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소속 어디야? 프락치아냐?

촛불문화제 나온 시민들 조중동 보수언론에 극도 경계감 표출

임동현 기자 | 기사입력 2008/06/01 [03:49]

[현장] 소속 어디야? 프락치아냐?

촛불문화제 나온 시민들 조중동 보수언론에 극도 경계감 표출

임동현 기자 | 입력 : 2008/06/01 [03:49]
"혹시 지금 어디에서 오셨어요?”
 
31일 촛불문화제를 취재하면서 시민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명함을 내밀며 “저는 인터넷저널의 임동현 기자입니다. 저희는 조중동과는 달라요.”라고 말하며 동의를 구하곤 했습니다. 기자증을 목에 걸고 인터뷰를 요청할 때마다 소속과 이름을 밝히지만 시민들은 계속 제게 소속을 묻습니다.
 
“조중동하고는 절대로 인터뷰 안 할 겁니다. 그쪽 신문사는 정말 조중동하고 관련없어요?”
 
대학로 거리행진 사진을 찍는데 제 옆에 계시던 분이 또 이렇게 물어보십니다. “어디에서 오셨나요?” 당연히 저는 소속과 이름을 밝히고 명함을 드렸습니다. 분명 기자증을 보셨음에도 제게 질문을 한 것입니다. 명함을 받은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대로, 그대로 써 주실거죠?”
 
순간 놀랐습니다. 얼마나 조중동의 허위 보도에 시달렸으면, 얼마나 시위 현장을 생생히 보도하는 언론에 목말랐으면, 얼마나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제대로 비판하는 언론이 그리웠다면 저에게 그런 말을 물었을까요?
 
이런 안타까움에 ‘언론불신’과 관련된 기사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그 안타까움이 한꺼번에 몰려온 사건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밝히겠습니다. 시민들에게 제가 ‘프락치’로 몰린 겁니다.
 
졸지에 '프락치'가 된 기자
 
상황은 이랬습니다. 저녁 10시 경이었습니다. 동아일보 구 사옥 앞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전투 경찰들이 광화문쪽 길을 가로막고 시민들의 통행을 차단한 겁니다. 행진에 참여하려는 사람들도 난리거니와 집에 가려는 시민들도 발이 묶였으니 참 답답할 노릇이죠.
 
“왜 시민의 가는 길을 막냐?”, “집에 가자. 배고파 죽겠다” 시민들이 외쳐도 전경들은 요지부동입니다. “너희들이 택시비 줄거냐?”, “이 XX들, 집에 가는 길까지 막어?” 점점 시민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구호 소리도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시민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에서도 저는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찍었을까요? 갑자기 제 주위에 있는 몇몇 시민이 저에게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시민의 얼굴을 함부로 찍는 거예요? 당신 뭐예요?”
 
저는 당연히 ‘이분들이 좀 신경이 예민해져서 내가 기자란 걸 잘 몰랐을 것이다’라고 믿고 목에 걸고 있던 기자증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얼굴을 함부로 찍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요즘엔 사복 경찰한테 가짜 기자증 만들어서 달고 다니게 한다는데... 이거 완전 프락치아냐?”
 
순간 놀랐습니다. 난데없이 프락치 소리를 듣다니? 저는 너무 어이가 없어 기자증을 한 번더 보여줬건만 그분들은 믿으려하지 않았습니다. 다짜고짜 사진을 지우라는 것입니다. 명함을 드리기 위해 지갑을 꺼낸 순간 또 한번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뿔싸! 제가 가지고 있던 지갑은 하필 군인들이 쓰는 지갑이었습니다. 지갑을 꺼내자마자 나온 말은 “이 사람 프락치 맞네”였습니다. 지갑이 증명을 했다나요.
 
결국 저는 주변에 있던 경찰에게 신분조회까지 받았고 의심한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찍은 사진을 모두 지워야하는 ‘기자의 굴욕’을 당했습니다. “대치 상태이다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오해를 한 모양이다. 시민들 마음을 이해해달라”고 한 분이 양해를 구했고 저도 “이분들의 마음을 잘 안다”라고 말하고 자리를 빠져나왔습니다.
 
저를 의심한 분들, 다 이해합니다. 충분히 심정을 이해하고, 민감한 상황에서는 얼마든지 이런 반응을 보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분들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생각한 순간, 하루동안의 일들이 생각나며 왠지 모를 안타까움에 절로 밤하늘을 쳐다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부끄럽지만 이 글을 쓴 것입니다.
 
누가 젊은 시민을 '불신'에 빠뜨렸는지?
 
▲     © 인터넷저널

대체 무엇이 젊은 시민을 이처럼 ‘불신’의 늪에 빠뜨린 것일까요? 물론 젊은 사람들이 ‘오버’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저는 그 때 그분들의 눈빛을 보며 섣불리 그렇게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믿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광우병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말도 못 믿겠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말도 도통 못 믿겠습니다. 눈만 뜨면 ‘인터넷 괴담’운운하며 문화제를 폄하하는 조중동을 믿기도 싫고 문화제의 본질을 소홀히 한 채 시위 자체에만 집중하는 언론들도 믿기가 어렵습니다.
 
기자증을 달고도 기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계속 ‘조중동과 한패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현실, 그것은 그만큼 시민이 언론을 믿지 못한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감싼 조중동의 영역은 너무나 컸습니다.
 
자신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올바로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언론. 이것이 시민이 원하는 언론이었습니다. 비록 ‘굴욕’을 당했지만 저는 오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시민의 벗’인 언론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새벽입니다. 그럼에도 경찰의 물대포는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의 함성이 내일의 성공으로 이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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