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모아, 너 이쁜색시와 잘살아야 한다”

[길거리통신] 민족민주동맹한국지부 부총무 ‘도둑놈 결혼’ 하던 날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9/12/07 [03:56]

“조모아, 너 이쁜색시와 잘살아야 한다”

[길거리통신] 민족민주동맹한국지부 부총무 ‘도둑놈 결혼’ 하던 날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9/12/07 [03:56]
특별한 ‘후배’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버마인이지만 한국에 망명을 했으니 여느 후배와는 좀 다르다고 봐야죠? ‘굴러온’ 건 틀림없지만 한국에 산지 15년이나 됐으니 ‘박힌’ 후배 못지않습니다. 같이 이 땅에 살고 버마를 사랑하는 게 남다르니까요. 게다가, 이 녀석 나만 보면 제 나라 소수인종의 성을 따 ‘살라이 방식’이라 부르니 영락없는 후배 아니겠습니까?

이름은 조모아. 한국의 조씨 성 같아 보이는데, 실은 버마어로 ‘조’와 ‘저’의 중간발음쯤 되는 성입니다. 근데, 이 녀석을 후배로 여기면서부터는 그냥 ‘부천 조씨’라고 부르죠. 아웅산 수지 여사를 따르는 ‘민족민주동맹’(NLD) 한국지부 회원들의 공동체가 부천에 있어 그런 것이지요. 그는 이 단체의 부총무를 맡고 있답니다.

73년생이니, 만 나이로 서른여섯인가요? 스물한 살에 이역만리 한국에 왔다가 여태 총각신세를 면치 못했는데 놀랄 일이 생긴 겁니다. 만날 때면 그저 위안이랍시고 “어쩌나, 연애도 못하고” 농을 던지곤 했는데, 글쎄 이 녀석이 어느 날 반격을 해온 것입니다.
 
▲ 결혼식은 예쁜 들러리들이 빨강 꽃잎을 뿌리며 시작됐습니다.     © 최방식 기자

▲ 빨강 꽃잎이 하나 둘 신부의 발길에 뿌려지고 고운 색시는 꽃잎을 천천히 즈려밟으며 신랑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갑니다.     © 최방식 기자

 
“어쩌나, 연애도 못하고”
 
수년간 거듭된 농에도 “그러게요”라며 제법 진지한 안타까움을 표했으니 그냥 상투적 인사 정도이겠거니 여겼죠. 그런데 언젠가 대답이 달라진 겁니다. 작년이었을 겁니다. “나 곧 결혼할 거예요.” 것도 농으로 들었죠. 진짜 결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고요.

올 봄인가 확실히 선언을 하더군요. “형, 올 겨울에 나 결혼해. 색시가 버마에서 곧 올 거야.” 또 흘려들었다고 해야 할 겁니다. 망명한 처지에다가 제 조국에 15년이나 오간 적도 없는데 무슨 수로 색시를 공수해 온단 말인가고 의구심을 가질 만 했죠.

그런데 진짜 예쁜 색시가 한국에 나타났습니다. 한 달 전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모임’이 버마시인 ‘킨 아웅 에이’를 초청해 서울에서 ‘한국·버마 문화교류의 밤’ 행사를 열었는데 데리고 왔더군요. 그제야 거짓이 아님을 깨달았죠. 그리고 한 달여가 흘렀을까요. 6일 오후 4시 부천역사 9층에 있는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올린 겁니다.

이 녀석이 뭔 재주로 그리 예쁜 색시를 얻었나 모두가 궁금해 했는데 의문이 풀렸습니다. 양곤에 있는 부모가 이역만리 망명객에 노총각이 다 돼버린 아들이 안타까워 색싯감을 구했답니다. 그리곤 기별을 넣었을 테고, 당사자의 확인과 승낙을 거쳐 백년가약이 이뤄진 것이지요.

▲ 백년가약이 선포되는 순간 신랑신부는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엷은 미소는 신천지를 향한 호기심의 표현일테지요?     © 최방식 기자

▲ 예쁘게, 착하게, 그리고 정겹게 가족공동체를 시작합니다.     © 최방식 기자

 
색시 이름은 이이문이라는 군요. 스물여섯이니 아직은 ‘방년’이라 할 만하지요. 양곤대 생태학과를 졸업한 재원인데다 미모까지 갖췄으니 한국에 와 있는 버마 총각들 하나같이 부러워하고 있을 겁니다. 조모아 이 녀석은 “도둑놈”이란 욕을 먹었고요.
 
“이 녀석, 순 도둑놈 아냐”
 
식은 버마공동체 회원들과 그를 아는 한국의 지인 1백여명의 축하를 받으며 거행됐습니다. 기자가 끼어있는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모임’ 소속 회원들도 대거 참여해 ‘도둑놈’을 축하해줬죠. 버마식과 한국식이 섞여 한 편으로 재미있고, 또 한 편으론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석왕사 주지 영담 스님이 주례를 섰는데, 신부가 한글을 못 알아듣는 걸 아시고는 “신부는 그냥 ‘예’하고 답하면 됩니다”며 혼인서약을 하더군요. 이 또한 ‘도둑질’인데, 신랑이 나중에 통역을 잘 해줬을까요? 스님은 은근히 걱정하며 “내말 정확하게 통역해야 합니다”고 당부까지 했고요.

그리곤 백년가약의 징표인 반지를 교환하니, 우리식으론 다 된 거지요. 하지만 한참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버마식이 남아있었으니까요. NLD코리아 아웅 민 쉐 의장의 연설에 이어 양나 잉툰의 거창한 결혼 선서식이 이어졌죠. 그제야 둘은 공식 부부가 된 것입니다.

▲ 한글을 모르는 어여쁜 신부. 주례 스님의 말마따나 '그냥 예'로 결혼 의지를 밝힙니다. 스님은 신랑에게 특별한 부탁을 하나 했지요. "나중에 내 말 정확하게 통역해주겠지."     © 최방식 기자

▲ 반지를 낍니다. 굳은 약속이지요. 쇠처럼... 끝까지...     © 최방식 기자

 
좀 더 버마 전통을 보여줬으면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게 전통이고 어떤 게 아닌지는 구별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중에 한 번 물어봐야지요. ‘살라이 방식’이니 알아둬야겠고요. 딱 한 번밖에 경험이 없어 결혼 기억도 가물가물했습니다.

이날 결혼식 사회를 조샤린이 봤는데, 이 녀석은 또 어떡합니까? 지금까진 석왕사에서 조모아와 함께 살았는데, 단짝이 결혼하고 눈물을 머금고 짐을 싸들고 나왔다고 하는데... 동갑에 늘 함께 움직이며 형제처럼 지내왔는데... ㅠ.ㅠ
 
“조샤린은 어떡하고 너만...”
 
또 한 녀석이 4개월 뒤 자기도 버마 색시를 데려와 결혼하겠다고 반가운 소릴 합니다. 듬직한 녀석인데, 모아 결혼사진을 찍다가 뭔가에 걸려 식장 한 가운데서 벌러덩 넘어진 녀석입니다. 주말 낮술을 한 잔 했더군요. 질투 나 그런 줄 알았더니 아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조모아 소개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그를 알고 지냈지만 막상 주워섬기려니 구체적 정보가 딸리네요. 해서 이주노동자방송이 몇 년 전 그를 인터뷰한 내용을 좀 참조했습니다.

▲ 모아 결혼식에 정치권도 움직였네요. 민주당 원혜영, 송영길 의원이 축하차 왔습니다.     © 최방식 기자

▲ 버마 공동체에 '신세대 오빠' 가수가 출연했습니다. 이날 '인기 짱'의 열정적 무대가 아름답습니다.     © 최방식 기자

 
15년 전인 1994년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했습니다. 첫 일자리는 대전 어느 기업이었는데 월급 18만원을 3개월 동안 한 푼도 손에 쥐지 못했다 네요. 한국에 오느라 각종 수속을 하며 든 비용을 갚느라고. 2년여 여기 저기 옮겨 다니며 ‘산업연수생’을 했고, 월 5~10만원은 고향에 꼬박꼬박 보냈다네요.

‘산업연수생’을 그는 ‘월급 적게 주고 일 많이 시키기 위해 데려오는 노동자’로 확실하게 알고 나서는 돌아가려고 했다 네요. 하지만 “그냥 있으라”는 답뿐이고... 해서 고통을 참으며 노동을 해왔고, 1999년 NLD한국지부 설립 때 회원가입을 했답니다.

‘불법체류자’에 ‘정치적 박해’ 우려로 언제 쫓겨날지, 또 조국으로 강제 송환되면 어찌될지 모르는 불안 때문에 20명의 회원이 한국정부에 난민지위인정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당시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한국사무소에 난민지위를 부여해달라고 했으나 한국이 ‘난민협약’ 가입국이니 먼저 요청하고 안 되면 찾아오라고 해 그리한 것이었죠.
 
“마음속 공포를 잊어야 해요”
 
난민지위는 10년만에 받았습니다. 그 사이 일자리를 12번이나 옮겨 다녔죠. 그러다 한국지부 상근자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월급은 회원들이 1인당 월 15만원씩 모아 주는 70만원. 여기서 그도 역시 15만원 회비를 내고 월 55만원으로 지금까지 생활해오고 있습니다.

▲ "조모아 결혼 축하하는 분 다 나오세요. 증인이 돼야쥐~"     © 최방식 기자

▲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모임 회원들도 이들의 결혼식 증인이 됐습니다. "김치~ 안 웃는 넘 누꼬..."     © 인터넷저널

 
이 착한 녀석이 마음속은 당차네요. 이주노동자방송국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이런 말을 했네요. “마음속 공포를 잊어야 합니다. 그래야 군부독재를 무서워하지 않고 조국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산업현장에 있는 분들은 사장, 상담소장에 대한 공포를 물리쳐야 차별시정을 요구할 테고요.”

이 ‘도둑놈 신랑’, ‘특별한 후배’에게 나도 부탁을 좀 해야겠습니다. “만나면 늘 반갑고 즐거운 모아야! 너의 낙관적이고 로맨틱한 게 좋단다. 그런 성격이 네 망명생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도 큰 도움을 줄 것이고. 잊지 마라. 너 잘 살아야 한다. 예쁜 색시와.”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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