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귀한 것, 시간 그리고 나침판

[광화문단상] 가치를 오해하고 방향을 잘못 잡으면 물거품...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8/01/08 [10:19]

돈보다 귀한 것, 시간 그리고 나침판

[광화문단상] 가치를 오해하고 방향을 잘못 잡으면 물거품...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8/01/08 [10:19]
이맘때면 누구나 새해 설계를 한다. 국가, 기업 등 법인은 연말에 마쳤을 테지만 자연인은 세밑에 주로 이 연중행사를 한다. 정초 결심을 잘 이룬 이는 보람찬 한 해를 만들어 가겠지. 작심삼일을 되풀이 하는 이는 그렇지 못할 것이고. 한데, 새해에 꼭 알아둬야 할 게 있다. 바로 돈이나 결과보다 소중한 그 무엇이 있음이다.

정치인이자 과학자로 미국인의 존경을 받는 벤자민 프랭클린은 젊었을 때 서점을 운영한 적이 있다. 어느 날 한 손님이 책을 뒤적이다 얼마냐고 묻자, 1달러라고 했다. 좀 깎아달라고 사정하니, “1달러 15센트”라고 응수했다. “놀리는 거냐”고 하자, “1달러 50센트”라고 했단다. 그는 시간이 돈보다 귀한데 자꾸 허비해 가격을 계속 올렸다고 설명했단다.

‘프랭클린 플래너(다이어리)’라면 알만한 이는 안다. 200년 전 유품이 유명 일기장으로 부활해 세계 2천만명의 사랑을 받고 있다니 정말 놀랍다. 프랭클린 재단과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쓴 코비가 합작해 만들었다나. 권당 가격이 10만원에 육박해 씁쓸하긴 하지만, ‘신념’·‘실천계획’·‘사후평가’ 등을 기록케 하고 성취도를 올려준다니 흥미롭다.
 
▲ 나침반.     ©

 
이상한 서점주인, 벤자민 프랭클린
 
일기나 플래너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목적이 다를 줄 안다. 분초를 쪼개 돈을 벌고 업무성취도를 높여야 하는 이들이나 기업에게는 플래너가 더 중요할 것이다. 매 시간 중요한 일과 시급한 일을 확인해 잊지 않고 수행하면 원하는 바를 쉽게 이룰 수 있을 테니까.

일기의 소중함은 더 강조 안해도 알 것이다. 삶의 궤적과 가치를 기록해야 퇴보하는 삶이나 반동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을 거니까. ‘안네의 일기’가 나치의 천인공노할 유태인학살을 고발했던 것처럼 말이다. ‘난중일기’가 400년이 넘은 지금도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터. 실록이든, 비망록이든, 코멘타리든 이 모든 기록이 전하는 게 바로 역사 아닌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160여년 전 시민불복종 정신과 자급자족하는 생태적 삶을 생생히 알 수 있는 것도, 2천년도 더 된 공자의 말씀을 우리가 공부할 수 있는 것도 다 다이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요즘 청소년들은 ‘사랑다이어리’라는 것도 나눠 갖는단다. 정월  14일 서로에게 선물하고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을 기록한다나. 몇 해 전엔 ‘S다이어리’라는 영화까지 나왔잖은가.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빠져버리고 말았지만 이 것 만은 분명하다.하루 하루 일상과 반성, 교훈거리를 기록한다는 것은 작게는 1년의 계획을 잊지 않고 실행케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크게는 자신의 삶, 그리고 우리의 역사를 바로 보게 할 것이고...

기업들이 정초에 세운 연중계획, 월초 세운 월별계획을 벽이나 칠판에 크게 붙여놓고 하루하루 점검하고 보완하다보면 어렵지 않게 이루는 걸 볼 수 있다. 개인도 1년 내내 새해 결심을 확인하고 실천을 점검한다면 초심이나 그 결심을 유지하고 이뤄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역사이고 진보이니까.
 
‘다이어리’ 있어 역사는 진보하고...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알려주는 우화가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사막을 걷고 있었다. 아들은 날이 저물자 걱정스러웠다. 아버지는 앞을 잘 보고 걸으라고 주의를 줬다. 이튿날에도 아들이 서둘러야 한다고 하자, 아버지는 방향을 바로잡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며칠 악전고투 끝에 부자는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버지가 “하마터면 큰일 날뻔 했다”며 “중요한 건 시간 그 자체가 아니라 방향”이라며 아들에게 선물로 나침반을 내밀었다.

인생이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간은 언제나 매우 중요하다. 시간을 아껴야 많은 것을 이루고 멋진 역사를 기록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방향을 잘 못 잡으면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하고 만다. 문제는 ‘빨리빨리’나 ‘많이많이’만으론 시간이나 에너지를 아낄 수 없다는 점이다. 나침반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는 말이다.

벼 이삭이 펴자 조급한 마음에 쭉 뽑아놨다가 다 말려 죽인 바보가 언론계에도 없지 않다. 언론을 보통 ‘타임산업’이라 부른다. 마감을 못 지키면 ‘꽝’이 되고 마는 속성 때문에 붙은 별칭. 시간은 촉박하고 취재는 더디고, 조급한 맘에 소설을 써 특종을 했다가 들통 나는 사례가 있다.

워싱턴포스트지에 자네트 쿠크라는 여기자가 있었다. 특종 야망을 가진 그녀는 어느 날, ‘지미의 세계’라는 제목의 기사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아홉 살 소년 지미가 상습적으로 마약 주사를 맞는 내용이었고,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충격적인 기사였다. 하지만 곧 거짓으로 드러났고 퓰리처상도 취소되고 말았다.

누구든 시간을 아끼고 목표를 서둘러 이루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가치나 방향을 모르면 시간과 힘을 더 소모하거나 별 거리낌 없이 거짓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 역사가 일러주는 좋은 교훈이 있는데, 4년 전 ‘경주 최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이란 책으로 나와 관심을 끌었던 이야기다.
 
인수위는 최부자 ‘육연’ 명심하시라
 
옛말에 ‘부자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경주 최부자는 10대 300년을 이었다. 한 경영학자가 그 비결을 파헤친 결과, 이른바 ‘육연’(六然)이 있었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재산은 만석 이상 지니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에 땅을 사지 마라’, ‘며느리 들인 후 3년 무명옷 입혀라’,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이 없게 하라’.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지금 정책 짜기가 한창이다. 경제를 살려 일자리를 나눠주고 국민이 잘살게 하겠다는 공약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유권자 역시 이제 잘살기만 하면 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가치를 오해하고 방향을 잘 못 잡으면 물거품이 될 수도 있기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새해 결심을 꼭 성취하길 바라는 독자여러분에게도 '작심삼일수'에 휘말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최부자는 손님 접대에 소홀하지 않았다고 한다. 과객이 들면 포항 구룡포에서 나는 튼실한 과메기로 접대를 하곤 했단다. 여행에 지친 몸을 보하는 데 이보다 좋은 보양식이 없었을 테니까. 아, 정초! 괜한 맘고생에 몸까지 으스스한데 과메기에 소주나 한잔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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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 2008/01/08 [19:56] 수정 | 삭제
  • 최부자 얘기 명빡이가 명심해야 할 이야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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