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식 일석이조’와 ‘인지부조화’

[광화문단상] 알고도 속는 어리석은 유권자 되지 말기를 바라...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8/02/29 [09:39]

‘이명박식 일석이조’와 ‘인지부조화’

[광화문단상] 알고도 속는 어리석은 유권자 되지 말기를 바라...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8/02/29 [09:39]
알고도 속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정말이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오는 태도를 일컫는 말이죠.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던 날 취임 일성을 들은 국민의 마음이 꼭 그랬으리라 생각됩니다. 연설을 들으며 기자는 ‘인지부조화’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서양의 커뮤니케이션 이론 중 하나죠. 결정 뒤 잘못을 깨달으면 자기합리화를 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죠. 그리되면 타인과 의사소통을 못하게 되고요.

‘한없이 자랑스런 나라, 한없이 위대한 국민’의 부름을 받았다고요. 그래서 이 대통령은 엄숙하게 감사하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국민을 섬기고, 경제를 발전시키고 화합하는 편안한 나라를 만들겠답니다. 지구촌에서 가장 가난했던 우리가 세계 10위권이 된 건 기적과 신화가 아니라면서요. 모두가 함께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라고 했을 겁니다.

제법 서사적입니다. 감동적 수사도 언뜻언뜻 보이죠? 한데, 곧 혼란스러워지고 말았습니다. ‘잃어버린 10년’ 때문에 나라가 멈칫거렸다는 대목이었지요? 그 기적과 신화를 재창조하려면 따르라고 할 때였죠. 전국토를 삽질하고 소수 기업·언론·군인에게 개발이익을 몰아주며 대드는 이를 혼줄 냈던 그 ‘10년 이전’의 시절로 돌아가자고 할 때요.
 
‘잃어버린 10년’과 의사소통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이 민주주의 때문에 무너졌다고 하고 싶었을까요? 한국 최고의 재벌 삼성이 개혁정치 때문에 ‘부패 재벌’이 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테지요? ‘투기망국병’과 ‘강남부자’가 집 한 채라도 가져보겠다고 허리 휘도록 땀 흘린 서민 때문이었던가요? ‘기러기아빠’와 ‘사교육열풍’을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만들었다고 하고팠을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사 관련기사 갈무리 화면.     ©인터넷저널


고학생이자 일용노동자였던 기업회장, 국회의원,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이 된 자신을 자랑할 때만해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하지만 정신 차리고 좇아오랄 때는 정말이지 아찔했습니다. 게을러빠지고 무능력한 국민에게 호통치며 새 정부의 선진화정책에 따르라고요? 불편법 가리지 말고 돈을 벌라는 거라면 모르겠지만요.
 
글로벌 스탠더드 이야기도 잘 꺼냈습니다. 획일적 관치교육, 폐쇄적 입시 때문에 인재가 배출되지 않는다고요? 영어 잘하는 미국 유학자 많이 만들자는 이야기지요? 그런 분들이 돈도 많이 버니까요. 이런 엘리트를 기를 교육체제여야 공교육이 살고 사교육이 죽는다는 것이지요? 재벌장관 같은 사람들 많이 만들자고 하면 이해가 쉬웠을 텐데 그랬군요.

궁금했던 ‘신성장동력’이 뭔지 알아챘습니다. 경제발전과 화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선진화의 묘약이 이거였군요. ‘국부의 원천’이 기업이니 누구도 기업에 딴죽이나 시비를 걸어선 안 된다는 것이었지요. 정부는 규제를 풀겠고, 노동자에겐 절대 투쟁하지 말라고요.

국토의 구조를 미래지향적으로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뭔 말인지를 모르겠어 귀 기울여 보니 ‘해양지향, 광역화추세’라고 했군요. ‘친환경, 친문화 기조유지’에 실마리를 찾아 곰곰이 유추해보니 대운하입니다. 지난시절 막개발의 유산이 미래지향사업으로 둔갑했군요.
 
‘글로벌교육’의 끝은 ‘재벌장관’
 
공공부문 개혁목소리도 나왔죠. 기업 돈벌이를 방해하는 공무를 없애자고 말했으면 더 쉬웠을 것 같습니다. 공무원도 줄이고, 규제도 없앨 수 있으니 ‘이명박식 일석이조’고요. 농림수산업도 1차산업으론 안되고 2·3차 산업으로 업그레이드하라고 그랬죠. 1차산업인 농·어업을 홀대한 것도 이유가 있었군요. 돈도 못 버는 데 기업이나 하라고요.

실용의 시대 이야기를 듣고서야 이명박 대통령의 본색을 알아챘습니다. 노사 동반자 시대, 낙오자 없는 세상, 양성평등의 세상, 소수자와 약자를 배려하는 세상이라고요? 낡은 이념의 시대를 넘어서야 한다고요? 실용의 시대엔 주택이 재산이 아닌 생활인프라라고 그랬죠? 문화와 환경이 산업이라 했고요.

이명박 대통령과 장관 내정자들은 진작부터 선진화사회이자 실용의 시대에 살았군요. 주택이 생활인프라니까 마누라(또는 남편)와 자식 명의로 여러 개를 전국에 사둔 거였고요. 서민들은 그 것도 모른 채 재산인 줄만 알고 한 채라도 가져보려고 발버둥을 처댔으니... 숭례문 개방도 이해가 됩니다. 청계천을 서둘러 뜯어고친 것도요.

솔깃한 말입니다. ‘실용주의’가 정말 이념과 거리가 있는 것이라 면요. 하지만 잘 들어보니 ‘시장만능주의’에 불과했군요. 부자의 세금을 줄여 주고 돈벌이를 자유롭게 하신다고요? 시장의 공정거래와 반독점규제를 하고 세금을 늘리며 부자들을 괴롭히는 걸 '좌파정책'이라고 욕했잖아요? 기껏 '우파정책'으로 혹세하려는 건가요? 이제는 누구나 아는 신자유주의로?

지구촌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기여하겠달 때 제법 감명도 받았습니다. 아시아 나라들과 고루 연대·협력을 하고 싶다는 표현도 맘에 쏙 듭니다. 하지만 한미동맹 이야기엔 좀 거북스럽군요. 기자 눈엔 지구촌 평화를 가장 위협한 세력 중 하나가 미국이었거든요. 이라크전쟁으로 수십만명이 죽은 건 아시잖아요. 미군 4천여명을 포함해서요. 부시가 거짓말로 시작한 전쟁인 것도 아실 테고.
 
‘실용주의’ 탈 쓴 ‘신자유주의’
 
북한이 10년안에 1인당 소득 3천달러를 벌 수 있도록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겠다고 했을 때 역시 다르다 싶었습니다. 돈을 많이 번 능력 있는 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통일은 없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한 인사를 통일장관으로 내정한 것은 수긍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이럴 때 언행불일치라고 하잖나요?

축하부터 해야 하는데 예의가 아니었죠? 뒷날 후회하지 않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취임사 내용으로 ‘따라쟁이 시비’를 걸어봤습니다. 그저 걱정만 많아서요. ‘인지부조화’를 겪는 유권자도 있는 것 같고요. 지지하신 분들 후회하지 않으려면 잘잘못을 잘 가려야겠군요. 알면서 속는 게 가장 어리석은 바보라고 하니까요. 취임을 축하합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 도배방지 이미지

광화문단상, 이명박 취임사, 실용주의, 인지부조화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