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주민등록번호 변경 공개변론 열어

신청인 "개인정보결정권 침해" vs 행정관청 "사회적 혼란" 맞서

김규리 기자 | 기사입력 2015/11/14 [09:56]

헌재, 주민등록번호 변경 공개변론 열어

신청인 "개인정보결정권 침해" vs 행정관청 "사회적 혼란" 맞서

김규리 기자 | 입력 : 2015/11/14 [09:56]
▲ 12일 오후 서울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주민등록법 제7조 제3항 등 위헌소원 공개변론에서 박한철 소장 등 헌법재판관들이 카메라 취재 종료를 기다리고 있다.  

[시사코리아=김규리 기자] 불법 유출된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하고 싶지만, 이를 허용하지 않는 현행 주민등록법이 헌법에 반하는지를 심리하기 위해 헌법재판소가 12일 공개변론을 열었다.

헌재 전원재판부 심리로 이날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공개변론에서는 주민등록번호 변경 규정이 없는 것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주장과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헌재의 심판 대상이 되는 주민등록법 제7조 3항은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은 주민에게 개인별로 고유한 등록번호를 부여해야 한다고 규정하면서도 변경에 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앞서 강모씨 등 3명의 청구인들은 "인터넷 포털사이트 또는 온라인 장터 등을 통해 주민등록번호가 불법 유출됐다"며 각 지자체장에게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신청했지만 거부 당했다. 이에 서울행정법원에 변경신청 거부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각하 판결됐고 2심을 거쳐 현재 상고심이 계속 중이다.

이들은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지만 각하되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청구인 측 변호인은 "주민번호 유출로 2차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변경이 허용되지 않는 것은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40여년 전 입법 당시 신원 확인이라는 입법 목적을 정당화하기에 개인정보 침해가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국내 주민등록법은 1962년 6월 제정됐고 1970년 주민등록증 발급이 의무화됐다. 청구인 측은 이날 준비한 프리젠테이션에서 프랑스와 미국, 헝가리 등 해외 사례를 통해 외국에도 신분증 및 사회보장번호가 있지만 인적사항이 포함돼 있지 않거나 사회보장 서비스 등을 위해 제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구인 측 변호인은 "주민등록번호 도입 당시 사람에게 번호를 붙이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나이, 지역, 성별 등을 알 수 있는 고정불변적인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될 경우 각종 범죄에 악용될 수 있고 사생활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의 관련 대책은 더이상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일뿐 이미 유출된 정보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응을 내놓지 못한다"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로 인해 사회적 혼란을 우려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반박했다. 변호인은 "개명이나 도로명 주소 변경 사례 등을 봐도 혼란은 없다"며 "주민등록번호를 필수적인 만능열쇠라고 보는 것은 행정 편의를 위해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행정자치부 측은 주민등록법 조항이 헌법소원의 심판 대상으로 적격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행자부는 "위헌법률심판 제청에서 이미 각하된 사항"이라며 "법률의 위헌성이 아닌 입법 부작위를 다투는 내용으로 재판의 전제성이 없어 각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자부 측 변호인은 "주민등록번호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는 것인지, 변경이 불가능한 제도의 위헌성을 다투는 것인지도 명확치 않다"며 "주민의 거주관계 파악 및 행정 편의 등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대체 수단이 없다"고 밝혔다.

또 "유출 사실만으로 변경을 허용할 경우 개인식별기능과 본인 증명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며 "빈번한 변경으로 탈세나 신분 세탁 등에 악용돼 또다른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변론에 귀 기울여 듣던 헌법재판관들도 질문을 던졌다. 주민등록번호가 변경된 후에도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제기하자 청구인 측 변호인은 "개인정보를 연결하지 않는 임의방식으로 번호를 부여할 수 있다"며 "범용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반복적인 유출 문제는 훨씬 덜할 것"이라고 답했다.

또 사회적으로 주민등록번호 유출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이 높다는 지적에 대해 행자부 측 변호인은 "주민등록번호 창설 당시에는 입법자도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였을 것"이라며 "국민들 불안감을 인식하고 있고 일부 변경을 인정하는 법률안이 제출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정부입법으로 발의된 주민등록법 개정안이 도마에 올랐다. 개정안은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돼 재산 피해 등이 발생할 경우 주민등록번호를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행자부 측 관계자가 참석하지 못하면서 개정안 및 내부 검토 방안에 대한 논의는 이어지지 못했다.

참고인들도 각각 양측의 입장에 힘을 실었다.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 나선 이경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주민등록번호는 초기에 식별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그 기능을 넘어 복지 등을 꾀하게 됐다"며 "2100년이 도래하면 번호생성의 한계가 발생한다. 변경 가능하고 무작위번호 등을 사용하면 개인정보보호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행자부 측 참고인인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질서 유지나 공공 목적을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대체할 수단이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며 "행정서비스 목적에서 국민의 기본권이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헌재는 변론 내용을 참고해 해당 조항의 위헌 여부를 심리한 뒤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선고 기일은 추후 지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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