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림을 받지 않거든, 내 허물 살펴라”

[길거리통신] ‘말로만 자책·반성’ 정치인들 ‘반구저기’ 배워라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10/06/03 [18:32]

“다스림을 받지 않거든, 내 허물 살펴라”

[길거리통신] ‘말로만 자책·반성’ 정치인들 ‘반구저기’ 배워라

최방식 기자 | 입력 : 2010/06/03 [18:32]
선거가 끝날 때면 꼭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유권자의 심판,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하지요. 그 약속이 무얼 말하는 지 이젠 다들 압니다. 세상에서 가장 믿기 어려운 정치인들이 하는 말이니까요. 그러니 광우병시비가 한창일 때 청와대 뒷산에 올라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보며 국민을 편히 모시지 못한 걸 자책했다던 이가 떠오르는 건 당연지사겠지요?

당 공천을 받아 6·2지방선거에 나섰다가 선거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화순군수 후보가 있습니다. 그가 구속되자 민주당은 다른 후보로 공천자를 바꿨고, 그는 옥중 무소속으로 출마했죠. 보석으로 풀려나 선거를 치렀고, 이겼습니다. 그가 투표 전 구속적부심이 기각됐을 때 한 말이 생각납니다. 모든 잘못이 자기 탓이라며 ‘반구저기’(反求諸己) 심경을 토로했다죠.
 
화순군수 선거는 부부·형제 대결로도 관심을 끌었죠. 정치인들이 법을 얼마나 경시하는 지도 잘 보여줬고요. 민선 3기 임호경 군수는 취임 1년8개월 만에 선거법 위반으로 물러났습니다. 그의 아내 이영남씨가 보궐선거에서 당선됐고요. 4기 선거에선 이씨와 전형준씨가 맞붙어, 전씨가 이겼습니다. 취임 세 달도 안 돼 선거법 위반으로 중도 하차했고, 동생 전완준씨가 보궐선거로 당선됐죠. 5기에 출마한 동생 전씨가 다시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보석)된 상태에서 3기 임 전 군수와 겨뤄, 승리했답니다.
 
“최선 다했지만 국민 맘 못 얻어?”
 
정말 모를 일입니다. 정치를 하려면 법을 밥 먹듯이 어겨야 되는지, 아님 별 것도 아닌데 정치가 멀쩡한 이들을 범법자로 만드는지? 안타까운 것은 정치인들이 말로는 다들 반성한다면서도 몸으로는 그리 하는 않는다는 것이죠.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정병국 사무총장도 이번 선거 뒤 사퇴를 했더군요. 이렇게 말하고서.

▲ 경제살리기는 뒷전이고 촛불집회 참가자 보복에 열을 올리고 있는 MB정부에 누리꾼들의 분노가 타오르고 있다.     ©인터넷저널

 
“최선을 다했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선거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번 선거의 책임을 맡은 선대위원장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이번 선거는 여야 정치인들이 협력해 국정 현안을 풀어나가라는 국민의 준엄한 당부다.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를 국민의 사랑 되찾을 수 있는 계기로 삼겠다.”

말들은 참 잘 합니다. 한데, ‘최선을 다했는데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정대표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국민이 몰라줬다는 말처럼 들리거든요. 유권자를 무시하는 발언이니까요. 그럼, 다음엔 차선을 하겠다는 걸까요? ‘끝없이 이어진 촛불을 보며 자책했다’는 이는 그다음 뭘 했는지 다 알잖아요?

솔직히 당대표와 선대위원장을 맡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가 선거결과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아니죠. 한나라당이 이번 선거에서 참패한 건 부자편을 들며 민심을 갈라놓고 돌아서게 한 실정 때문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땐 짐짓 뒷짐 지기를 좋아하는 청와대가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것이겠죠.
 
촛불보며 자책? 그 다음 뭘 했나?
 
하여튼, 자책의 결과가 뭐였습니까? 촛불집회 참석자들을 하나 둘 잡아들이는 것? 네티즌에 재갈을 물리는 것? 누리꾼의 말·글을 검열하고 통제하며 겁박해 언로를 차단한 ‘영광스런’(?) 나라? 중국처럼 하나의 잣대도 아닌, 외국 사이트엔 들이대지도 못하면서 국내 사이트에만 재갈을 물리는 자국민 차별 인터넷실명제를 실시하는 나라...

글로벌 경제와 한국 위기를 언급하는 것도 유언비어 유포죄가 되는 나라. 자신들이 합의해 만들어놓은 세종시 설립계획을 제 맘대로 바꾸겠다고 하지를 않나, 대운하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더니 이름만 바꿔 추진하지를 않나... 정부는 4대강을 맘대로 홍보하면서 유권자들에게는 선거이슈라 반대하면 선거법 위반이라고 단죄하는 나라...

진보정치를 후원했다는 이유로 교사를 대량 해고하고, 보수정치(집권당)를 지지·후원한 교장들은 봐주는 나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천안함’이라는 매카시의 녹슨 칼을 꺼내들고 ‘권력안보’ 놀음을 하려다 들통난 권력. 근데 왜, ‘천안함 시비’는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기야, 유언비어 유포죄(?)로 다스렸으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겠지요?

▲지난 대선과 이번 지방선거에서 그 위력을 보여준 ‘인터넷실명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발이 거세지만 당국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인터넷저널

 
자책이 무엇인지 확인됐습니다. 그 좋은 권력을 가지고 국민의 입 하나 틀어막지 못한 것을 통탄한 것이지요. 처음부터 혼 줄을 냈어야 하는데 봐주다 ‘큰 코’ 다친 걸 뒤늦게 후회했던 것이지요. 언행이 불일치로소이다. 입으론 반성하고 몸으론 ‘계속 고고~’ 하는 게 엿보이니까요. “언놈이 까불어...” 소리치면서.
 
국민에 재갈물리고 겁박한 권력
 
지독하게 웃기는 정치현실을 보면서도 웃을 수 없는 씁쓸함. 그래서 역사와 정치, 그리고 반성의 의미를 반추해 보려합니다. 서양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투스는 역사를 ‘경험과 자료에 대한 탐구’라고 했다죠? ‘유익한 교훈’이 필요하다고요. 그는 '페르시아 전쟁'을 이렇게 기록했죠. “페르시아의 전제군주 보다 그리스의 민주 제도가 우승했다.” 강력한 군사력을 소유한 페르시아가 그리스에 패한 이유를 그답게 설명했죠?

역사철학자 에드워드 핼릿 카도 이렇게 말했죠.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 친절하게 부연설명까지 덧붙였습니다. “추상적이고 고립된 개인과 개인의 대화가 아닌 오늘의 사회와 어제의 사회 사이 대화다.”

역사의 진보성을 변증법적으로 언급했나요? 정치를 ‘가치를 배분하고,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며, 인간에 내재한 권력관계’라고 규정들 하지요. 사회발전을 도모하고,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도록 하며, 구성원의 이해를 조정하는 것. 칸트의 말 한 마디만 덧붙이는 게 좋겠습니다. ‘남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기의 자유를 확장’하는 자유의 법칙,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면서...

하나라 우 임금 시절 제후인 유호씨(有扈氏)가 쳐들어왔을 때 일입니다. 우는 아들 백계(伯啓)로 하여금 싸우게 했으나 패했습니다. 그의 부하들이 억울해 하며 한 번 더 싸우자고 했지만, 백계는 자신의 덕행과 병술이 유호씨에 떨어져 그리된 것이라며 반성하고 분발했죠. 그 걸 안 유호씨도 더 이상 침범하지 못했고, 결국 백계에게 귀순했다고 합니다. 사서삼경의 하나인 ‘맹자’의 공손추편에 나오는 ‘반구저기’의 어원입니다.
 
“전제군주 아닌 민주제도가 우승”
 
‘발이부중(發而不中) 불원승기자(不怨勝己者) 반구저기이이(反求諸己而已)’. 활을 쏴 적중하지 않아도 이기는 자를 원망하지 않고 돌이켜서 자기에서 까닭을 찾을 따름이라는 뜻. 맹자의 스승(실제론 증조할아버지 벌) 쯤 되는 공자도 이렇게 말했답니다. "군자는 허물을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허물을 남에게서 찾는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위령공편)

말로만 반성·자책하고 몸은 거꾸로 가는 위정자들에게 2천년도 더 된 맹자 충고 하나 더. “사람을 다스리되 상대방이 다스림을 받지 않거든 내게 잘못이 없는가를 살펴보라. 행하여 얻음이 없으면 모든 것에 대한 자기반성을 먼저 하라. 내가 올바로 행동한다면 천하는 반드시 내게 돌아온다.”(이루편)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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