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아 채현국, 거부에서 신용불량자

[책소개] "나이 먹은 사람들, 점점 더 노욕 덩어리 되어가니..."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5/01/14 [01:28]

풍운아 채현국, 거부에서 신용불량자

[책소개] "나이 먹은 사람들, 점점 더 노욕 덩어리 되어가니..."

서울의소리 | 입력 : 2015/01/14 [01:28]

 
[서평] 김주완 기자가 쓴 <풍운아 채현국>
오마이 뉴스  윤성효 기자(cjnews)
 
채현국(79) 양산 효암학원(효암고·개운중) 이사장. 기자가 그를 처음 만난 건 80년대 후반이었다. 대학 다닐 때 진주에서 박노정 시인의 소개로 채 이사장께 인사를 드린 적이 있었다. 양산에 학교가 있었지만 진주에 자주 오셨다. 부인(윤병희 경상대 명예교수)이 진주에 직장을 두고 있기도 했지만, 진주사람들도 그를 좋아했다.

그때 채 이사장을 만나면 사실 겁부터 났다. 늘 만나면 책 이야기를 하셨기 때문. 특히 서점에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책을 자주 거론하셨다. 대학생이니까 분명히 읽었을 것으로 알고 말씀하셨다. 채 이사장의 말씀을 듣기만 했고 대답은 늘 예만 했던 것 같다. 그런 다음 채 이사장이 언급했던 책을 사서 읽어본 기억이 난다.

효암고에 몇 번 놀러간 기억이 난다. 대학 선후배들이 그 학교에 교사로 있었다. 그때 채 이사장에 대해 들은 말 가운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게 있다. 대부분 사학재단은 전교조를 꺼리는데 채 이사장은 전교조 출신을 교장과 교감으로 채용하고, 교사를 채용하는데 돈 한 푼 안 받는다는 것.

대학 선후배들이 그 학교에 교사로 채용되었는데, 실제로 돈 한 푼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박노정 시인은 "교사를 소개해 주었더니 돈을 요구하기는커녕 좋은 사람 소개해 주어 고맙다며 밥을 사주시더라"고 할 정도였다.

한동안 채 이사장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1년 전 <한겨레> 인터뷰(2014년 1월 4일) 때 했던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노인 세대를 절대 봐주지 마라"라는 채현국 어록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1년 만에 채 이사장은 또 울림을 주었다. 김주완 기자(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가 그를 인터뷰 해 <풍운아 채현국>(도서출판 피플파워)을 펴낸 것이다. 이 책에는 거부(巨富)에서 신용불량자까지 거침없는 인생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한때 개인소득세 납부액 전국 열 손가락 안에 들어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김주완 기자는 네 차례 채현국 이사장을 인터뷰 해 그 내용을 풀어놓았다. 인터뷰에 앞서 그는 "절대 훌륭한 어른이나 근사한 사람으로 그리지 말라"는 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채현국 이사장답다.

사람들은 그를 가두의 철학자 맨발의 철학도 민주화운동의 든든한 후원자 이 시대의 어른 등이라 표현한다. 김주완 기자는 "그의 삶은 바람과 구름을 몰고 다녔고 지금도 그가 우리 사회에 던져준 울림은 계속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채기엽·채현국 부자는 1960년대 우리나라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거부였다. 아버지 채기엽(1907~1988)은 1952년 서울에서 연탄공장을 차렸고 1956년 흥국탄광회사를 설립했다. 채기엽은 강원도 사북탄광을 개발할 때 큰 일을 했다. 사북역 광장에 있는 채기엽 선생 공덕비가 이를 증명한다.

채기엽은 이후 무역·목축·임산·조선·해운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늘렸고, 경남대학교의 전신인 옛 해인대학이 기틀을 마련하도록 지원했다. 그후 양산시 웅상에 현재의 효암학원을 설립했다. 효암은 채기엽의 호다.

채현국 이사장은 서울대 다닐 때 탤런트 이순재(2년 선배)와 함께 연극반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도 연락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한 번 전화를 해서 이 자식, 알면서 전화도 한번 안 했냐고 하니 지금도 욕하는데, 뭐 욕 먹으려고 전화하냐 하더군"이라며 웃었다.

채현국 이사장과 인연이 깊은 문인, 정치인, 언론인이 많다. 채 이사장이 해직기자들과 계간 <창작과 비평>을 도운 사실은 어느 정도 연륜이 있는 언론계 인사나 문인이면 안다. 임재경(언론인)은 2008년 한 글에서 "친구들에게 밥과 술을 사주며 헤어질 때 차비를 쥐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셋방살이하는 친구들에게는 조그마한 집을 한 채씩 사주는 파격의 인간"이라며 "흥국탄광에서 일했던 친구들 중에 집 장만하는데 채현국의 신세를 진 사람은 숫자가 훨씬 여럿"이라고 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는 채 이사장은 정치인과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난 그런 데(정치판) 안 간다니까. 나는 친구가 해도 안 가요. 고형곤 선생 아들이 고건이라고 총리했습니다. 또 대학 동기생으로 곧잘 친한 서울대 총장 했던 이수성도 총리했는데 근처에도 안 가요. 그 자리에 있을 땐 전화 한 통화도 안 했어요. … 정말 권력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겁니다."

책에서는 울림을 던지는 말이 많다. 남은 인생에서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느냐고 물었더니 채 이사장은 "좀 덜 치사하고, 덜 비겁하고, 정말 남 기죽이거나 남 깔아뭉개는 짓 안 하고, 남 해코지 안 하고 …. 그것만 하고 살아도 인생은 살 만하지"라고 대답했다.

채 이사장은 "다양한 가치가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회,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는 계산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정치하는 사람, 권력 가진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그는 "그 사람들도 남의 말 전혀 안 듣는 사람들이죠. 이용하는 것 외에는 남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죠. 이용감이 아닌 남은 전부 귀찮은 존재들이야. 그런 놈을 내가 뭐하러 좋아해요"라며 "권력자나 정치가뿐 아니라 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성 있는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내 명성을 내주고 나에게 쩔쩔 매주는 사람 이외에는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나이 먹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이유?
 
채현국 이사장이 "나이 먹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농경사회에는 나이 먹을수록 지혜로워지는데,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지혜보다는 노욕의 덩어리가 될 염려가 더 크다는 겁니다. 농경사회에서는 욕망이 커봤자 뻔한 욕망밖에 안 되거든. 지가 날 수도 없고 기차 탈 수도 없고 자동차도 못 타니까 그랬는지 확실히 농경사회의 노인네는 경험이 중요했지. 지금은 경험이 다 고정관념이고 경험이 다 틀린 시대입니다. 먼저 안 건 전부 오류가 되는 시대입니다. 정보도 지식도 먼저 것은 다 틀리게 되죠. 이게 작동을 해서 그런지 나이 먹은 사람들이 지혜롭지 못하고 점점 더 욕구만 남는 노욕 덩어리가 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어버이연합 같은 완고한 노인들도 많지 않느냐"고 했더니, 채 이사장은 "그 사람들이야말로 제일 겁많은 비겁한 사람들로 보이거든요. 그 완고를 드러내는 게 이미 비겁하고 겁이 나서 그런 완고를 가장해서 꾸미는 거죠. 버러지 정도의 의지도 없기에 저렇게 추악한 걸 인정 못하죠. 용기가 있으면 자기가 그렇게 하면 추악해진다는 걸 인정할 줄은 알아야죠. 그 인정도 못하는 것 보십시오. 얼마나 용기가 없고 비겁한 사람들입니까"라고 말했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고 한 것에 대해, 그는 "생각해야 할 걸 생각 안 했고, 배워야 할 걸 안 배웠고, 습득해야 할 걸 습득 안 했고, 남한테 해줘야 할 일 안 했어. 저 사람들은. 매 순간 매 순간 안 했어. 젊은 날에, 열 살 때, 스무살 때, 서른 살 때 늘 해야 할 걸 안 했어. 남 배려해야 할 능력이 생겼을 때 남 배려 안 했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채 이사장은 "불쌍한 사람들이야. 자기 할 일을 안 하기도 했지만 잘못된 시절에 순전히 잘못된 통치자들에 의해서 잘못된 것만 하나 가득 배워가지고 저렇게 된 건데…"라며 "그 사람들 6․25 때 살인이 정의라고 해서 열심히 살인한 사람들이야. 그걸 생각해야지. 살인을 정의로 알고 살인한 사람들을"이라고 강조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웃대가리만이 아니라 그 웃대가리를 이용해 처먹는 집단. 조선조에 양반이라 하고 선비라는 그 집단. 성실하고 마음씨 좋은 놈들은 탈락했지만 나머지는 그 집단이 남아서 일제 때 재미를 봤거든요. 이 집단이 해방이 되고 나서 지리산 속에서 빨치산으로, 보도연맹으로 죽기도 하지만, 큰 덩어리는 또 이승만이 밑에서 그대로 해먹고, 북쪽은 북쪽대로 김일성이한테 붙어서 그래도 해먹고, 이승만이가 쫓겨서 축출 당하고 나니까 또 박정희한테 붙어서 그대로 해먹습니다.

이 집단, 자기네 대표는 언제 죽더라도 우리는 살 수 있다는 이 집단. 불특정인인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이것들은 지역과 학연과 혈연, 혼인까지 맺은 집단입니다. 약간의 변동이 있을 뿐이지 그 덩어리 전체는 동일한 것들로, 앞잡이 해먹고 이용해먹는 이 집단은 언론이 다루지 않는 한 위에 보이는 그것들에게 또 협조합니다. 위에 보이는 이명박이나 바라고 박근혜나 바라면 이 놈들을 또 살려주는 결과가 됩니다. 문제는 이 놈들입니다. 요놈에는 나도 끼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여기 끼니까 지금 이사장이라도 해먹잖아요."

채현국 이사장은 책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세상에 정답은 없다. 틀리다는 말도 없다. 다른 게 있을 뿐이다. 정답은 없다. 해답이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죽음이 불안과 공포라는데, 사는 것 자체가 불안과 공포 아닌가? 죽음이란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쉰다는 것이다."

원본 기사 보기:서울의소리
  • 도배방지 이미지

풍운아 채현국 도서 거부 신용불량자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