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이 박사와 속초에 다녀왔습니다”

여행스케치(상) “3대 관음도량이자 관동팔경 하나인 낙산이 민둥산”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04/12 [13:39]

“살라이 박사와 속초에 다녀왔습니다”

여행스케치(상) “3대 관음도량이자 관동팔경 하나인 낙산이 민둥산”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04/12 [13:39]
지난 주말 동해안을 다녀왔습니다. 버마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는 살라이 툰 탄 박사와 버마학생민주전선의 탄케 의장, 그리고 ‘버마민주화를 지원하는 모임’의 유종순 공동대표 부부와 함께 말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동해바다를 마주하면 기분이 날아갈 듯합니다. 누구와 함께하든 상관없습니다.

 살라이 툰 탄 박사가 ‘지학순정의평화상’을 받으러 한국에 온 이래 수상식, 세미나, 그리고 각종 만남을 주선하고 수행하는 일은 그럭저럭 잘 했습니다. 그가 곧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간다고 하니 애석한 마음이 없지 않던 차에 함께 한국의 아름다운 곳을 여행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살라이 박사는 두 번째 방한인데 속초를 여행하는 건 처음입니다. 종순형이 애써 성사됐습니다.

 “서울탈출 언제나 즐거워”

 승합차를 가지고 동참하겠다던 이가 사정상 못 간다고 해 차만 빌려 내가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6일 오전 10시 서울 탈출이 시작됐습니다. 서울을 벗어난다고만 하면 난 언제나 즐겁습니다. 서울살이가 싫어서요. 그런 곳에 왜 사느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저 마음만 “탈출해야 할 텐데”입니다. 공룡도시의 물귀신작전은 꽤 집요합니다. 면목동에서 출발해 천호대교만 건너면 되는데도 쉬 벗어나도록 놔주지 않습니다.

 1시간여 고생 끝에 천호대교를 지나 미사리로 접어드니 막혔던 가슴이 탁 터집니다. 물론 시야도 확 트이지요. 매연과 교통체증, 그리고 왠지 모를 불안에서 해방된 느낌입니다. 일행은 재잘거리고 흥얼거리며 드라이빙을 즐깁니다. 어느 새 두물머리에 이르면 묵직하던 머리가 시원해집니다. 심장이 뛰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요.
 
▲ 미시령 터널을 지나 마주한 울산바위. 금강의 일만이천봉이 못된 슬픔을 토해내는 자태가 애절합니다.  왼쪽부터 살라이 툰 탄 박사, 유종순(가운데) 버마민주화 지원모임 공동대표와 부인 신영미씨, 탄케 버마학생민주전선 의장, 그리고 필자. ©최방식
▲ 낙산사로 접어드니 화마가 남긴 생채기 뿐입니다. 아름드리 나무는 거의 모두 타버려 밑둥이 잘렸습니다. 일부가 타버렸지만 가느다란 삶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 나무도 몇 그루 보입니다. 그 아래 화사하게 고개를 든 봄 꽃이 작은 희망을 전합니다.     © 최방식
▲의상대는 화를 면했습니다. 낙산사의 옛 모습을 기억케 하는 몇 안되는 건축물 중 하나. 그 주변 나무들은 역시 온전치 못합니다.     ©최방식
양평을 지나 홍천으로 이어지는 6번국도, 그리고 인제, 원통, 내설악을 잇는 44번 국도가 4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렸습니다. ‘버마민주화를 지원하는 모임’의 또 한명 공동대표인 효림 스님이 백담사를 오가며 한 달에 두세 번 이용할 텐데 덕을 좀 볼 겁니다. 하지만 왠지 가슴이 아립니다. 길을 내며 고운 산천을 할퀴어 놓았으니까요. 꼬불꼬불 다니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랬을까요?

한창 물오른 갯버들과 야생화로 아름다워야 할 길 옆 자연은 생채기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바퀴는 잘 구르는 듯 합니다만 눈은 별로 즐겁지 않습니다.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깎인 산허리와 잘린 강줄기, 그리고 황토흙 위로 기계음이 지나간 자리 뿐 볼게 없어서 그렇지요. 자연은 황폐해진 그 곳을 복원하느라 또 한 번 허리가 휘겠지요

“44번국도 완성, 환경파괴 아파”

 오후 2시쯤 됐을까요. 배꼽시계가 연신 신호를 보냅니다. 내설악 용대리 계곡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데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음식 맛이 좋다는 송희식당을 찾아서요. 얼마나 갔을까요? 멀리 풍채 좋은 금강소나무 한 그루가 반갑다고 손을 흔듭니다. 제 자태만으로도 자릿값은 하는데 이정표 노릇까지 하니 꽤 쓸모 있는 나무입니다.

 이집의 황태 구이와 국은 일품입니다. 허기진 배를 허겁지겁 채우느라 바쁜데 살라이 박사가 음식 맛이 좋다고 칭찬입니다. 이 식당은 한 인터넷신문에 소개돼 찾는 이가 꽤 늘었다고 합니다. 딸의 이름을 따 상호를 지었다고 들었는데 직접 물어보진 못했습니다. 커피 한잔의 후식을 마치고 미시령을 넘는데 멀리 울산암이 방긋 미소 짓습니다. 터널이 생겨 예전의 정겨운 꼬부랑 고갯길은 볼 수가 없습니다.
 
▲마루바닥 작은 구멍으로 동해 파도를 구경할 수 있는 홍연암. 산불과 수해로 주변이 모두 무너져 내렸습니다. 홍연암도 안전하지 않아 보입니다.     ©최방식

▲법당으로 오르는 길. 킨 큰 나무는 모두 타버리고 몇 안 남은 나무 중 하나입니다. 제몸도 한쪽은 타버렸는데, 다른 한쪽이 남아 처연하게 꽃을     ©최방식

▲낙산 정상에서 바라본 도량. 이태전 큰 불로 주변 울창했던 숲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도량 몇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게 꼭 신축 불사마냥 쓸쓸합니     ©인터넷저널

금강의 일만이천봉이 돼보려고 헐레벌떡 달려오다 한 발 늦어 분루를 삼켰다는 울산바위. 울음을 그치지 않아 서러운 눈물이 흘러흘러 계곡이 됐다는 이야기를 몰라도 울산암을 마주하면 왠지 비장함이 베어납니다. 넋을 잃고 한참을 구경했습니다. 기념촬영도 하구요. 이어 낙산사로 향했습니다.

이런 비극이 또 있을까요. 세상에, 낙산이 황무지로 바뀌었습니다. 이태 전 산불로 그리됐다는 군요. 3대 관음기도도량이며 관동팔경 중 하나인 낙산이 민둥산이라니. 나무가 사라지고 나니 정말 볼품없기 짝이 없습니다. 바닥 작은 구멍으로 파도를 구경할 수 있는 홍연암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주변은 온통 산사태로 흉측합니다.

“송이식당서 황태구이 점심”

슬픔을 딛고 재건과 복구의 의지를 다지는 불자들과 자연의 의지마저 없다면 아수라장 그 자체일겁니다. 사라져버린 법당, 그리고 그 울창하던 해송 숲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의상대 곁 몇 그루의 나무가 옛 기억을 떠오르게 합니다. 법당 오르는 길 한 그루의 살구나무만 덩그러니 남아 쓰디쓴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제 몸도 한쪽은 타버렸습니다.
 
▲ 낙산 정상에서 바라본 동해. 언제나 그렇듯 넓고 큰 바다세상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 최방식
▲ 살라이 박사와 탄케 의장이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살라이 박사는 뒤쪽 저멀리 자기가 사는 샌프란시스코가 있다며 잘 찍어달라고 했습니다.     © 최방식
▲ 누군가 석등 안에 작은 동자승을 넣뒀습니다. 언뜻 지나치면 보이지도 않습니다. 상처를 딛고 옛 낙산의 모습을 되찾으려는 불자들의 고운 마음을 아는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군요.     © 최방식
낙산 꼭대기에 올라 먼 바다를 넋 놓고 응시하다 내려오는 데 화마가 할퀴고 간 생채기가 새삼스럽습니다. 검게 그을린 흙을 보고 있노라니 어디선가 매케한 연기가 피어나는 듯 합니다. 밑둥이 잘린 나무 사이사이 작고 푸른 희망들이 하나 둘 솟아오르니 그나마 안심입니다. 언뜻 발견한 석등 속 작은 동자승은 천진난만합니다. 몸을 굽혀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를 잃은 낙산은 지금 아픔이 큰 만큼 더 아름다운 그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천년 관음도량과 그 곁 자연 속 도반들은 지금 대책회의 중입니다. 타고 무너진 제 몸을 복구하려고요. 해수관음의 법력을 기원해 봅니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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