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 읊은 왕소군의 딱 그 마음[포토에세이] 박정희 요정서 늦깎이 봄맞이, 나름대로 화사하게점심 나들이에 늦깎이로 봄을 맞았습니다. 울긋불긋 곱고 예쁜 자태였습니다. 것도 모르고 난 왜 그리도 무심했는지 서럽고 한심하더이다. 지난겨울이 그리 춥고 길었던 모양입니다. 2천 년 전 춘래불사춘을 읊조린 미녀 왕소군의 딱 그 마음이었을까요?
컴퓨터 모니터 앞에 쪼그리고 앉았는데 점심 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따금 찾아와 호프 한잔씩 나누는 분이죠. 전 신문사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이기도 하고요. 20여 년 전 국가보안법을 피해 파리에 살며 10여년 교포신문을 냈던 언론인이죠.
제가 있던 신문의 파리통신원을 했는데, 국내에서 동포참정권 찾기 캠페인을 하며 관련신문을 내겠다고 자기 일을 제쳐두고 영구 귀국을 했죠. 그런데 세상은 참 몰인정 합니다. 싹을 틔우고 키워온 그 신문이 그를 내쫓았으니까요. 저와 동병상련 같은 게 좀 있지요. “세상은 참 몰인정 합니다” 삼청동 수제비집은 오늘도 만원입니다. 아실 테지만 이 집 맛 하나는 으뜸입니다. 20~30분쯤 줄을 서야 자리를 잡을 수 있을 정도니까요. 오늘은 운이 좀 좋았나봅니다. 담배 한 대 참 만에 자리가 났으니까요. 야들야들 부드러운 수제비 반죽솜씨 때문인 성 싶습니다. 서둘러 배를 채우고 길거리로 나서는데 날씨가 참 기가 막히게 요사스럽습니다. 사무실 곁 음식점에 쪼르르 달려가 후닥닥 먹어치우고 달려오기 일쑤였는데 좀 멀리 나오니 이리 다릅니다. 삼청각 구경 좀 하잡니다. 봄꽃이 활짝 피었을 거라면서요.
삼청터널을 지나 골짜기로 막 들어서니 벚꽃, 진달래가 벌써 활짝 피었습니다. 카메라를 꺼내 드는 데 또 여지없는 머피의 법칙입니다. 건전지가 죽었습니다. 휴대폰이라도 꺼낼까 생각 중인데 그분이 자기 카메라를 꺼내줍니다. 72년 남북회담을 위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었다는 삼청각. 국빈급 손님을 접대하고 박통자신도 즐겨 왔다는 그 요정. 청와대 지시로 중정이 지휘하고 현대건설과 군 공병대가 투입돼 몇 달 만에 지었다는 요정이 문화재 흉내를 내고 있으니 세월이 야속해집니다. 문화재 흉내를 내고 있으니... 건평 1천여평에 4층으로 지어진 일화당은 늘 거대한 궁궐입니다. 뜰이 좁아 고개를 드니 멀리 서울성 북문인 숙정문이 눈에 들어옵니다.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성곽은 꼭 어릴 적 마을 동구밖 길입니다. 화사하게 차려입은 벚꽃과 진달래는 이웃 순이 얼굴이고요.
일화당 앞마당 양편에 한 그루씩 서 우윳빛 보드라운 속살을 드러낸 목련은 풍상의 깊이를 간직한 채 말이 없습니다. 돌아 섬돌을 내려와 별채 한옥에 다가서니 제법 옛정취가 묻어납니다. 목재 건물로는 가장 멋져 보이는 천추당입니다. 배용준이 영화 촬영을 했다죠. 골짜기마다 연인들의 속삭임이 감미롭습니다. 사내들의 출연이 부담스런지 피하는 눈길도 있습니다. 풍채가 늠름한 팔각정(유하정)을 지나니 계곡이 기지개를 폅니다. 꽃·개울 구경을 하는 데 새들의 합창이 구성집니다. 연분홍 진달래에 빠져 늦깎이 봄맞이를 했고요. 육중한 담을 따라 여기 저기 피어난 개나리는 언제나 그렇듯 몽롱합니다. 노오란 꽃 잎 떨어지는 날 그 아래 누워 맘껏 취해보고 싶습니다. 막걸리라도 한 잔 있으면 더 좋을 테고요. 꽃잎 하나 띄워놓고 옛 요정 여인들이 애창했다는 권주가라도 부르면서요.
그 여인들의 권주가를 부르며 꽃은 시입니다. 송대 한 시인은 화무십일홍이라 했죠. 후세인들은 인불백일호, 세불십년장이라 덧붙였고요. 권력놀음이 빚어낸 유사 문화재에서 만난 봄은 그럴싸했습니다. 정치권에 때 아닌 박정희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때 말입니다. 며칠 안가 지고 말 것을 알 텐데도요. <저작권자 ⓒ 인터넷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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