보 'M'처럼 문화소재만을 찾아 헤매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한다. 과거 민주화운동만 회고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슈피겔은 오늘도 '수조억대의 폭탄'이라는 표지 제목하에 아시아는 물론 구미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은 대규모 금융위기를 신랄하게 까발리고 있다. 세계인들이 슈피겔을 주목하는 이유다.




인터넷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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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hy 2009/11/27 [18:53] 수정 | 삭제
  • 아직도 제자리 걸음인가 봅니다... 그래도 진보언론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으로 3년 가까이 '한겨레21' 시사주간지를 정기구독까지 했었는데, 3년 동안 통찰력있는, 최소한 다양하고 다른 시각의 분석기사를 찾기 힘들어, 결국 구독을 중단했었더랬는데...
    그런데, 지금 다른 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니...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시각의 세상보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론은 또한 한 사회의 사회문화를 반영하는 것인데, 독일의 '슈피겔'지가 나올 수 있는 것은 독일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역량때문이라 생각듭니다. 우리가 이해하기 힘들만큼 심하게'이성적'인 사회인지라...헐~
    한 매체에 어떠한 사유집단의 대표성이 집중되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인가, 그러한 규모화 작업이 오히려 다양한 소수의 의견들을 경시하게 만드는 경향도 있기에, 살짝 비판적인 의견을 가지면서, 어쨌든, 한국의 소위 대표적이라는 진보 언론을 꼬집는 기자님의 글을 즐겁게 읽었습니다.
    혹여, 한겨레신문 관계자들과 친분이 있으시다면, 전해주세요...앞으로 '사실보도'뿐만 아니라 '개운한 분석기사'가 나오는 날, 다시 독자가 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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