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눈물과 어머니의 ‘호통’?

[야만의 시대] '청와대 방송'을 '국민의 방송'으로 강요한 KBS

고영재·언론인 ( media@mediatoday.co. | 기사입력 2010/09/30 [01:28]

MB의 눈물과 어머니의 ‘호통’?

[야만의 시대] '청와대 방송'을 '국민의 방송'으로 강요한 KBS

고영재·언론인 ( media@mediatoday.co. | 입력 : 2010/09/30 [01:28]
▲ 아침마당출연후 오후130분부터 물폭탄이 쏟아지고 천안함을 빙자하여 북측의 수공이라고 비아냥대는 사진이 트위터에 올라 화제가 되었다. 거직과 사기에 하늘이? © 자주역사신보

이명박 대통령이 눈물을 흘렸다. 지난 추석 전날 아침 한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에서다.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들먹이다 북받치는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다. “(성공하면, 어머니께) 새 옷을 사주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킬 기회가 없었다. 늘 가슴이 아프다.”

눈물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눈물은 때때로 많은 말을 하기 때문이다. 시청자들 가운데 더러는 감동을 느꼈을 법하다. “대통령도 우리 평범한 사람과 똑 같은 감정을 가졌구나.” “가난의 세월을 살았던 분의 눈물이니, 서민의 아픔을 얼마나 잘 이해하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의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은 극진하다. 그는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말한다. “나의 스승은 가난과 어머니다.” 어머니는 노점에서 과일, 국화빵을 팔며 아이들을 뒷바라지한다. 그러나 가난의 세월을 벗어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다. 아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전문경영인으로 화려한 성공을 거둔 것도 보지 못한 채. 그 아들이 훗날 대통령이 되어 한 나라를 호령한다. 그 가난의 세월, 그 설움, 그리고 오늘의 성공을 떠올리면 눈물이 절로 나올 법하다. 그것은 여느 사람의 마음일 게다.

 
▲ 추석전날 아침마당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눈물을 흘리고 오후에는 물폭탄을 맞아 광화문과 수도권이 수몰되어 청계천의 공구리공사까지 도마에 올라 추석내내 의도된 물폭탄눈물로 회자되었다. ©자주역사신보 편집부

장소를 못 가린 눈물에 심란한 국민

그러나 자서전의 어머니는 아들의 눈물을 용납할 분이 아니었다. 그는 공명정대한 분으로 그려져 있다. 어머니는 어린 이명박에게 강조한다. “항상 이웃을 생각해라.” “봉사하되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마라.” 대학 시절 구속 수감된 아들을 면회한 자리에서의 말에도 뼈가 살아 있다. “소신대로 살아라.” MB는 “어머니는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의 뿌리이자 인생의 스승이었다”고 말한다.

눈물은 아름답다. 그러나 MB의 눈물은 때와 장소가 적절하지 못했다. 그날 스튜디오는 사적인 자리가 아니었다. 국민이 지켜보는 자리였다. 나라는 여러 가지 일로 시끄럽다. 국민은 궁금증을 참고 대통령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라가 갈가리 찢어지고 있는 현상의 중심에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자연의 섭리에 도전하는 4대강 사업, 흠집투성이 고위 공직자 기용, 대기업 중심 경제, 부자 감세, 효율과 경쟁 지상주의의 물결이 강산과 삶의 체계를 덮치고 있다.

대통령은 때마침 ‘공정사회론’을 부르짖고 있다. 얼마나 옳은 말인가. 얼마나 절실한 화두인가. ‘공평무사한 사회’라니, 국민이 얼마나 듣고 싶은 말인가. 국민은 이제 그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궁금하다. 그 방안의 진실성에서 국민은 위안을 찾을 것이다. 눈물은 MB의 진실성, 진정성에 대한 혼란을 심어줬을 따름이다. MB는 눈물의 순수성을 악용한 셈이다. MB의 눈물에서 ‘악어의 눈물’을 느낀 시청자들도 있었다.

눈물의 드라마를 연출한 KBS는 더욱 불순했다. KBS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깜박 잊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방송은 시청자가 원하는 얘기를 들려주는 게 기본 책무다. KBS는 그 책무를 저버렸다. 대신 ‘금기’를 태연하게 위반했다. 마이크를 출연자에게 일방적으로 맡기는 일은 쓸개 없는 방송이나 할 일이다.

‘눈물’ 속에서 대통령은 완벽한 인간으로 거듭 태어났다. 시청자들은 인간 이명박의 새로운 모습에 놀랐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상한 아버지이자, 투박하지만 극진한 애정을 지닌 남편이었다. 서민에게는 따뜻한 가슴을 지닌 친서민 지도자였다. ‘화룡점정’의 눈물은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진실만을 담고 있다.” 이날 방송은 ‘청와대 방송’을 ‘국민의 방송’이라고 시청자들에게 강요한 사건이었다. 30년 전 정통성이 취약한 전두환 정권을 도왔던 ‘관제 방송’ 그대로였다. 전두환 권력 장악의 과정을 아름답게 그린 ‘황강에서 북악까지’를 떠올리게 했다.


전두환 미화 ‘황강에서…’ 떠올려져

KBS의 이번 방송은 일회성 실수가 아니었다. KBS는 문득 MB의 언론 장악 위험성을 새삼 일깨워줬다. 이명박 정권은 KBS, MBC, YTN, 방송통신위원회로 이어지는 언로의 전략적 길목 길목을 철저하게 장악했다. 그것도 ‘공정’의 대원칙과 문명국가 권력자의 금도를 짓밟아 가면서. 사사로운 인연은 MB 인사의 특징이다. 이는 야만 사회를 알리는 위험한 징후이기도 하다. 사사로운 인연은 권력의 사유화와 짝을 이루게 마련이다. 사적 권력 놀음은 공적인 금기를 개의치 않는 법이다. 이번 사건은 곳곳에서 금기를 짓밟은 흔적을 드러냈다.

내용으로 보아 적절한 방송 동기를 찾을 수 없었다. 취지가 모호한, 곧 의미 없는 방송은 시청자에 대한 모독이다. 치밀한 연출 흔적은 서글픔을 자아냈다. 대통령 부부의 사사로운 편지글과 도표가 동원됐다. 대통령의 ‘훈수’로 사업이 번창하고 있다는 국화빵 장수 부부의 ‘증언’은 백미였다. 자연스러운 토크프로그램에 무슨 증인이 필요한가. 치밀한 전략이 오히려 프로그램의 진실성을 떨어뜨렸다.

 
언론의 일탈과 그 위험성

언론의 탈선 비용은 너무 크다. 언론은 사회통합의 핵심 메커니즘인 터다. 언론이 제 구실을 못하면 사회통합은 깨지게 마련이다. 통합에 깨질 때 낭비되는 국력은 어디서 벌충해야 하는가. 그 메커니즘의 복원 작업엔 또 얼마나 기나긴 세월이 필요한가.

철없는 방송, 사려 깊지 않은 청와대의 얄팍한 노림수는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KBS의 과잉충성에 응하지 않는 게 도리였다.

하늘에 계신 그의 어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명박아, 대통령이 되었다니 기특하구나. 그런데 웬 눈물이냐. 그 눈물이 진심에서 나온 것이더냐. 4대강은 왜 그리 시끄럽고, 네가 데리고 쓰겠다는 고위 공직자들은 왜 그리 문제투성이냐. 같이 일할 사람들이니, ‘코드’니 뭐니 하는 거야 네 뜻대로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때 묻은 사람을 써서야 되겠느냐, 이 에미 욕보이는 일 아니냐.” 어머니의 호통은 이어진다. “나에게 보낼 눈물이라면 어서 거두거라. 그 눈물은 5천만 국민을 위해 흘리거라.”
 
인용원문: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0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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