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길·숲에서니 '일방언론' 낯뜨거워

[지리산둘레길 기행3] 권력기생 '한심뉴스' 전하는 소로스의 적?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10/10/12 [14:40]

소통 길·숲에서니 '일방언론' 낯뜨거워

[지리산둘레길 기행3] 권력기생 '한심뉴스' 전하는 소로스의 적?

최방식 기자 | 입력 : 2010/10/12 [14:40]
[지난 글에 이어서] 인생이 늘 그렇듯 여행길에도 동반자나 인연이 있게 마련입니다. 기자의 지리산 둘레길 여정에도 동반자가 두 명이나 있었죠. 특별한 인연이라고나 할까요? 둘 다 1학년인데 하나는 대학, 또 하나는 고교생입니다. 어떤 인연이든 길게 보면 다 도반일 뿐이죠.

5분여를 걸었을까요? ‘구인월교’로 기억되는데 다리 하나가 나옵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산 쪽으로 난 큰 길을 따라 가려고 하는데 고교생 녀석이 길을 막아섭니다. “틀렸어, 우리 지금 거꾸로 가고 있는 거야. 이거 지도 보라고.”

▲전국 어딜가나 지천에 널린 개망초. 북아메리카 귀화 식물이라고 하죠? 금수강산을 예쁘게 장식하건만 아무도 그 아름다움을 봐주지 않습니다. 너무 흔해서 그런 것일까요?   © 최방식 기자
▲인월천 한 가운데서 한가로 풀을 뜯는 소들. 둘레길의 즐거움은 정겨운 풍경을 맘껏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 최방식 기자

 
살펴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인월에서 금계로 가는 3코스 길, 빨강색 화살표를 따라가야 하는데 우리가 거꾸로 가는 중입니다. 벌써 안내소에서 1km 정도 왔는데, 돌아가 물어보기도 그렇고. 혹시 순례자가 있으면 물으려고 앞뒤를 둘러봐도 아무도 안보입니다.
 
“틀렸어, 지금 거꾸로 가는 거야”
 
낭패다 싶어 주저하고 있는데, 자전거를 탄 주민 한 분이 다가옵니다. 마치 왜 서성이는 줄 다 알기라도 하는 듯이 둘레길 푯말을 가리킵니다. 그게 길모퉁이에 서있는 줄도 몰랐는데, 확인해 보니 가야 할 길을 그제야 알 수 있더군요. 빨간색 화살표를 따라가면 되니까요.

강둑길로 접어듭니다. 나락이 막 익어가는 들판 한 가운데로 큰 내가 평화롭게 흐릅니다. 내를 따라 걷는 길, 잠시의 소동을 뒤로하고 한가로이 자맥질을 하는 왜가리를 구경합니다. 그 곁 황소들은 여유롭습니다. 한 마리는 풀을 뜯고 또 한 마리는 졸고.

바쁘게 다가오는 순례자가 눈에 띕니다. 중년의 남잔데 발걸음이 경보 선수 같습니다. 서둘러야 할 이유가 있겠죠? 우리 일행이 제대로 가는 것이냐고 물으니 그냥 쭉 가면 된답니다. 산모퉁이를 가리키는 데 울창한 숲 속으로 이어집니다. 여행길 인연은 그렇게 스칩니다.


▲쑥부쟁이인가요? 아님 구절초? 길가 다소곳히 꽃대를 내민 자태가 여유롭습니다.   © 최방식 기자

▲중군마을에 들어섰습니다. 임진왜란 때 3군 중 중군이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데. 믿거나 말거나.    © 최방식 기자
 
들판 끝자락. 다리를 건너고 2km 쯤 걸었나 싶은데 건물 하나. 요양원인가? 돌아서니 산 굽이굽이 계곡이 펼쳐집니다. 조금은 짜증스럽게도 포장길입니다. 중군마을까지 1km 남짓. 하기야, 흙길이 있으면 포장길도 있고, 오르막 끝엔 내리막이 있는 게 인생인 게지요.

중군마을 들머리. 담장을 따라 50여 미터 이어지는 그림이 눈길을 끕니다. 마을의 특산물이자 자랑거리인 잣과 산나물, 그리고 화려한 꽃과 자화상을 그려놨습니다. 누가 그렸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빨강, 노랑, 초록의 원색 배합이 강렬합니다. 숙소가 있어 묵고 갈 수도 있고요.
 
오르막 끝엔 내리막 있는게 인생
 
그러니까 중군마을 주민들이 벽화로 순례자와 소통을 시도한 겁니다. 마치 순례자가 길 또는 여정과 대화를 하듯이요. 소통의 상대가 꼭 사람일 필요는 없습니다. 산, 강, 들, 하늘, 바람, 그리고 숲속 나무와 풀, 논, 밭 때론 바위와도 가능하지요.

2백여 년 전 북아메리카 대륙의 동부 울창한 숲속 호숫가에 오두막 한 채를 짓고 2년 넘게 고독과 벗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생각나는 군요. 사실 헨리는 고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산, 숲, 호수, 나무, 새, 낙엽, 다람쥐, 어둠, 햇볕, 그리고 바람과 친구 먹었거든요.

 
▲중군마을을 통과하는 둘레길 옆 담벼락에 그림이 눈길을 끕니다. 원색의 조합이 곱지요? 주민들이 순례자들과 소통을 시도한 겁니다.  © 최방식 기자
▲농부의 실력? 아님 꼬맹이들을 동원했거나. 한손에 잣 또 한손엔 꿀을 들고 있는데, 이 마을 특산물이랍니다. 여유있거든 마을회간에 한번 들러보세요.     © 최방식 기자
 
그는 숲 속 삶을 이렇게 변명했다죠?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만 직면해 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려던 것이었다. 마침내 죽음을 맞았을 때 ‘헛되게 살았다’는 후회는 하지 않으려는 거였다. 그리고 불가피하지 않는 한 체념하지 않으려 했다.”

예상 밖 이야깁니다. 자연이 좋다거나 세상과 탐욕이 싫어서 그런 게 아니란 거죠. 삶의 참 의미를 깨닫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쉽지는 않습니다. 하여튼 핵심은 세상의 거짓과 헛소문, 그리고 위선이 아닌 본질을 보기 위해, 그런 삶을 배우려고 거짓`낭설 또는 위선이 없는 숲 속으로 갔다는 겁니다.

헨리라는 분 참 알수록 재미있습니다. 160여 년 전이라면 조선의 25대 임금인 철종, 그러니까 고종의 선왕이 왕위에 오른 해인데, 그 시절 폭력적이며 야만적 문명을 비판한 분이니, 대단한 사상가이자 철학가인 건 인정해야겠지요?
 
인생의 본질적인 것만 직면하려고...
 
헨리는 이뿐 아니라 멕시코전쟁과 노예제도를 반대하기 위해 연방정부가 거두는 인두세를 내지 않고 감옥에 가면서까지 항거한 분으로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간디와 톨스토이, 그리고 얼마 전 우리 모두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떠난 법정 스님이 스승으로 삼을만한 분 맞죠?

 
▲늦가을 김장에 쓰일 고추. 가을 쨍쨍한 햇볕에 말린 태양초가 제일이랍니다. 가을 태양의 에너지를 한껏 ㅁ금고 있어서 그렇겠지요?   © 최방식 기자
▲벌들아, 니들이 참 고생 많다. 제먹이는 빼앗기고 설탕물 먹으며. 여기선 토종꿀이 나오는 것이겠지요?     © 최방식 기자
 
헨리는 보스턴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매사추세츠주 콩코드라는 마을의 ‘월든’ 호숫가에 칩거해 살았습니다. 28달러만 들여 통나무집을 손수 짓고, 자신이 먹을 것 외에는 농사짓지 않으며 자급자족을 실현했죠. 생전 2권의 책을 썼는데, 하나는 ‘월든’, 다른 하나는 시민운동가들의 바이블 ‘시민불복종’입니다. 마흔넷에 작고했는데 그 뒤 10여권의 책이 나왔고요.

기자가 헨리에 주목하는 덴, 그의 재미있는 언론관도 한 몫 거듭니다. 그는 ‘월든’에서 언론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데, 거짓`헛소문 또는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지고 잊히는 뉴스를 저주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는 그 무언가를 알고 실현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헨리는 자신의 언론관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신문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기사를 읽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강도를 만났다거나, 피살됐다거나, 집이 불탔다거나, 배가 난파했다거나, 기차가 폭발했다거나... 두 번 읽을 필요가 없다. 12개월 전, 아니 12년 전이나 바뀐 게 없다. 결코 낡지 않는 걸 아는 게 중요한데, 한심하다. 그러니 철학자에게 신문뉴스는 가십거리다. 이런 가십거리에 흥미를 느끼는 인간들이 결코 적잖다.”

헨리는 실천하는 철학자였습니다. 그러니까, 불변의 진리와 인간 삶의 가치, 그리고 정의와 평등, 그리고 자유에 입각한 인류 보편의 행복을 찾기 위해 아무도 가지 않는 숲에 들어가 살았고, 누구도 상상 못한 ‘시민불복종’을 실현하는 등 진보하는 삶을 영위한 것입니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2년여간 숲속에 손수 집을 짓고 혼자 산 월든 호수와 숲. 그의 서거 15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한 고전문고집 표지사진.    
▲ 160여년 전 월든 호수 주변에 2년여간 살았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집과 그의 동상.

 
“그럼 난 한심한 저질 3류 언론인”
 
시시각각 사건사고를 전하는 저 같은 기자들을 헨리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한심한 인간들인 셈이죠. 허구한 날 사건사고 전하고, 뭐 하나 꼬투리 잡으며 물어뜯고 달아올랐다가 며칠 안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고 또 다른 희생양을 찾아 사명감을 불태우는 쳇바퀴 속 다람쥐들.

제대로 알고, 제대로 전해야 할 것을 구별 못하는 삼류 저능에, 권력 앞에선 기고 빨면서 시체 앞에선 용기를 내는 하이에나 근성, 서구 유력매체가 보도하면 다 사실인양 베껴쓰는 필경습성, 그리고 돈벌이에 도움 된다면 거두절미와 왜곡을 서슴지 않는 추태까지 더하면 정말이지 낯을 들 수가 없습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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