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그리라와 행복, 그리고 새해 소망

[길거리통신] 겉모습뿐 아니라 마음을 닦아 큰 행복 지으시길...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10/01/06 [09:45]

샹그리라와 행복, 그리고 새해 소망

[길거리통신] 겉모습뿐 아니라 마음을 닦아 큰 행복 지으시길...

최방식 기자 | 입력 : 2010/01/06 [09:45]
지구촌의 마지막 ‘샹그리라’라는 부탄에 가면 낯익은 풍습이 하나 있습니다. 절하는 예법인데요. 이웃 티베트나 네팔의 ‘오체투지’와는 눈에 띄게 다르고 한국과 유사하다는 군요. 무릎을 꿇기 전 두 손을 머리, 입, 가슴에 살짝 댄 뒤 절하는 것만 좀 다르답니다. 몸과 말, 그리고 마음을 합해 예를 올린다는 의미에서 그런다지요.

우리 세시풍습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절입니다. 명절 때 어른을 찾아뵙거나 제례 때면 큰절을 올리지요. 제 몸의 가장 중요한 머리를 공경할 대상의 천하게 여기는 발에 가져다 대는 것인데요.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마음과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죠. 부탄의 예법과 형태와 의미에서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부탄은 경제와 행복이 우리와 너무도 엇갈려 흥미를 끄는 나라입니다. 지구촌 사람들은 이곳을 일컬어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라고 한답니다. ‘돈은 좀 벌었지만 불행한’ 우리와는 너무 대조적이죠. 탐욕이 사회와 자연을 파괴하고 배신과 경쟁이 난무하는 사회와는 크게 다르다는 것인데요?
 
가난하지만 행복한 세상을 향해
 
영국의 한 대학에서 나라별 행복지수를 매겼는데 부탄이 8위를 했다는 군요. 덴마크가 1위, 스위스가 2위, 한국은 102위를 했고요.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고작 1천2백 달러이면 세계 최빈국 수준인데 놀랍지요? 경제지표로 세계 10위권인 우리는 꼴찌 수준의 행복지수라는 것도 그렇고요.

▲ 하얀 눈이 세상을 덮었습니다. 휴식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자원의 착취나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리크리에이션(재창조)을 하라는 자연의 신호죠.     © 최방식 기자


이 나라는 국가 가치를 따지는 지표로 경제가 아닌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anl Happiness)를 사용한답니다. 지구인들은 이런 부탄이 부러워 ‘마지막 남은 샹그리라’라고 부르고요.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은 메릴랜드에 있는 별장 캠프 데이비드를 ‘샹그리라’로 이름 붙였죠.

샹그리라는 가상의 이름입니다.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1933년에 출시한 ‘잃어버린 지평선’이라는 소설에서 부른 이상향이죠. 전쟁과 폭정이 없는 도연명의 무릉도원처럼. 쿤룬산 서부 끝에 자리한 히말라야의 유토피아죠. 탐욕과 전쟁, 그리고 파괴로 얼룩진 세상과 등진 지상 낙원...

알고 보니 샹그리라는 우리 곁에 있었던 셈입니다. 세계 최빈국이면서 가장 행복한 나라. 아무리 돈을 벌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남의 돈을 빼앗아 돈의 천국을 만들려는 탐욕이 지배하는, 천박한 정치권력이 얍삽한 장사치들의 뒤를 봐주는 세상과 담을 쌓은 나라로요.
 
‘잃어버린 지평선’ 너머 '무릉도원'
 
부탄은 분명 지구촌에 마지막 남은 샹그리라입니다. 연말연초면 전 세계가 불을 훤하게 밝혀놓고 폭죽을 터뜨리며 미쳐 날뛰면서 종말을 재촉하는데, 고요한 암흑 세상에서 행복하게 잠을 청하는 그들이야말로 지구의 마지막 파수꾼이 될 수 있기에 그렇다는 겁니다.

대개 나라의 새해 계획이라는 건 성장률을 높이고 파이를 키워 나눠먹자는 것이지요. 돈벌이를 잘 하려면 자원을 개발하든지, 목축업·농어업을 잘 하든지, 아니면 남이 가진 것을 빼앗아야겠죠. 생태계를 파괴하고 자원을 고갈시키며 탄소배출을 늘리는 것이지요.

▲ 더러운 세상사 잠시 덮어두라는 겁니다. 곱씹고 반성하며 후회한 뒤 하얀 눈이 사라져 갈 때 쯤 잘못을 바로잡으라는 것입니다. 더러운 때가 너무 많이 끼었거든 녹아내리는 물로 씻어 흘려버리라는 것이지요.     © 최방식 기자


지구촌은 지금 환경시계 ‘12시’를 향해 치닫지만 일부 천박한 장사꾼들은 그게 무얼 말하는지 모른다는 게 정말 무서운 사실입니다. 그저 파고 허물고 지어가며 돈만 많이 벌면 최고인줄  알고 있으니까요. 환경위기라도 언급할라치면, ‘저탄소, 녹색 성장’을 들먹이면서요.

한국의 세시풍속에 홀수는 양(陽)을 상징합니다. 설날(1일), 정월대보름(15일), 삼짇날(3일), 단오(5일), 칠석(7일), 백중(15일), 추석(15일), 중양절(9일)이 그렇죠. 힘찬 기상을 표현해야 할 정초인 건 맞지만 음양이론의 핵심이 조화와 균형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환경시계 ‘11시’ 모르는 천박한...
 
도전이라는 게 지구와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자원을 고갈하며 돈벌이를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환경시계는 12시를 향해 치달을 겁니다. 그리되면 지구촌 마지막의 샹그리라는 사라지고 말겠죠? 돌이킬 수 없으니, 미래는 없는 것이고요.

하얀 눈이 세상을 덮었습니다. 가을걷이를 끝내고 월동준비를 마친 모두에게 휴식을 취하라는 것이죠. 자원의 착취나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리크리에이션(재창조)을 하라는 자연의 신호인 셈입니다. 기력과 기운을 빼앗긴 사물과 생명들에게도 기운 차릴 시간을 주자는 것이지요.

더러운 세상사도 잠시 덮어두자는 겁니다. 곱씹고 반성하며 후회한 뒤 하얀 눈이 사라져 갈 때 쯤 잘못을 바로잡으라는 것입니다. 행여 더러운 때가 너무 많이 끼었거든 녹아내리는 물로 씻어 흘려버리라는 것이고요. 다시 때가 낄 테지만 또 씻어내고 또 씻어내도록...

▲ 하얀 눈이 세상을 덮었습니다. 쉬라는 것이지요. 기력과 기운을 빼앗긴 사물과 생명들에게도 기운 차릴 시간을 주자는 것입니다.     © 최방식 기자


중국의 고대 상(商)나라 성군인 탕왕(湯王)은 자신을 반성하고 새롭게 하겠다며 청동 세숫대야 한 귀퉁이에 ‘구일신(苟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이라 새겨놓았답니다. 진실로 새로워지려면 나날이, 그리고 또 날로 새로워져야 한다고 얼굴을 씻을 때마다 각성하려고요.
 
“비누라도 씹어 마음속 때 씻어”
 
구한말 월남 선생 이야기가 더 그럴듯하겠습니다. 대감 한 분이 선교사한테 비누 한 박스를 받고 기쁜 나머지 지인들을 불러놓고 얼굴을 씻는 것이라고 자랑하며 하나씩 나눠줬다죠? 배알이 꼬였던 월남(이상재) 선생은 질근질근 씹어 먹기 시작했고요. 먹는 게 아니고 때를 씻는 물건이라는 설명에 했다는 한마디는 잘 아실 겁니다.

“난 얼굴이 아니라 마음을 좀 씻어야겠기에 그러는 겁니다.” 겉을 치장하는 것 중요하죠. 하지만 속이 더러우면 무엇에 쓰겠습니까? 돈 많은 것 좋죠. 하지만 남의 것을 빼앗거나 모두를 죽음으로 이끄는 사업을 한다면 어찌 잘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제발, 새해에는 용모만 단장하지 말고 마음을 깨끗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뭇 생명·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표리부동하지 않도록. 몸만 척하는 게 아니라 마음까지 공경하는 절을 하는 부탄사람처럼. 겉모습만 꾸미는 게 아니라 마음을 닦아내는 월남 선생처럼.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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