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빌세대·취집' vs. '기펜족·지르가슴'

광화문단상 사회양극화와 새직장문화 풍자 신조어 아픔·씁쓸①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10/31 [01:32]

'빌빌세대·취집' vs. '기펜족·지르가슴'

광화문단상 사회양극화와 새직장문화 풍자 신조어 아픔·씁쓸①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10/31 [01:32]
▲ 국립국어원이 펴낸 신조어 수록집.  
국립국어원이 ‘사전에 없는 말 신조어’라는 책을 내놨다고 언론들이 호들갑을 떨어 뒤늦게 알아보니 내용이 참 재밌습니다. 이 기관은 1994년부터 신조어를 수집해왔고 2002년부터 매년 보고서를 냈는데 이를 한데 묶었다고 합니다. 모두 3천500개를 엮었다고 하네요.

말을 일컬어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 한다죠. 신조어를 수집한 시기는 인터넷문화가 급속히 확산·발전한 때입니다. 오랜 독재체제를 넘어 절차민주주의가 한창 도입된 시기고요. 그래서였을요? 인터넷(통신)·방송, 정치·사회 관련 신조어가 넘쳐납니다. 분야별로 그 내용을 몇 차례 나누어 들춰보겠습니다. /필자 주

국립국어원 신조어 3500개 발표

사회양극화에 따른 청년실업과 약자의 아픔을 슬퍼하는 새 말들은 너무도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서민들의 어려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자인 것을 뽐내는 추태를 조롱하는 신조어도 꽤 여럿입니다. 질책과 부러움이 함께 담겨있다고나 할까요?

오륙도(56세까지 회사에 붙어있으면 도둑놈), 사오정(45세가 정년), 삼팔선(38세면 선선히 명퇴한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면창족(퇴직압력으로 창만 바라보는 임원급 직장인)은 이제 고전에 속합니다. 이구백(20대 90%가 백수), 십장생(십대들도 장차 백수를 생각해야), 삼일점(31세면 취업길이 막혀 절망), 빌빌세대(취직 못한 신세 자조), 취집(취직 대신 시집), 대학5학년(취업 못해 졸업 재수)이 씁쓸하게 합니다.

공시족(장기간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사람), 열린취업 5종세트(인턴, 아르바이트, 봉사활동, 공모전, 자격증은 취업에 필수), 밥터디(정기적으로 만나 밥을 먹으며 취업정보를 교환하는 모임), 통장고시(통장이 부업으로 인기 끌면서 중년주부들 사이에서 생긴 말), 노마드족(전공 과목 외에 토익, 취업 강좌 등을 찾아다니는 사람), ‘환승족’(수도권에서 버스를 갈아탈 때 환승할인이 되는 버스만 골라 타는 사람) 정도 되면 눈물 납니다.
 
▲ 한 케이블채널이 방영 중인 된장녀 관련 드라마 장면.  

‘멀티잡스족’(두 가지 이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 낙바생(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듯 어려운 취업 성공한 사람), 점오배족(명절 때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평소보다 0.5배 높은 보수를 받고 일하는 사람), 외벌이(맞벌이의 반대 개념, 부부 중 한쪽만 벌이를 하는)은 차라리 성공한 편에 속합니다.

‘열린취업5종세트’·‘공시족’·‘통장고시’?

돈 자랑 하는 재미로 세상을 사는 이들의 추태를 조롱하는 신조어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집니다. 기펜족(값이 비싸기 때문에 물건을 사는 사람, 경제법칙의 예외를 설명한 학자 기펜의 이름에서 따온 단어), 된장남·녀(사치를 즐기고 허영이 많은 남녀), 지르가슴(사고 싶은 것을 앞뒤 가리지 않고 사버렸을 때 느끼는 꽤감)이 그렇습니다.

왜 된장이 허영심으로 가득한 이들을 표현하는 데 쓰였는지 궁금합니다. 구수하고 영양만점의 한국 최고의 음식인데... 언제부턴가 촌스럽다거나 가난한 걸 멸시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사실은 된장이면서 명품으로 치장했다는 의미일테니 좀 우스꽝스런 표현이지요? 고추장남(녀, 멋을 부릴 줄 모르고 사소한 것도 아끼는 남녀), 쌈장남(녀,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남녀)도 어원으로만 따지면 생뚱하기는 마찬가지죠?

바뀌고 있는 새 직장문화를 대변하는 신조어도 흥미롭습니다. 주5일제에 따라 변화하는 문화와 새로운 말, 그리고 전통을 거스르는 근무 풍토, 정리해고를 풍자한 단어들이 이채롭습니다. 새롭게 생겨나고 있는 직업군도 재미있고요.

주5일제로 신주말(주5일 근무제가 실시됨에 따라 새롭게 인식되는 주말.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를 일컬음), 놀토갈토(노는 토요일, 가는 토요일), 아웃트로족(주5일제 실시와 웰빙 인식의 확산으로 퇴근 뒤 여가시간을 활용해 레포츠, 댄스, 헬스 등의 취미 활동을 즐기는 도시인)이 생겼습니다.

‘아웃트로족’·‘배드빙’, 신조어도 양극화

▲ 된장녀 패러디 포스터. 
가정과 직장밖에 모르던 일꾼들에게 좀 낯선 신조어도 구미를 당깁니다. 웰빙을 추구하는 문화와 그렇지 못한 세태를 풍자한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웰빙과 반대 개념의 배드빙(Badbeing,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아 심신의 안녕과 건강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경우), 일빙(illbeing, 심신을 지치게 하는 것을 일컫는 단어)도 관심을 끕니다.

보보스족(부르주아의 물질적 실리와 보헤미안의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누리는 사람), 프리터족(프리 아르바이터의 줄임말로, 필요한 돈이 모일 때까지만 일하고 쉽게 일자리를 떠나는 사람), 네스팅족(정시에 퇴근하여 곧장 삶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고속승진 기피족)도 웰빙 문화를 대표하는 신조어로 보입니다.

이밖에도 직역감정(특정한 직업의 사람들끼리만 공유하는 생각이나 느낌), 텐인텐(10년안에 10억원을 모으는 일), 유턴족(사회생활을 하다가 학교로 되돌아가는 사람)이 눈길을 끕니다.

또 새롭게 등장한 직업들도 재미있습니다. 제사도우미(제사지내는 걸 싫어하거나 그 법도를 몰라 제사를 맞춤으로 서비스하는 직업), 독서치료사(책읽기를 통해 병을 치료하는 직업), 체형관리사(몸매관리를 위해 개인의 식품영양과 피부미용 등을 서비스하는 직업), 도그시터(개 돌봐주는 사람, 베이비시터와 유사), 담파라치(담배꽁초를 길에 버리는 장면을 몰래 촬영해 신고하는 자), 겜파라치(성인 게임방의 불법 행위를 신고하는 이) 등이죠. <계속>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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