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사랑노래’ 정겨움 그위에 서다

[길-외암마을②] ‘호락논쟁’ 거두 생가터 회한에서 문득 깨어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11/10/11 [01:17]

‘여행자 사랑노래’ 정겨움 그위에 서다

[길-외암마을②] ‘호락논쟁’ 거두 생가터 회한에서 문득 깨어

최방식 기자 | 입력 : 2011/10/11 [01:17]
<지난 글에 이어> 고구마 반 두둑, 참깨 한 두둑 수확을 마치고 밑을 캐느라 제쳐놓았던 고구마 순을 따 마을 앞 논골 한 가운데 있는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농사 체험관입니다. 이곳 마을 유기농 체험여행을 온 이들이 묵어가는 숙소이자 교육장인 것입니다.

사랑채 밖 열린 연회장에 앉아 고구마 순을 다듬고 있는데 귀농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의 부인 능청이 여간 아닙니다. “여보, 나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데.” 지독한 애굡니다. 남편을 제대로 ‘요리’(?)할 줄 아는 아내라고나 할까요? 금방 아이스크림을 대령했고요.

“여보, 나 아이스크림 먹고픈데”

귀농자의 배려는 끝이 없습니다. 농사체험 그만하고 관광할 때라며 차에 타랍니다. 어딘지도 모르고 따라갔죠. 트럭 뒤 짐칸에 앉아서. 어린 시절이 생각나더군요. 차 한번 타보는 게 소원이던 시절 트럭 뒤라도 한 번 올라보려 했던 때가 문득 스쳤습니다.
 
▲ 외암마을 한 가운데 군수댁입니다. 제 눈엔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더군요. 휴일 낮이 여유로운 아이들은 독서 삼매경에 푹 빠졌습니다. 낯선이가 구경하는 줄도 모르고.     © 최방식 기자
▲ 천상의 낙원이죠. 이브도 부러워할 정도의.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일행이 "관리인 안 구하나?"라고 부러워할 정도였으니까요.     © 최방식 기자


마을 어딘가에 우리를 내려주고 그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외암마을 한 가운데 떨어뜨려 놓은 것이죠. 때문에 일행은 여느 관광객들과 달리 외암마을 맨 위부터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윗집을 지나 기와 고택을 몇 개 거치면서 보통의 마을이 아님을 직감합니다.

고샅을 뒤지는 내내 외암(巍巖) 이간(李柬)은 궁금증이었습니다. 한명이 스마트폰 검색을 하더니 서인이자 노론의 영수였던 우암 송시열의 제자랍니다. 우암의 ‘예송논쟁’ 쯤은 알고 있지만 제자벌인 외암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던 터라. 학문의 얇음을 누굴 탓하겠습니까?

뒤늦게 공부를 했습니다. 외암은 노론파 ‘강문8학사’의 한 사람. 당파 안에서 사람과 사물의 성(性)이 같은가 다른가를 놓고 벌였던 인물성동이논쟁(人物性同異論爭)에서 ‘인물성상동론(人物性相同論)’을 주장한 학자죠.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의 오상(五常)을 금수(禽獸)도 가진다고 했다나요.

▲ '국태민안'. 성균관 교수댁 4대손에겐 허허로운 집이랍니다. 지원도 시원찮고, 노부부가 관리하기엔 가옥규모가 너무 크다면서요. 놀러와도 되냐고 물으니 문간방 2개가 비어있는 한 언제든 환영한답니다.     © 최방식 기자

▲ 마당 한 가운데 놓인 섬돌입니다. 문간방에서 사랑채로 그리고 안채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먼지와 흙탕물 피하는 고급 생태도로죠.     © 최방식 기자

그와 생각이 같은 학자들이 주로 낙하(洛下, 서울)에 거주했기 때문에 낙론(洛論)파벌을 형성했다는 군요. 상대편은 인물성상이론(人物性相異論)을 주장했고 주로 호서지방(지금의 충청지방)에 거주했던 학자들이죠. 논쟁이 낙하·호서 학자간 벌어져 ‘호락논쟁’(湖洛論爭)이라 불리기도 한답니다.

양반골에 왔음을 새삼 느낄 때쯤 마을 한 가운데에 도달했습니다. 정원, 마당, 가옥, 담장, 세간, 텃밭, 그리고 실개천까지. 모든 것들이 참으로 독특하고 아름답습니다. 일행 중 한명은 마을을 돌아보는 내내 “내가 이런데 살아야 하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외암 누구야? 얇은 학문하고는...

4대째 ‘교수댁’ 전통가옥을 지키는 종손을 보고서는 세월의 덧없음을 간파했죠. 일행은 문 안쪽을 굽어다보려다 주춤했습니다. 호기심은 용기를 발동하죠. 좀 들여다봐도 되겠냐고 물으니 “여, 사람 사는 덴데 뭐 볼 게 있느냐...”며 망설이나 싶더니 볼 테면 보랍니다.

▲ 코스모스 아련한 동구밖 길에서면 그리움이 묻어납니다. 한눈에 기가 빵빵한 터임을 알 수 있죠. 대가 종택에 살아본 적이 없는 저같은 이에겐 늘 부러운 곳이죠. 가을, 꽃밭에 먼저 신명이 번졌습니다.    © 최방식 기자
▲ 외암마을 들머리에서 맛과 향이 모였습니다. 장터 깊숙한 곳 소시장 나들목 어딘가에 앉아 하루 종일 떡을 팔던 주름진 노인이 생각납니다.     © 최방식 기자


성균관 학사의 집이라서 그런지 다른 고택과는 또 다릅니다. 넓은 마당이 휭뎅그렁해 물으니 예전엔 탑 등으로 꽉 차 있었는데 도둑맞았답니다. 자식들은 모두 도회지로 나갔는지 노부부만 고택을 지키고 있고요. 지원이 여의찮았을까요? 문간방은 여행자에게 대여 한다네요.

의구한 고택, 가산을 지키는 것도 버거운 후손. 영화 ‘라 스트라다’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듯 합니다. 돈벌이의 수단으로 소모품으로 데리고 다니며 천덕꾸러기로 대했던 젤소미나. 그가 사라져버린 뒤에야 허허로운 마음을 달랠 길 없는 참파노. 고통과 생채기조차 그리워지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회한뿐.

저녁엔 낮에 돌아본 동네 청년(사실은 중년)들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귀농자가 초청받았고 우리는 그를 따라간 불청객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10여 가족이 모두 모여 저녁잔치를 하는데 정겹습니다. 

 
▲정처없이 떠돌지만 시원 어딘가로 다시 돌아오는 우리 내 인생굴레를 물레방아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듯 싶습니다.  © 최방식 기자
▲실개천이 하늘을 담았습니다. 어여쁜 가을 하늘 흉내를 내고 있군요. 깊고 맑음이 부러웠나 봅니다.      © 최방식 기자


‘돌구이’의 고수라는 분. 며칠 전 잔치 때 돼지 한 마리를 잡았다는 데 남은 고기라며 구워줬습니다. 그리 맛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석양, 산중턱 마을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쯤 시작된 가을 저녁 잔치는 별 가득한 밤까지 이어졌지요. 구수한 잡담·수다와 함께...
 
지친 나그네는 기를 가득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반짝이는 별 한 번 보고 축축이 젖은 신발 끈을 고쳐 매며 다시 여정에 오릅니다. 차량불빛과 별빛이 한 가득 쏟아지는 보도 위로 조용히 ‘여행자를 위한 사랑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당신의 상냥함이 날 녹였고...”

필자를 아는 분은 전화 걸을 때면 들을 수 있는 노래죠. 컬러링으로 설정해놨으니까요. 원제는 ‘이방인을 위한 사랑노래'(Love Song to a Stranger)인데 전 여행자로 번역했습니다. 미국 68운동의 기수인 존 바에즈가 불렀고요.
 
 
▲귀농자 가족이 여행자를 반겼습니다. '돌구이' 달인이 구수한 삼겹살을 구워놓고 소주 한잔 따르며 권합니다. 환하게 웃으면서요. 천국이 어디 따로 있겠나이까? 친절과 즐거움에 그저 취하지요.  © 최방식 기자
▲여정의 피곤은 안식처를 찾습니다. 지친 몸둥이 하나 눕힐 곳이면 충분합니다. 걸음을  멈추면 까마득한 어딘가로 빠져듭니다. 향긋함이 배나올 쯤이면 다시 힘차게 철로위를 달리는 것이지요.   © 최방식 기자


“내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던 여행자와 밤을 함께 보낸 게 언제였던가?... /당신은 벌거벗은 채 호텔 꽃다발에서 빼온 장미를 들고 거울 앞에 서 있었지/ 내 곁에 다시 누웠고, 난 베개 위에 놓인 그 장미를 바라보았지/ 언제 날이 밝을 지, 내가 깨어 일어났을 때 당신이 거기 그대로 있을지를 골똘하게 생각하다 석양녘 잠이 들었지.../ 당신의 상냥함이 날 녹였고 당신을 받아들이게 됐을 때 난 당신에게 고마워해야겠다고 생각했지...” <끝>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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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2011/10/25 [11:09] 수정 | 삭제
  • 그리움이 사무칩니다. 고향, 품, 시원... 여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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