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무용에 푹 빠져버린 토요일 밤

광화문단상 친구 덕에 ‘조선무용 50년’ 공연봐, “꿈을 꾸는 듯”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12/23 [10:46]

북녘 무용에 푹 빠져버린 토요일 밤

광화문단상 친구 덕에 ‘조선무용 50년’ 공연봐, “꿈을 꾸는 듯”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12/23 [10:46]
처음으로 북녘의 춤 공연을 봤습니다. 친구 덕에 큰 행운을 잡았지요. 춤사위가 얼마나 곱고 멋스러웠던지 눈물까지 나더이다. 매력적인 북녘 여인들의 춤사위에 푹 빠져버린 토요일 밤이었습니다.

22일 저녁 6시 서초동에 있는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조선무용 50년 - 북녘의 명무’ 공연이 있어 다녀왔습니다. 사무실 친구가 괜찮은 공연이 있다며 표를 챙겨줘 망설이다가 발걸음을 옮긴 것이었습니다.

양재동 가는 길은 참 멀더이다. 방이동에서 남부순환도로를 타면 20여분이면 가는 거리인데 토요일 오후라선지 길이 꽉 막혀 1시간도 넘게 허비했습니다. 막 공연이 시작되고서야 예악당에 도착했습니다.

▲ 금강산가무단 공연 포스터.     © 최방식 기자


늦게야 자리를 찾아 들어가려니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고개 푹 숙이고 자리를 찾았습니다. 교통사정 때문인지 나처럼 뻔뻔한 이가 몇 더 있어 위안을 삼았습니다.

“망설이다 발걸음을 옮겼는데 횡재”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소속 금강산가극단(단장 리룡수)의 공연이 시작됐습니다. 지난 10월 한 차례 무산된 바 있던 국내 공연입니다. 1955년 설립된 뒤 50여 년간 북녘의 무용을 보여준 전문 무용단이라는 사실은 뒤늦게 알았습니다.
 
재일동포와 일본인, 해외와 북측으로부터 열렬한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는 무용단이라는 것도 나중에 들었습니다. 북녘의 현대무용을 개척한 김락영, 혁명가극 전문가 만수대예술단의 백환영 등 쟁쟁한 이들이 참여했더군요.

북녘의 대표적 안무가, 전설무용의 대표작, 최승희 작품을 재현한 명작 등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조선무용 50년사를 2시간의 무대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배경음악은 피바다가극단, 만수대예술단 등이 연주했다는 군요.

▲ 금강산가무단의 쟁강춤.


자리에 앉으니 금강산 선녀가 내려오는 장면입니다. 첫눈에 반할 만치 아름다운 춤꾼들이 무대 하나 가득 들어섰습니다. 선녀와 나무꾼이 생각나는 무대입니다. 무대 한쪽 모니터에 작품이름이 나오는데 ‘금강선녀’군요.

곱디고운 전통의 무대의상, 날렵한 몸놀림, 무대를 수놓는 손동작, 얼굴 가득한 웃음. 어느 것 하나 멋들어지지 않은 게 없습니다. 이 좋은 작품을 하마터면 안보고 지나쳐 버릴 뻔 했습니다. 그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금강산 선녀가 막 내려온 듯...”
 
춤에 취해가는 데 ‘쟁강춤’이 등장했습니다. 어깨가 들썩들썩 거릴 정돕니다. 신명이라고 그러죠? 무녀의상의 무희들이 손을 흔들 때마다 쟁강쟁강 구슬소리가 경쾌합니다. 풍년을 기원하며 춘 춤인데, 그 구슬소리 때문에 쟁강춤이라 한다네요.

▲ 금강산가무단의 작품 '사과풍년'.  


아, 전설의 무용가 최승희의 작품을 재형상화 한 ‘부채춤’도 넋을 놓고 봤습니다. 절제된 동작과 힘 있는 부채 움직임이 그렇게 매력적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조금은 ‘한’의 정서를 담은 ‘도라지’를 보면서는 찔끔 눈물이 나왔죠.

2시간 공연이라고 해 화장실은 어쩌나, 목이 마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1시간 공연 뒤 쉬는 시간을 15분이나 주더군요. 커피라도 한 잔 할 생각으로 밖에 나오니 아는 얼굴이 두셋 보입니다.

▲ 금강산가무단의 북춤. 최승희의 춤을 재형상화한 작품.  
1부가 북녘의 전통가무였다면 2부는 현대적 의미의 창작 무용이었습니다. ‘꽃등놀이’는 꼭 꿈속 선녀들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재일조선인의 차별을 고발하는 ‘사랑의 치마저고리’는 아픔입니다.

1천 년 전 통일 국가 고려의 여장수인 설죽화 무용은 힘찬 선동이었습니다. 강감찬 장군 아래서 남장을 하고 거란족을 무찌르는데 앞장섰던 전설의 여장부를 춤으로 보여주는 덴 정말 말 한마디가 필요 없더군요.

“정말 말 한마디가 필요없는 세상”

마지막엔 한반도가 그려진 통일기를 들고 나와 하나의 염원을 보여주는 춤이었습니다. 그건 꼭 남측에서 오래전 통일 행사 때마다 무대에 올랐던 통일집체극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조금은 정치적인 색채가 엿보였던 것이었죠.

그러고 보니 이름을 잊었는데 한 남자가 나와 섹소폰(플룻?)과 ‘장새납’이라는 독특한 개량 목관악기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멋들어지게 부른 것도 잊혀지지 않는 군요. 북녘의 한 경연대회에서 상을 받은 공훈배우라고 그럽니다.

무대 왼쪽 모니터에 작품이름과 무용가 이름이 나올 때마다 ‘공훈배우’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더군요. 당 중앙으로부터 예술성을 인정받아 표창을 받은 유명한 예술인을 말하는 모양입니다.
 
▲ 통일 염원을 춤으로.  

실제 이번 공연에 참여한 이들이 백환영(인민예술가, 만수대예술단 안무가), 김락영(인민배우, 평양무용대학 교원), 홍정화(인민배우, 조선무용가동맹 중앙위원회 무용부장), 김해춘(인민예술가, 왕재산경음악단), 백은수(공훈예술가, 만수대예술단 안무가), 강수내(공훈배우, 금강산가극단 안무가), 송영숙(공훈배우, 금강산가극단 수석 무용수) 등이니 작품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겠죠?

2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는 기분이 전혀 달랐습니다. 돌아오는 길엔 길조차 뻥 뚫려 더 기분이 좋았답니다. 마치 꿈속에서 구름타고 나는 듯이요. 춤이 그렇게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걸 새삼스럽게 느낀 주말 어느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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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 2007/12/24 [15:10] 수정 | 삭제
  • 잘은 모르지만. 또 볼 수 있겠죠?
    MB가 공연까지야 막겠어요? 아, 그리고 금강산가극단은 공식적으로는 조총련 소속이랍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MB니...설마...
  • MB 2007/12/24 [09:07] 수정 | 삭제
  • 그동안 누가 뭐라고 해도
    민족통일은 괄목 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는데
    내년에도 남북이 화해분위기로 갈 수있으려나 심히 걱정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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