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보다 진실보도가 중요하지 않나?"

[언론비평] "슈피겔 발행인 고루돌프 아욱슈타인 말을 새겨듣자"

서문원 기자 | 기사입력 2009/11/30 [10:10]

"매출보다 진실보도가 중요하지 않나?"

[언론비평] "슈피겔 발행인 고루돌프 아욱슈타인 말을 새겨듣자"

서문원 기자 | 입력 : 2009/11/30 [10:10]
저녁늦게 친구들과 함께 맥주캔 들고 모여 오래전에 본 '맨 온 파이어'를 다시 봤다. 앤딩씬을 보며 그 흔한 눈물보다 "답답하다"고 느꼈다. 베란다에 놓인 낡은 소파 위에서 담배 물고 떠드는 친구들, 맥주캔을 벌컥거리며 영상을 다시 떠올려봤다.

▲ 위 사진은 토니 스콧감독의 '맨 온 파이어(2004)'중 두 주인공 피타와 크리시의 마지막 대화장면이다. 사무엘의 그릇된 행동으로 납치된 그녀의 딸 피타를 한때 전직CIA요원이면서 살인마, 알콜중독자로 죽기만을 바라던 크리시가 자기목숨과 맞교환하던 장면이다.     © 서문원 기자
 
      
'피타'(다코다패닝)는 아버지 사무엘의 사업위기로 미국에서 멕시코시티로 전학와 고급사립학교를 다니는 미국 국적 소녀다. 피타의 아버지 사무엘(마크 안소니)은 기업도산을 막기 위해 막대한 보험을 들고 자기 딸 피타 납치를 방조한다. 돈 때문에 그 짓을 한 것이다. 납치 전모가 드러나자 피타의 아버지는 "이게 다 가족을 위해서"라며 항의하는 부인에게 맞선다.

그것도 모르고 '보험약관'에 따라 사무엘의 딸 피타의 경호원으로 고용된 존 크리시(댄절 워싱턴). 그는 전직CIA요원으로 요인 암살, 용의자 고문,무차별 살인도 서슴치 않던 냉혈한이었다. 조국 미국을 위해 그런 일을 벌인 것이다. 국가는 그를 버리고... 그에게 피타는 마지막 진심이자 사랑이었을 것 같다. 종반부. 크리시는 자기 목숨을 납치범에게 주고 피타와 맞교환한다. 어차피 죽을 인생이라고 판단한 탓일까? 

진보매체 크리시가 되면 안되겠니?

본글을 읽기전 아래 사진부터 보자.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다.


▲ 위 사진은 2007년 한때 명품저널로 알려진 시사저널이 사실상 중앙일보에 불법자본편입되고 삼성그룹 관련기사가 삭제되는 비상식적인 사건이 발생하자. 편집독립과 언론자유를 외치던 시사저널 기자들이 끝내 파업을 철회한 채 집단사표를 제출한후 모습이다. 이들은 현재 '시사IN'에서 옛 영광을 재현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 위 사진은 지난 2008년초 MB측근 인사인 구본홍씨가 YTN사장으로 임명되고 이에 항의하던 YTN노조원들이 해고되자 항의집회를 열던 모습이다.      ©연합뉴스


    

▲ 위 사진은 2009년 3월 MBC간판프로 PD수첩 제작진 이춘근 PD가 사내진입한 전경들의 바리케이트아래 수갑을 채워 긴급체포한채 끌려가는 장면이다.     © TV모니터캡쳐




▲ 위 사진은 MBC 'PD수첩' 김보슬 PD가 올 초 검찰측 고소로 인해 이춘근 PD가 구속되자 긴급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결국 김보슬 PD도 결혼을 며칠 앞두고 구속됐다. 사유는 '광우병보도'때문이다. 이명박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것이다. 현재 'PD수첩'은 제작진이 교체된 채 급조된 보수 단체들로부터 '폐지압력'을 받고 있다. 한편 MBC사측은 정부의 언론탄압 및 숱한 압력을 견디지 못해 메인뉴스 뉴스데스크 아나운서 교체 및 '100분 토론' 손석희 교수를 교체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감행 중이다.     © 오마이뉴스

 
'한겨레21'은 2003년 이래 21억원대(6만9408부)의 연매출을 기록중이란다. 올해는 상반기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 서거와 관련이 있을 테고, 2008년에는 MB집권 초 측근 인사정책 및 총선관련 기사, 그리고 2007년부터 논란이 된 '대운하' 기사가 메인으로 올랐던 것 같다. 이어 '촛불정국' 집중보도가 판매부수 상승에 기여했다.
 
따지고 보니 한겨레, 경향, 서울신문 등 비슷한 성향의 일간지 보도이슈와 별 차이가 없는 소재다. 2008촛불정국, 전직대통령 조문열풍은 온라인 매체들도 앞장선 것으로 동영상 생중계로 페이지뷰 상승의 덕을 봤던 것이다. 진보매체 '칼라TV'가 2008년 성공적으로 안착한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시사인은 2007년 9월 25일 사측에 의해 일방해고된 시사저널 기자들과 시민들이 투자해 창간호를 펴낸 이래 2008년부터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창간 2년만에 15년차 고참 '한겨레21'을 따라 잡으며 시사매채 분야에서 정상에 올라선 것이다.

이유가 뭘까? 2007년 시사저널이 중앙일보 전직 경영자에게 넘어가면서 삼성보도가 삭제됐다. 그것이 사유가 돼 파업이 일어났고, 일방해고를 당한 기자들이 몰려나와 시사인에 재집결했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주를 모아 '시사인'을 창간하고 시사잡지계에 첫 발을 들인 것이다.

시사인은 정권교체 당시부터 민노·진보신당 분열을 예고했고(17호.1월), 세계경제위기(26호, 2008년 03월 10일) 관련기사를 통해 '엎어진 한국경제 미국발 'R의 공포'라는 제목으로 국내파장을 예견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촛불정국 현장취재와 여론조사를 토대로 "민주당 대안 아니다"라는 제호로 '여당 프리미엄'에 갖힌 민주당의 현주소를 보도한 바 있다. 이런 양질의 기사들이 자산이 돼 현재까지도 판매부수가 상승 중이다. 

시민공모주를 통해 매체를 설립하고 21년 동안 '개혁진보' 언론을 표방하던 한겨레21은 대조적으로 참여정부 때부터 하락세를 걷기 시작했다. 미래예측 보다 기득권정치를 조롱하는 수준을 넘지 못한 탓이다. 이분야에선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이 매체 특성상 훨씬 더 디테일하고 현장감있는 보도를 해왔다고 볼 수 있다.

                          


▲ 위 사진은 한때 잘나가던 이코노미21 표지, 다양한 기사에도 불구 경영악화를 이유로 2008년 9월 폐간됐다.     © 이코노미21


조중동과 싸우며 크고 싶어? 시선부터 바꾸지?

한겨레 경제전문지 'Economy21'은 지금도 읽어보면 창간호(2000년)부터 흥미로왔다. 한국경제 진단을 가감없이 하는 것 하며, 국내 노사문제를 비롯해 최근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지원 아래 상하이자동차 먹튀로 경영악화를 겪는 '쌍용자동차'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가 매스컴에 인용될 만큼 탄탄한 기사들이 즐비했다.

그런 한겨레 자매지가 경영문제로 분사되더니 2008년 9월 문을 닫아 버린 것이다. 사족을 달자면 이 매체를 읽게된 것도 사석에서 당시 한겨레에 칼럼을 기고하던 분이 정기구독하라고 권한 탓이다. 그럼에도 후회는 커녕 "정말 잘 구입했다"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반면 '한국정치'라는 프레임으로 예전 기억을 되살려 정부정책과 차별화하는 이분법 기사로 승부한 한겨레21은 팩트가 적고 주장뿐이며 사진만 큼지막하다. 적어도 시사주간지라면 일간지와 달라야 하는데 그 차별성이 눈에 띄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몇 년전 기사작성을 위해 신문가판대, 혹은 신문보급소를 뒤지면서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됐다. "조중동의 점유율이 상위권인 이유", "끼워팔기와 무가지의 차이"가 궁금했던 것이다. 답은 의외로 담담했다. "조중동, 스포츠일간지 빼고 재미가 없어요." "어?", '의외다' 싶은 생각과 함께 "아니 왜?"라는 의문이 늘어났다. 

흥미로운 점은 진보진영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조차 '조중동'을 모니터링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돈주고 볼 수밖에 없다. 반면 한겨레, 경향, 서울, 한국일보는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뷰스앤뉴스같은 인터넷매체가 등장한 이후 점유율이 서서히 내려가는 현상을 맞이했다. 
                                                       
인터넷에 속도전에서 밀렸다고? 차별화는 어떤데...

조중동을 제외한 여타 신문매체가 시장에서 밀리는 걸 두고 일각에서는 인터넷매체와 비교했을 때 '속도전'에서 밀린다는 말도 있지만 '시사IN'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속도가 아니라 시각의 차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온라인매체와의 대결로 속도전에서 밀렸다면 데일리안, 뉴데일리, 독립신문 같은 보수매체가 조중동을 앞질렀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조중동은 여전히 활자매체로 살아있다. 현 MB정부와 차별화됐던 참여정부 때도 이들 매체는 한겨레, 경향에 밀리지 않았다. 

2007년 정권이 교체되자 매체종사자들 사이에서는 "MB정권이기 때문에 판매부수가 늘어날 것"이라는 핑크빛 전망을 예상하기도 했다. 즉 반대급부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됐나? 말지는 경영악화로 자발적으로 문을 닫았고, 한겨레21은 판매부수가 줄었다.

혹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의 문제"라는 생각 안해봤나? '슈피겔'紙를 예를 들면 온라인은 전세계 특파원 및 제휴매체로부터 수집되는 정보를 토대로 사실보도로 대립각을 세우는 반면, 오프잡지는 그 사건실체와 향후전망 등을 디테일하게 설명해 놓고 판매한다. 이를테면 '정보의 차별화'다.        
                                          

▲ 위 사진은 시사주간지 '시사인'의 표지 . 언론재벌 루퍼트머독의 얼굴이 보인다.   © 시사IN



국내활자매체를 모니터링해 기사를 내보내는 '미디어오늘'을 보면, 매체간 '보개구도'를 통해 비교기사를 보도하는 게 특징이다. 그런경우  같은 사건을 놓고 달리 보는 시각차가 드러나는데 그것은 일간지로써 해야할 의무에 해당된다. 반면 향후 정책동향과 선거전, 경기예측, 디테일한 사회일면을 다루는 매체는 시사주간지가 맡을 수 밖에 없다.

앞서 서술한 조중동은 평균 반세기가 넘는 세월 한국 매스컴을 장악해온 매체다. 더구나 군사 독재시절 정계는 물론 미일대사관이나 정보부와 윈윈하며 나라 안팍의 사정을 꿰뚫어온 거대미디어군단이다. 반면 나머지 매체는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로써 정보수집을 할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 있었다. 과거 조달청에서 누룩배분을 할 때 규모가 큰 소주회사부터 나눠주면 작은 회사에게 돌아갈 누룩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이치다.

'맨온파이어' 피타를 위해 크리시가 했던 것처럼

문제는 현재다. 과거처럼 회사규모대로 정보가 할당되지 않는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바다' 속에서 정보를 충분히 습득할 수 있다. 따라서 어느 매체가 됐건 정보수집이란 광범위 할 수밖에 없으며, 언론중재위까지 가는 한이 있어도 그간의 사건들을 터뜨려야만 한다.

다시 말해 앞서 서술한 영화 '맨온 파이어'에서 검·경찰과 연계된 인질유괴범에게 납치된 어린소녀 피타가 '국민'이라면, 국가권력에 의해 납치된 국민을 위해 언론이 '크리시'처럼 나서라는 것이다.

악에 대항하는 주체가 악하면 어떻고, 못되면 어떠냐? 중요한 건 우리가 맞서고 있는 보이지 않는 기득권이 자본과 권력을 동원, 그리고 조중동이라는 거대매체를 십분 활용해 국민숨통을 죄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개혁, 진보매체는 자연히 0과 1로 나눠진 디지탈세계에서 단순 삭제된다.  

위에 나열된 사진들처럼 시사저널 해직사태, YTN노조, MBC PD수첩 제작진구속사태를 보며 자칭타칭 진보매체가 느끼는 게 무엇인가? 너무 편하게 글을 쓰고 있지 않았나? 아픔이 없으니 고민도 없고, 결국 1980년대에나 통할 정치노선을 통해 쌍방구도로 가자니 소재가 빈곤한 형국 아닌가? 
 
▲ 지난 2002년 슈피겔 발행인 루돌프 아욱슈타인 사망을 보도한 슈피겔紙     © 슈피겔


보수 정치권과 보수 매체는 지난 10년 동안 이를 갈며 성장했는데 현재 민주당과 중도진보 매체들은 여당프리미엄에 갇혀있으니... 세월은 흐르고 민중은 서서히 죽어가는데 차별화도 성공 못한채 매출도표를 깔아놓고 편집장까지 나서서 "여기까지 오느라고 개고생했다"는 말 한마디로 '15주년 행사'를 마감해서야 쓰나? 슈피겔을 칭찬하면서...
 
영화 한편을 봐도 지불한 돈이 아깝지 않을 때 뿌듯하지 않은가? 하물며 '세상을 보는 눈'이라고 자부하는 시사주간지가 탐탁치 않은 뉴스만을 발행한다면 누가 그걸 보며, 그런 미디어를 누가 한국 최초 '미래의 슈피겔'이라고 하겠는가?

슈피겔 발행인 故루돌프 아욱슈타인의 인터뷰를 기억하자

2002년 작고한 슈피겔지 발행인 루돌프 아욱슈타인(Rudolf Augstein)이 지난 1996년 슈피겔창간 50주년을 기념해 민영방송 RTL과 한 인터뷰를 더듬어보자. 그는 이렇게 술회했다. "기자는 국가와 군중을 읽는 사람이다. 정치인은 국가와 군중을 이용하는 사람이다. 사람 하나하나로부터 북받쳐 오르는 감정의 원인과정을 전달 못한 채 정치노선과 판매부수만 생각했다면 무엇하러 슈피겔을 창간했겠나?"

독일어건 한국어건 그건 중요치 않다. 문제는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신자유주의체제와 그 뒤를 뒷받침하는 금융재벌의 속성을 하나 하나 파헤치지 않는다면 또 그런 방식으로 국내 여론을 간파하지 못하면 그 매체는 죽은 거나 다름 없다. 

잘 달려왔다고 말하는 한겨레21 편집장에게 토스하며~


인터넷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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