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은미의 '바리', 넘고 섞이고 무너져"

포토에세이 황홀한 춤과 집들이, 13일 공연 앞두고 살가운 파티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09/06 [16:49]

"안은미의 '바리', 넘고 섞이고 무너져"

포토에세이 황홀한 춤과 집들이, 13일 공연 앞두고 살가운 파티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09/06 [16:49]
지난 31일 무용가 안은미씨 연습실 집들이에 다녀왔습니다. 파티라고 해 별 고민 없이 참석했는데 가보니 집들이더군요. 후원자, 지인 30여명과 단원 20여명이 모여 한 여름 밤을 황홀하게 보냈습니다. 안씨의 거침없는 춤, 단원들의 현란한 몸짓과 노래 소리를 만끽하면서요. 우리는 뭐 했냐고요? 주최 측이 준비한 포도주·맥주, 맛 좋은 음식을 즐기며 가슴을 태우고 왔죠.

일행이 연습실을 찾은 건 저녁 8시에 좀 못 미치는 시각. 마당으로 들어서니 안은미 컴퍼니 견습생 서너명이 인사를 하며 우릴 안내합니다. 1주일여 됐을 까요. 인사동에서 만난 안씨가 지하에 1백여평 되는 넓은 방이 있어 얻었다고 한 게 생각났습니다. 지하로 들어서니 벌써부터 시끌벅적합니다. 이어지는 비명소리.

안씨가 덮칠 듯이 달려오며 내는 반가움의 표시입니다. 일행은 효림 스님, 유종순 대표, 그리고 저였습니다. “스님, 종순씨, 기자님...” 하며 살갑게 맞이합니다. 우리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고요. 연습실로 들어가는 데 1백평 남짓 마룻방입니다. 손님맞이 무지갯빛 풍선이 여기저기 떠다니고 직사각형 주변으로 빙 둘러 앉아 떠들썩하니 담소를 즐기고 있습니다.
 
▲ 춤꾼 안은미씨 연습실.     © 최방식 기자

 
▲ 집들이 잔치에서 즐거워 하는 안은미씨.     © 최방식 기자

 
▲ 안은미컴퍼니 집들이에 초청받아 온 손님들.     ©최방식 기자

 
“꺅... 살가운 비명소리에”
 
한 군데서는 사이키 조명이 현란합니다. 또 한 쪽엔 화려한 샹들리에가 빛을 퍼뜨리고 있군요. 남녀 단원들은 저마다 바쁩니다. 무용을 연습하는 이, 손님을 맞는 이, 음식과 술상을 준비하는 이. 모두가 환할 뿐입니다. 우리도 한쪽 귀퉁이에 자리잡고 앉았습니다. 포도주를 한 병 들고서요.

한 쪽 벽이 통거울입니다. 연습실이 두 배로 넓어 보인 까닭이 있었습니다. 보여주기 위해 그런 건 아닐 테고 자신의 동작을 보면서 연습하려고 그리 한 거겠지요. 하여튼 또 다른 나와 우리가 벽 저쪽에서 나와 우릴 쳐다보는 가운데 달콤한 포도주를 한잔씩 음미했습니다.

효림 스님이 흥이 나셨는지 풍선을 들고 이리저리 다니며 금방이라도 춤을 덩실덩실 출 태세입니다. 안씨의 오랜 친구인 종순 형도 환한 얼굴로 이리저리 오갑니다. 전 포도주와 안주를 챙겨들고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 앉았고요. 이토록 아름다운(유명한) 예술가의 안방에 왔는데 흥분되지 않을 턱이 있겠습니까?

안씨의 괴성은 몇 분 간격으로 터집니다. 새 손님이 올 때 마다요. 정열적인 여인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를 매료시켰겠죠? 아는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요. 그 넓은 지하실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입니다. 아무도 그녀에게 눈짓을 하거나 찡그리지 않습니다. 그녀만의 세계이니까요.
 
빡빡 깎은 머리에 발목까지 오는 흰 무늬의 분홍색 긴 원피스를 입었습니다. 언뜻 보기엔 구두가 안 보이는 데 소리로 알 수 있습니다. 투명한 유리 구두를 신었습니다. 장난스레 “아무도 신발을 안 신었는데 왜 당신만 구두냐”고 물으니 보지도 않고 지나치며 이 한마딥니다. “내 맘이지.”

▲ '바리공주' 역을 맡은 이(왼쪽)의 노래와 춤자랑.     © 최방식 기자

 
▲ 바리공주를 짊어지고 땀을 뻘뻘 흘리는 한 춤꾼.     © 최방식 기자

 
▲ <바리>-이승편에 출연하는 무용진.     © 최방식 기자

 
부연 설명이 필요했는지 좀 가다 돌아와서는 덧붙입니다. "여기선 내가 대장아냐? 글고 난 좀 튀어 보여야지. 키도 크게 보이고." 그렇습니다. 그뿐인가요. 혼자만 담배를 피우고 다닙니다. 종순형은 30분마다 한번씩 그 복잡한 델 뚫고 밖에 나갔다 옵니다. 한번 정도는 화장실이겠지만 나머진 담배였겠죠. “형도 여기서 피워” 그랬더니 종순형 답이 재밌습니다. “단원들한테 들은 건데, 안은미만 여기서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데.”
 
“내 맘이지, 내가 대장인데...”
 
얼추 다 모였나 봅니다. 안은미가 연습실 한 가운데로 나옵니다. 그리곤 인사치레 몇 마디를 하곤 “야 시작해” 그럽니다. 13일부터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사흘간 공연하는 ‘<바리>-이승편’에 주인공 ‘바리공주’ 역의 남자 단원에게 한 소립니다. 쑥스러운 듯 뒤통수를 만지작거리며 키가 작은 한 남자가 마루 가운데로 나섭니다.

곡은 기억이 안 납니다. 힙합 스타일의 청바지를 끌며 가운데로 나올 땐 시원찮아 보였는데, 넓은 지하실이 흐느낄 정도의 우리가락을 구슬프게 뽑아냅니다. 숨소리마저 멎을 듯 가락에 빠져들었나 싶은데 박스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앙콜, 한 번 더.” 연거푸 서너곡을 이어갑니다. 그리곤 조용해집니다.

소리꾼으로 보이는 여성 단원 한명이 뒤를 따릅니다. 그녀 또한 구슬픈 우리 가락입니다. 모두는 넋을 놓고 어깨를 들썩들썩이고요. 어느 틈에 끝났는지 안은미씨가 홀 가운데 다시 섰습니다. 이번에는 미친 듯이 몸을 흔들면서요. 키높이 구두를 신고서 요란하게 몸을 흔들며 홀 가운데로 나가는데 마치 방이 한 가득 꽉 찬 느낌입니다.

무슨 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 춤을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동작은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문외한 눈에는 막춤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몸짓의 의미를 어찌 하나 하나 다 알 수 있겠습니까. 그냥 느끼기만 할 뿐이죠. 슬픔, 격정, 노여움 뭐 이런 정도로요.

▲ '바리-이승편'에 출연하는 한 소리꾼의 노래자랑.     © 최방식 기자

 
▲ 무용단원들의 모습.     © 최방식 기자

 
▲ 현란안 몸짓을 뽐내는 안은미.     © 최방식 기자


안씨를 보고 있노라면 꼭 서부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총잡이 영화에 안 빠지는 씬이죠. 사람들로 꽉 찬 카페. 악당 대장이 부하를 거느리고 들어오죠. 부하들은 여기저기에 서거나 앉고 악당은 테이블마다 다니며 소리를 지르거나 농을 하고 또는 행패를 부리고 다니는 꼭 그 모습니다. 그녀는 악당이 아니고 주인공이고요. 행패가 아니고 제멋이겠죠.
 
잠담·환호, 시간이 멈춘듯...
 
좀 더 있으니 바리를 비롯해 춤꾼들이 나섭니다. 황홀한 춤을 춰댑니다. 넘고 섞이고 무너집니다. 어디론가 몰려가고 그리곤 이내 뿔뿔이 흩어집니다. 그 사이 안씨가 끼어들고요. 그들의 운명은 안씨의 손아귀에 잡혔나요? 모르겠습니다. 누가 무슨 역인지도. 하여튼 춤을 추는 이도, 지켜보는 이도 땀에 흠뻑 젖을 즈음 춤이 멈췄습니다. 요란한 박수소리뿐입니다.

누군가 사온 샴페인 터뜨리기, 그리고 또 이어진 소리꾼과 춤꾼들의 실제 같은 연습... 연습실은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춤꾼, 노래꾼들은 땀을 흘립니다. 구경꾼들을 가슴을 식히느라 뭔가를 마셔대고요. 잡담, 환호, 구두소리, 음악소리에 뒤섞인 지하실은 시간의 흐름을 까먹은 듯 합니다.

스님이 밖으로 나서고, 조금 뒤 휴대전화가 울어댑니다. 그만 빠지자는 겁니다. 사실 더 앉아있다가는 가슴이 타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행은 하나 둘 슬그머니 일어섰습니다. 언제 봤는지 안씨가 계단까지 따라오며 공연 때 보자며 볼을 내밉니다. ‘왜 바리공주 역을 남자가 맡았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고 포옹으로 안녕을 고하고 나왔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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