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빨치산’의 곱디고운 ‘사랑의 편지’

[한 권의 책] 정미경의 신간서적 ‘비밀의 숲을 열며’를 읽고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12/05 [16:31]

‘녹색빨치산’의 곱디고운 ‘사랑의 편지’

[한 권의 책] 정미경의 신간서적 ‘비밀의 숲을 열며’를 읽고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12/05 [16:31]
▲ 정미경의 신간 서적 '비밀의 숲을 열며'.     © 인터넷저널
누구나 청년기에 붙들었던 화두가 하나씩 있을 것이다. 바로 ‘나’다. ‘누구인가’, ‘왜·어떻게 살 것인가’를 놓고 밤을 새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터. 여느 ‘나’가 공부, 취업, 출세를 고민했다면, 여기 좀 다른 ‘나’를 찾은 이가 있다. 친구, 애인, 숲, 강, 하늘에서 ‘너’를 찾는다. ‘나’와 합치시키려는 것. 그렇게 ‘하나’를 만들어내고 ‘우리’를 알아내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람, 자연, 우주만물의 공존공생이 작가로서 자신의 꿈이자 삶의 임무라고 말한다.
 
숲해설가이자 여성 생태활동가인 정미경씨의 생태수필 ‘비밀의 숲을 열며’(인터넷저널 발간)가 신간으로 나왔다. 나무, 숲, 산, 늪, 호수, 하천, 강, 갯벌, 바다, 구름, 하늘, 그리고 인간사를 생태수필로 엮은 이 책은 작가의 철학을 고스란히 담은 ‘생태 홀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를 ‘일치’, ‘합일’ 등의 쉬운 단어가 있는데도 조금은 어려운 ‘통섭’(統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물씬한 흙내음이 전하는 ‘생명의 전설’
 
그의 글은 거침이 없다. 자신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숲속에서 ‘물씬한 흙내음’을 맡으며 상큼한 함박 생명의 전설과 비밀을 오롯이 전한다. 때로는 적멸의 구름 위에서 노마드와 운수납자가 되어 ‘욕망의 바다’를 그려놓았다. 숲길을 걸으며, 자전거를 타고 가며 일상을 넘고 경계를 허무는 그의 통렬한 자각과 ‘너’를 향한 연서(戀書)는 때론 반성으로 때론 뜨거움으로 다가 올 것이다.
 
그의 분석 틀은 이렇다. 집밖 쌓인 나뭇잎을 보며 죽음이 문밖에 서성인다고 봤다. 죽음을 외면하고 저항하는 주류문화는 그래서 죽음을 절망으로 보지만 그는 희망을 봤다고 했다. 세포, 피, 곡물, 생선, 그리고 나뭇잎 등 어느 것 하나 주검이 아닌 건 없지만 다시 삶으로 부활하니 ‘생사일여’(生死一如)란다. 애초부터 삶과 죽음은 하나이고 서로 돌고 돈다는 것.
 
그러니 초라하고 웅크린 겨울 숲도 그에겐 청정도량이다. 한 벌 가사조차 벗어버리고 바리때조차 내버린 채 결가부좌하고 푸르름에 대한 열망을 키워가는 부처인 것이다. “독야청청한 겨울숲의 묵언은 자기 안의 동자승을 키우는 지극한 모성입니다. 그러므로 겨울은 생명의 계절이에요. 잉태하는 생명의 계절 말입니다.”
 
그의 생태메시지는 ‘에코 페미니즘’에 이르러 더욱 열정적이다. 나무 한 그루에서 모계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봤다. 학대하고 착취하며 지배한 적이 없는 이상사회. 저마도 개성을 마음껏 즐기며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숲 생태계에서 그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없는 모계사회의 창조적 질서를 깨달았고 이를 전해주고 있다면 지나친 말일까?
 
‘비밀의 숲’이 전하는 ‘새 희망 프로젝트’
 
황대권(생태공동체운동센터 대표)씨는 추천사에서 그를 ‘녹색빨치산’이라고 불렀다. 그가 가끔 글에서 제국주의를 운운해서 꼭 그리 부른 건 아니리라 생각한다. 숲에서 안락함을 느끼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고, 사회의 착취지배 구도와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며, 죽음 너머 삶의 희망을 일으켜 세우고 있으니 바로 ‘녹색 전사’라고 하지 않았을까.
 
문득 추위가 엄습하는 겨울이다. 길가 은행나무 잎이 아직도 어지러운데 붕어빵 장수는 손을 호호 비비며 겨울을 녹인다. 눈앞 초록은 사라졌지만 마음속 푸르름을 키우는 잉태의 계절에 푸르디푸른 이 작은 책 한 권을 권한다. 이 겨울 산이 그리워, 애인이 사무쳐, 삶에 주눅 들어, 죽음이 두려워 가슴 졸이는 이 있거든. 곱디고운 그녀의 비밀의 숲을 둘러보고 새 희망을 꺼내올 수 있으리니. 거기 놀랍고 아름다운 생태활동가의 몸짓과 생각에 풍덩 빠져버릴지도 모르니 조심들 하시라. <인터넷저널 발행,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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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정미경 홈페이지]
http://ecotopia.pe.kr/module.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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