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깨달음 얻는날, 꼭 돌아온다네"

[지리산 둘레길 기행2] 기쁨·회한·눈물의 여정 끝엔 희망이...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10/08/20 [00:50]

"언젠가 깨달음 얻는날, 꼭 돌아온다네"

[지리산 둘레길 기행2] 기쁨·회한·눈물의 여정 끝엔 희망이...

최방식 기자 | 입력 : 2010/08/20 [00:50]
<지난 글 이어서> 안내센터에 가보니 외국인을 위했는지 지리산 숲길을 '지리산 트레일'(Jirisan Trail)이라 표기해놨더군요. 여행자에게, 순례자에게 익명으로 남은 유일한 흔적 트레일. 그냥 지나간 표시이면서 오랜 세월 오간 이들이 있는 희미한 길. 잠시 ‘눈물의 여정’(Trail of Tears)을 떠올렸습니다.

트레일이 여행자에게 즐거움이어야 할 텐데 고통이자 죽음이었던 적도 있었으니까요. 기자가 일에 치여 좀 쉬겠다고 미국을 쏘다니다 치기로 동서횡단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눈물의 여정’(Trail of Tears) 때문이었습니다. 하워드 진이 쓴 ‘미국민중사’를 보면 잘 나와 있는데, 아메리카 주인이 침략자에게 땅을 빼앗기고 살해당하며 쫓겨 갔던 그 길 말입니다.

▲ 안내센터에 가보니 지리산 숲길을 '지리산 트레인'(Jirisan Trail)이라 표기해놨더군요. 잠시 ‘눈물의 여정’(Trail of Tears)을 떠올렸습니다.     © 최방식 기자


미국 동부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사우스캐롤라이나를 거쳐 플로리다까지 이어지는 산맥을 애팔래치아라고 합니다. 산맥 남동쪽 끝자락에 스모키마운틴이라는 곳이 있죠. 지금은 오클라호마에 살고 있는 체로키 인디언의 고장이죠. 침략자들에 쫓겨 오클라호마까지 1천마일, 피눈물을 쏟으며 이주해야 했던 그 여정입니다.
 
스모키마운틴의 황금장난감
 
원주민 말로 ‘샤코나게’(연기처럼 푸른 땅)인 스모키마운틴에 비운의 그림자가 드리운 건 1838년. 원주민 소년이 금덩이를 가지고 놀다가 백인 장사꾼에게 발각됐죠. 침략자들은 금광을 차지하려고 ‘체로키 부동산 몰수법’(조지아주)을 만듭니다. 7대 연방대통령인 앤드류 잭슨도 ‘강제이주법’을 제정하고요. 10달러지폐에 그려진 인물입니다.

앤드류는 7천명의 기병대를 보내 1만6천명 체로키 인디언을 임시수용소에 가둡니다. 그리고 중부 황량한 땅 오클라호마 칼레쿠아(지금의 체로키 자치령 수도)로 강제이주를 시키죠. 막 겨울이 시작되는 10월에 이주를 시작했는데 이듬해 3월 도착할 때까지 5개월에 걸친 추위, 굶주림, 질병, 학대에 시달려 1/4이상인 4천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 막 겨울이 시작되는 10월에 이주를 시작했는데 이듬해 3월 도착할 때까지 5개월에 걸친 추위, 굶주림, 질병, 학대에 시달려 1/4이상인 4천명이 목숨을 잃었던 '눈물의 여정'. 화가 로버트 린드노가 그림으로 옮긴 '눈물의 여정'(1942년작).     © 인터넷저널



체로키만의 고통이겠습니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사실상 침략)한 이래 살해된 원주민(남북아메리카 대륙 전체)이 적어도 5천만명이 넘는다고 하니 이토록 잔인한 범죄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아물지 않는 고통과 상처를 간직한 채 제한구역(레저배이션)에서 지금도 마약과 카지노로 연명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

그 진혼곡이 하나 생각납니다. 다들 아는 노래죠. 71년 그룹 레이더스(Raiders)가 불렀는데 발표 7개월만에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팝송입니다. “체로키 피플, 체로키 트라이브”를 연호하는 노래. ‘인디안 보호구역’(Indian Reservation)이라는 제목의 대중가요입니다.
 
“체로키 피플~, 체로키 트라~이브”
 
“체로키 인디안 땅을 빼앗고/ 보호구역에 몰아넣었지/ 자랑스러운 우리 고유의 생활방식 /도끼와 활, 그리고 칼마저 빼앗아 버린 뒤/ 우리의 언어마저 없애고/ 우리 자녀에게 자기네 영어를 가르쳤다네……. / 조상이 만든 구슬 목걸이 / 이젠 모두 일본에서 들여온다네/ 체로키 사람들이여, 체로키 부족이여~/ ...나는 어쩔 수 없이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지만/ 내 몸속에는 조상의 뜨거운 피가 흐른다네... / 언젠가 깨달음을 얻는 날/ 체로키 세상은 다시 돌아온다네/ 반드시, 반드시 돌아온다네.” 잠시 들어봐요. 가운데 콕 누르고요.
 


기자는 ‘눈물의 여정’ 때문에 동서횡단을 시작했는데 정작 폼만 잡다 말았습니다. 애팔레치아 산맥을 넘어 테네시, 앨라배마, 미시시피, 아칸소, 오클라호마까지 자고 먹고, 먹고 자며 승용차로 갔으니까요? 그랜드캐년의 남쪽 전망대 어딘가에서 천리 광활하게 펼쳐진 협곡과 자연, 그리고 북미대륙에서 가장 용감했다는 나바호 인디언의 주거지를 멀리 내다보며 그들의 아픔을 잠시 되새긴게 전부였으니까요.

삼천포로 빠졌군요. 이왕 놀거면 좀 더 가볼까요? 2000년대 초쯤으로 기억하는 데 신경림 시인이 뿔이라는 시집을 냈죠. “사나운 뿔을 갖고도 한 번도 쓴 일이 없다... 살과 가죽이 분리되어 한쪽은 식탁에 오르고 다른 쪽은 구두가 될 것을 그는 모른다. 사나운 뿔은 아무렇게나 쓰레기통에 버려질 것이다.” 몸뿐 꿈이 없고, 서글픔 뿐 저항이 없는 굴욕의 운명을 표현한 시였죠.
 
벚꽃 하얀 갈대 우거진 그 길...
 
거기 또 하나 눈길 끄는 시가 실렸습니다. 자신의 일생을 투영한 작품이라고나 할까? 가난이 싫어 출세하고 돈을 벌어보겠다고 길을 따라 도회지로 나갔다가 잘난 세상에 지쳐 다시 갈대 우거진 그 길 어딘가에 서 조용히 곱씹는 회한, 아님 관조의 노래라고나 할까요? ‘그 길’을 한 번 들여다보자고요.^^*
 
▲ 눈길 끄는 신경림 시가 안내센터에 걸려있습니다. 시인의 일생을 투영한 작품이라고나 할까? 가난이 싫어 출세하고 돈을 벌어보겠다고 길을 따라 도회지로 나갔다가 잘난 세상에 지쳐 다시 갈대 우거진 그 길 어딘가에 서 조용히 곱씹는 회한, 아님 관조의 노래?     © 최방식 기자


 
<그 길은 아름답다>(신경림 시)
 
산벚꽃이 하얀 길을 보며 내 꿈은 자랐다.
언젠가는 저 길을 걸어 넓은 세상으로 나가
많은 것을 얻고 많은 것을 가지리라.
착해서 못난 이웃들이 죽도록 미워서.
고샅의 두엄더미 냄새가 꿈에도 싫어서.
 
그리고는 뉘우쳤다 바깥으로 나와서는.
갈대가 우거진 고갯길을 떠올리며 다짐했다.
이제 거꾸로 저 길로 해서 돌아가리라.
도시의 잡담에 눈을 감고서.
잘난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귀를 막고서.
 
그러다가 내 눈에서 지워버리지만.
벚꽃이 하얀 길을, 갈대가 우거진 그 고갯길을.
내 손이 비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 마음이 더 가난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면서.
거리를 날아다니는 비닐봉지가 되어서
잊어버리지만. 이윽고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어니어서, 내 고장으로 가는 길이 아니어서
아름답다. 길 따라 가면 새도 꽃도 없는
황량한 땅에 이를 것만 같아서.
길 끝에 험준한 벼랑이 날 기다릴 것만 같아서.
내 눈앞에 되살아나는 그 길은 아름답다.
 
▲ 안내센터 한 여성에게 물으니 시계방향으로 가는 이더런 빨간색, 그 반대로 가는 이에겐 검은색 화살표를 따라가라고 해 좀 의아했는데, 길에 나서니 알겠더군요.     © 인터넷저널


둘레길은 인월면 어딘가에서 시작됐습니다. 버스터미널에서 가까운 곳에 안내센터가 있더군요. 승용차로 온 이들을 위해 주차장도 만들어뒀고요. 안내소에 들르니 서너명의 직원이 순례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더군요. 안내 브로슈어 한 장 내밀며 궁금한 점이 있거든 뭐든 물으라면서요.

그거뿐이었습니다. 아, 하나 더. 시계방향으로 가는 이더런 빨간색, 그 반대로 가는 이에겐 검은색 화살표를 따라가라고 하고요. 뭐 궁금한 것도 없었고 딱히 물어볼 것도 없어서 쭈뼛대고 있으니, 문을 나가 오른쪽으로 가다 무슨 다리 건너 빨간색 화살표를 따라가면 된다고 합니다. <다음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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