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분단 현장서 막걸리 한잔 마시고...”

여행스케치(하) “바닷가로 난 정겨운 7번국도 타고 통일전망대까지...”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04/14 [20:52]

“아픈 분단 현장서 막걸리 한잔 마시고...”

여행스케치(하) “바닷가로 난 정겨운 7번국도 타고 통일전망대까지...”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04/14 [20:52]
낙산의 아픔을 뒤로 하고 속초 북쪽으로 마냥 달렸습니다. 저녁이 되면 거기가 어디든 숙소를 잡기로 했죠. 작년인가 효림 스님(버마민주화를 지원하는 모임 공동대표)과 함께 가봤던 바닷가 어느 예쁜 카페가 하나 생각나 들르기로 했습니다. 가물가물 했지만 영랑호를 지나 기억을 더듬어 찾아들었죠. 이름이 나폴리아입니다. 풍광도 좋고 이름도 괜찮습니다. 맥주를 한잔씩 들이키며 마주앉아 정겹게 담소를 나눴답니다. 잔잔해 평화로운 동해도 맘껏 쳐다봤구요.
 
푸른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2층 창가에 앉아서 1시간 쯤 놀았을까요? 방명록이 있어 살라이 박사를 비롯한 몇이 낙서를 했습니다. 우리가 좀 시끄러웠나요? 물론 한글, 영어, 버마어가 모두 튀어나오다 보니 그랬을 겁니다. 젊은 몇이 2층으로 오다 말고 다시 내려갑니다. '물 흐렸다'고 생각했을까요? 나오다 탄케가 풍광이 좋다고 생각들었는지 포즈를 잡으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그럽니다. 밝게 웃으면서요.
 
바닷가 카페 ‘나폴리아’서 맥주 한잔...
 
날이 저물어가니 이제는 슬슬 잠자리 걱정이 앞섭니다. 귀한 손님이 있어놔서요. 화진포까지 가면서 좋은 데를 찾기로 하고 다시 북으로 달렸습니다. 어디쯤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바닷가 풍광이 꽤 아름답습니다. 펜션 몇 군데를 물어보니 가격만 비싸고 그다지 좋아보이질 않습니다. 그 옆 근사하게 생긴 민박집 하나를 찾았더니 괜찮은 방이 2개가 있답니다.
 
▲낙산을 뒤로하고 화진포로 가는 길에 들른 예쁜 카페 나폴리아.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카페 2층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한잔씩 마시니 여행의 맛이 제법 살아옵니다.     © 최방식
▲나폴리아 카페의 아름다운 실내 풍경. 지난해 언젠가 백담사에 들렀다가 효림 스님이 바람 좀 쐬러 가자며 들렀던 속초 영랑호 너머 바닷가에 있는 카페입니다.  ©최방식
▲시원하게 맥주 맛을 돋우는 실내장식. 흔들리는 불빛아래 푸른 동해의 청정한 기운이 감돕니다. 그런데로 물이 좋아 보이지요?  ©인터넷저널

짐을 풀고 내려와 싱싱한 생선회 안주에 술을 한잔씩 했습니다. 양이 덜 차 마트에서 맥주와 안주를 사들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술과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았죠. 살라이 박사와 탄케가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흥이 오를 때쯤 술이 떨어지니 조모아(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 조직원)가 한 병 더 사옵니다.
 
살라이 박사는 대단한 스토리텔러입니다. 가족이야기, 조국 버마이야기, 그리고 조금은 음담패설까지 거침없습니다. 그날 밤 우리 모두를 뒤집어지게 한 ‘10달러 스토리’만 소개할까요?  어느 날 어머니가 집을 나가며 아들에게 아빠가 하루 종일 뭐하는 지 알려주면 10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밤에 와서 아들에게 물었죠. 아빠가 이웃집 아줌마와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한 뒤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고 고해바칩니다. 이야기를 다 해야 10달러를 준다고 다그치자 ‘열쇠구멍’으로 본 것까지 이야기하고서야 10달러를 받았답니다. 그 마지막 이야기는 차마 못하겠습니다.
 
‘10달러’ 스토리에 일행 포복절도...
 
살라이 박사 덕에 배꼽을 잡고 웃으며 술을 마셨습니다. 밤늦도록 즐겼습죠. 취기도 꽤 올랐습니다. 밤도 늦었고요. 낮선 동해 바닷가 어느 마을에서 우리 모두는 꿈나라로 빠져들었습니다. 종순 형 부부 한방, 나머지는 다른 한방에서. 곤하게...

▲ 버마학생민주전선 탄케 의장이 카페를 나서는 길에 제법 폼을 잡고 섰습니다. 곁의 후크 선장의 칼을 잡고서요. 과거 탄쉐 독재정권과 싸우던 시절을 떠 올렸을까요? 비감한 모습을 연출합니다.     © 최방식

▲화진포로 향하는 길에 들른 봉포리 해수욕장. 일행은 여기서 하루밤을 묵었습니다. 맛난 회도 시켜놓고 술도 한잔씩 하면서요.    ©최방식

▲봉포리의 밤은 조금의 취기와 함께 깊어갔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문득 잠을 깨어 창을 여니 저기 멀리 붉고 둥근 덩어리 하나가 수평선 위로 솟아 오르고 있습니다. '보라 동해에 떠 오르는 태양...'입니다. ©최방식


답답한 느낌에 눈을 뜨니 6시가 조금 넘었나 봅니다. 살라이 박사도 마침 일어나 앉아있습니다. 창문을 여는데 붉은 해가 바다 속에서 막 솟구치고 있습니다. 카메라를 집어 드는데 창문 앞에 거미줄 같은 전깃줄이 얽혀있어 그림이 영 안 나옵니다. 옷을 주섬주섬 차려입고 바닷가 모래밭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봉포리의 일출이 근사합니다.
 
30여분을 백사장에 서서 일출을 즐겼습니다. 사진도 찍구요. 고요한 봉포리 앞바다를 바라보며.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어쩌고 하는 송창식(?)의 장엄한 노래 하나 떠올렸습니다. 칠흙 같은 어둠을 삼키고 다가와선 눈부시도록 빨갛고 하얗게 봉포리를 수놓는 불덩어리 하나. 가슴속 깊이 담아뒀습니다.
 
아침은 라면입니다. 해장국으로 최고거든요. 버마인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전에 괜찮은지를 묻긴 했습니다만. 그렇게 라면국물로 해장을 마치고 통일전망대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1시간여를 달리니 멀리 일만이천봉 금강산이 희미하게 자태를 드러냅니다. 온정리 가는 길도 보이고요. 출입 통제소가 차창밖으로 지나치는 군요.
 
잠시 신고서를 작성해 제출하며 통제소 기념품가게를 구경하고 통일전망대로 다시 출발합니다. 10여분. 눈앞이 통일전망대입니다. 멀리 북녘 해금강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금강산으로 난 육로가 시원하게 뚫려있습니다. 전망대에 서니 북녘 산하가 반깁니다. 버마인들 눈엔 분단이 좀 생소했겠죠? 살라이 박사는 “정말 슬픈 현장”이라고 아파합니다.
 
가슴시린 분단... “정말 슬픈 곳”
 
가슴 시린 분단의 현장에서 그냥 말 수야 없죠. 조껍데기로 만든 막걸리 한잔씩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오는 데 기념품판매원이 술 좀 사가라고 권합니다. 그래서 보니 병뚜껑이 남자 고추모양입니다. 아마 정력에 좋은 술이라고 그리 만든 모양입니다. 일행은 한참을 웃고 떠들다 주차장으로 내려왔습니다.

▲ 150마일 동부전선 끝 통일전망대에 오르니 큰 부처가 북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왜 누가 부처를 그렇게 세워놨을까요?     © 최방식

▲성모 마리아 상도 북녘을 향해 서있습니다. 서울의 한 성당에서 기금을 모아 세웠다는 군요.  ©최방식

▲ 통일전망대에 서니 해금강이 지척입니다. 가까이 남방한계선, 그 너머 중앙분계선(바다 가운데 섬 하나 있는 곳), 그리고 북녘 땅입니다. 살라이 박사는 "큰 슬픔"이라고 표현하더군요.     © 최방식
일행 중 한명이 서둘러 서울에 가야한다기에 아쉬운 맘을 뒤로하고 귀향길에 올랐습니다. 꼬불꼬불 진부령을 넘어서요. 오는 길에 백담사 만해마을에 들렀습니다. 사무총장 직을 가진 효림 스님을 뵐 수 없어 서운했지만 사무국 식구들이 반갑게 맞아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향 좋은 커피도 한잔씩 얻어먹고요.
 
아, 이제 서울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맑던 머리가 다시 지끈거립니다. 배고파 들렀던 식당에서 막국수에 곁들인 막걸리 때문인지 졸음까지 괴롭히는군요. 심호흡에, 진한 커피 한 잔, 그리고 마음을 다잡고 운전대를 다시 잡았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마음은 편치 않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면 언제나 그렇듯 아쉬움도 크고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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