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간 장미, 아침이 상쾌합니다”

광화문단상 “KBS스페셜 ‘꽃의 비밀’과 공영방송 수신료”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09/04 [11:10]

“빠알간 장미, 아침이 상쾌합니다”

광화문단상 “KBS스페셜 ‘꽃의 비밀’과 공영방송 수신료”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09/04 [11:10]
여행길에 우연히 만난 들꽃 한 송이는 삶을 여유롭게 합니다. 출근길 마주하는 어느 관공서 담장 아래 빠알갛게 피어난 장미는 아침을 상쾌하게 하죠. 이웃 아파트 베란다에 피어난 노오란 국화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요. 고단한 일상을 마치고 들른 어느 와인바 테이블 위에서 마주하는 이름 모를 분홍빛 가냘픈 꽃은 흥을 돋웁니다.

꽃을 보면 마음이 밝아집니다. 지친 일상도, 도시인들의 회색굴레도, 캄캄한 삶의 무게도 잠시 잊죠. 단순히 잊는 것 그 이상입니다. 원기를 불어넣어 주니까요. 의욕을 북돋운다고 해야 옳겠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다는 거죠. 색깔이 고와서 그럴까요? 아님 향이 황홀해서 그럴까요?

일요일 밤 재미있는 방송 프로그램을 하나 봤습니다. ‘꽃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KBS스페셜입니다. 공영방송에 잘 어울리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근 공영방송을 지키려면 수신료를 올려야 한다는 무슨 광고를 보고 ‘자가당착’을 떠올렸는데, 이런 정도 프로그램이라면 생각을 달리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울진 왕피천 끝자락 한 공원에 피어있는 장미.     © 최방식

 
▲ 황금빛 수선화.     © 최방식


꽃과 진실, 그리고 웃음

내용은 이랬습니다.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꽃을 보여주고 얼굴표정이 어찌 바뀌는 지를 실험합니다. 천진난만한 아이, 과일, 괴물 등을 보여줄 때와 비교하면서요. 한데, 유일하게 꽃을 볼 때만 모든 사람이 천진난만하게 웃는답니다. 웃는 아이나 과일의 경우도 그럴 것 같은 데 다르다는 군요.

미국의 한 대학 심리학교실에서 실험한 자료도 보여주더군요. 꽃에는 모든 사람들이 가식 없는 밝은 표정을 보인다구요. 이 방송 프로그램은 그 까닭을 찾아 나선 탐사프로그램이었습니다. 꽃과 관련해 참 재미있는 많은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미 알면서도 잊거나 느끼지 못하던 게 꽤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꽃을 좋아한다는 것이 그 중 하나죠. 좋아하는 사람에게 꽃을 주면 기뻐한다는 사실도요. 사랑하는 사람을 유혹하려면 장미꽃을 주라는 것도 다 아는 바죠. 아, 꽃이 그리고 그 향이 내 마음과 몸을 향기롭게 한다는 사실도 있습니다.

꽃의 아름다움은 균형미에서 온답니다. 꽃은 생식기잖아요. 종족 번식의 본능이 내재된 곳입니다. 중매쟁이를 부르려고 그토록 아름다운 자태를 꾸민답니다. 꽃잎은 벌·나비 같은 중매쟁이들이 무사히 착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활주로랍니다. 그리곤 꽃술로 유인하는 거지요.

그런데 꽃잎이 1, 2, 3, 5, 8, 13...로 나간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아시는 분이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전 과학칼럼을 쓰는 아는 분이 있어 들어본 적이 있는데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피보나치수열’이라고 한다는군요. 앞에 두 수를 더한 값(1과 2는 제외)으로 커지는 거죠. 모든 꽃잎에서 이 과학(사실은 예술)이 지켜진답니다.
 

▲ 자주방망이인가요? 이름을 잘 모르는 꽃.     © 최방식

 
▲ 부레옥.     © 최방식



꽃잎은 중매쟁이 활주로

믿기십니까? 솔방울과 해바라기 씨앗, 앵무조개의 배열(무늬)이 이 피보나치수열을 따라 나선형으로 이뤄졌는데 정확하다는 군요. 그뿐인가요. 뒤의 수로 앞의 수를 나누면(1, 2만 빼고) 정확히 1.618...이 나오는 데, 이게 바로 아름다음을 표현할 때 절대기준으로 활용되는 황금비율이랍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은 이 황금비율이 가장 정확하게 지켜지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사진을 찍거나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게 이 황금비율인 거 아시죠? 생활 속 곳곳에 있습니다. 책, 액자, 창문, 모니터, 교과서가 그렇습니다. 심지어 신용카드, 담배, 명함도 황금비로 구성됐습니다.

꽃의 균형미를 얘기하다 너무 많이 갔습니다. 꽃과 향은 질병치료에도 효용성이 크더군요. 우리도 알지요. ‘아로마치료’라고. 전 아로마요법이 스트레스나 피로를 풀고 복잡한 머리를 식히는 정도로 여겼습니다. 천만에요. 바이러스 치료에도 탁월하답니다. 내성이 생기는 걸 예방하는 훌륭한 항생제가 된다는 겁니다.

선진국에는 일찍부터 교정(교도소 죄수 교육)분야에서 원예치료가 다양하게 활용된답니다. 미국의 경우 교도소에서 보통의 교정교육을 받은 죄수에 비해 재범률이 3배 가까이 줄어든다고 하네요. 보통 재범률이 37%인데, 원예치료를 받은 경우 13%로 떨어진다니까요.

▲ 봉숭화.     © 최방식


한국에도 한 교도소가 시행중이랍니다. 이를테면 이렇습니다. 여러 꽃을 주고 가장 그리운 사람에게 줄 화환을 만드는 거랍니다. 작품이 끝나면 제목을 정하고 왜 그랬는지를 둘러앉아 설명하고요. 어머니, 아들, 아내, 친구에게 줄 ‘그리움, 사랑’ 등의 꽃을 만들고 후회하는 죄수들을 보면서 저도 눈물지었답니다.

“꽃을 더 사랑해야겠습니다”

알면서도 모르는 꽃의 비밀도 확인했습니다. 뭐냐고요? 꽃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꽃을 보면 누구나 마음이 고와진다는 거요. 혹시 마주하기 불편한 사람이 있습니까? 고백을 못해 애태우는 상대가 있습니까? 빨간 장미꽃 한 다발을 선사해 보세요. 사랑을 고백할 땐 장미꽃이 가장 효과적이란 사실도 알고 있겠죠?

그러고 보니 전 꽃을 무시하고 산 셈이군요. 꽃을 사본 게 언젠지, 몇 번인지도 가물가물 합니다. 꽃은 사랑을 고백할 때만 필요한 게 아닌데... 친구에게, 이웃에게, 식구들에게, 동료에게... 혹은 낯선 이에게도 즐거움과 따뜻함을 준다는데. 이젠 꽃을 많이 사랑해야겠습니다. 나 홀로 보고 마는 게 아니라 이웃에게도 보여줘야겠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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