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개 켠 ‘권력안보’와 '민들레의 향연'

[길거리통신] ‘변덕 죽 끓듯’ 조바심 가득한 세상속 '주먹궁리'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10/05/08 [09:30]

기지개 켠 ‘권력안보’와 '민들레의 향연'

[길거리통신] ‘변덕 죽 끓듯’ 조바심 가득한 세상속 '주먹궁리'

최방식 기자 | 입력 : 2010/05/08 [09:30]
모처럼 쉬는 날 식탁에 앉아 ‘아점’을 하다 달력에 눈길이 꽂혔다. 가족 대소사를 적어두지만 잘 들여다보지 않는 천덕꾸러기 속 유화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민들레 홀씨가 날아가는 그림인데, 제목이 ‘민들레 향연-환희’다. ‘이별’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주먹 궁리’에 빠졌다가 '그 놈 전화 벨소리'에 화들짝 깨어났다.

그림에 ‘까막눈’이니 작가 이름을 알아볼 리 만무. 인터넷을 뒤져보니 화단의 중견 쯤 되는 모양이다. 그의 민들레 홀씨 그림이 여럿 있는데, ‘민들레 향연’에 부제만 조금씩 다른 ‘속삭임’, ‘행복을 찾아서’ 등이다. 막 비행을 시작하는 민들레 홀씨의 세상을 참 멋들어지게도 그렸다.
 
춘래불사춘이라더니 철이 덜든 날씨?
 
민들레 씨앗이 비행을 시작하는 그 순간은 환희다. 종족번식의 대의를 마침내 실현하는 때이니 그러겠지. 촌놈들은 누구나 한번쯤 ‘자식농사’ 어쩌고저쩌고 하는 말을 들어봤을 거다. 성대한 잔치일건 분명할 터. 하지만, 꼭 즐겁기만 하겠는가? 이별인데, 더는 볼 수 없게 됐는데. 안타까움이나 허전함도 크지 않겠는가?

▲ 민들레 씨앗이 비행을 시작하는 그 순간은 환희다. 종족번식의 대의를 마침내 실현하는 때이니 그러겠지. 하지만, 꼭 즐겁기만 하겠는가? 이별인데, 더는 볼 수 없게 됐는데. 안타까움이나 허전함도 크지 않겠는가?     © 최방식 기자

 
환희와 함께 다가오는 서글픔. 기쁘면서 애틋한 감정. 그러니까, 풍성한 결실 뒤에 오는 헛헛함과 같은 그 무엇이랄까. 동전의 양면이라 해야 맞을 성 싶다. 지난 몇 주 ‘춘래불사춘’의 얄궂은 날씨를 원망하던 내 간사한 마음과 같다고나 할까?

나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올해엔 왜 그토록 봄을 애타게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그런 기억이 없는데. 봄꽃들이 어우렁더우렁 흐드러지게 핀 화사한 세상이 왜 그다지도 그리웠는지. 마치 지옥, 아님 긴 어둠의 터널이라도 서둘러 벗어나려는 사람처럼 말이다.

어느 신문을 보니까 ‘철이 안든 날씨’라는 표현까지 동원했더군. 봄날 추위가 유별나고 비가 잦은데다 일조량이 좀 모자라나 싶었는데 그게 100년, 40년 만의 기록이라니 놀랍다. 봄 작물이 냉해를 입었다고 하던데, 꽃인들 안 그랬으랴. ‘봄 맞아?’라고 철을 의심할만도 하지.

조급함 뒤에 오는 회한. 봄이 왜 더디 오나 원망하다, 요 며칠 날씨가 화창하고 좀 덮다 싶으니 선선한 그 날이 다시 그립다. 변덕이 죽 끓듯 한다더니 꼭 그렇다. 땀 흘릴 때 생각해 선선함을 즐기면 되련만, 겨울 더디 간다고 원망하고 이젠 덥다고 원망이니, 참.
 
“민들레 사랑하는 법을 배우세요”
 
요즘 기지개를 켜는 ‘권력안보’도 그 간사함이 꼭 그렇다. 선거가 낼 모레니 조바심이 나겠지. 이길 성 싶은데 안 그럴 것 같고, 꼭 이겨야하겠고. 그래서 작심하고 이길 방안을 찾아 ‘기획선거’를 하는 것이겠지. 여론을 조작하고 표심을 왜곡할 그 무엇을 동원해가며.

▲ 조급함 뒤에 오는 회한. 왜 이다지도 봄이 더디 오나 원망하다, 요 며칠 날씨가 화창하고 좀 덮다 싶으니 선선한 그 날이 다시 그립다. 변덕이 죽 끓듯 한다더니 꼭 그렇다. 땀 흘릴 때 생각해 선선함을 즐기면 되련만, 겨울 더디 간다고 원망하고 이젠 덥다고 원망이니, 참.     © 최방식 기자

 
민들레 홀씨와 싸우다 지쳤다는 어느 정원사 이야기가 제격이다. 넓고 깨끗해 늘 자랑스러워하는 잔디밭. 민들레가 수북하게 자라 온갖 방법을 다 써보지만 제거불가. 원예 전문가한테 자문을 구했더니 답이 이랬다지.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민들레의 질긴 생명력을 곧잘 민초들의 삶에 비유하곤 한다. 밟아도 뽑아도 결코 사라지지 않고 다시 살아 무성하게 피어나는 야생의 생명력 때문에. 민들레 앞에선 변덕도 끝장도 있을 수 없는 거다. 싫어도 좋아도 함께 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이솝 우화를 보면 변덕스러움을 'blow hot and cold'라 표현한다. 추워서 제 손을 호호 부는 사람을 보고는 ‘반인반수’ 숲의 신 사티로스(Satyr)가 동굴로 데리고 가 뜨거운 수프를 만들어 주었다. 수프도 호호 부는 것을 본 사티로스가 "한 입으로 뜨거운 김과 찬 김을 낼 수 있는 자"라며 내쫓았다는 얘기. ‘죽 끓듯 하다’는 우리말과 정말이지 꼭 닮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냉온탕을 오가는 ‘정권안보’ 기획자들의 심정도 그렇겠지? 천안함 사고 원인 하나 여태 밝히지 못하면서, 예단은 금물이라면서 ‘북한책임론’ 바람을 일으키는 걸 보면. 유리하면 민족을 이야기하고, 불리하면 ‘주적론’을 들먹이는 게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유치함 꼭 그거다. 지난 군부독재처럼.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유치함
 
기왕 시작했으니 딴소리 좀 더 하자. '민들레 홀씨'는 바른 표현이 아니다. “어느새 내 마음 민들레 홀씨 되어/ 강바람 타고 훨훨 네 곁으로 간다.” 유명 가수의 노랫말인데 정겹고도 슬프다. 문학작품에도 이 말이 곧잘 등장하는데, 느낌이 좋아서 그런 모양이다.

▲ 민들레 홀씨와 싸우다 지쳤다는 어느 정원사 이야기가 제격이다. 넓고 깨끗해 늘 자랑스러워하는 잔디밭. 민들레가 수북하게 자라 온갖 방법을 다 써보지만 제거불가. 원예 전문가한테 자문을 구했더니 답이 이랬다지. “민들레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홀씨’는 홀로 된 씨앗이 아니라는 거다. 스스로 갈라지거나 싹이 나거나, 또는 줄기에서 두 개 이상의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씨를 말한다. 암수가 따로 있어 수정되는 게 아닌 홀로 생명을 만드는 씨앗. 민들레는 바람에 날려 수정되는 ‘풍매화’이니 당연히 홀씨가 아니고.

오늘도 때늦은 끼니 때우다 ‘주먹궁리’에 주책망나니 철들어 간다. "어느 당을 지지하십니까?", 그 놈 전화벨소리만 아니었어도 깨달음이 더 깊어졌을 것을. 뭐 좀 해보려면 울려대니. 애고, 오늘도 ‘권력안보’가 내 사유를 침해하고야 말았구나. 한데, 몸쓸 변덕은 또 어찌 다스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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