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꽃보다 아름다워 누가 뭐래도"

[광화문단상] 상업주의인지 돈벌이인지, 그러다 2MB될라...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9/01/18 [02:02]

"생명이 꽃보다 아름다워 누가 뭐래도"

[광화문단상] 상업주의인지 돈벌이인지, 그러다 2MB될라...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9/01/18 [02:02]
크리스마스도 안 된 때였을 겁니다. 거실에 있는 난 하나가 진한 보랏빛 꽃을 피웠죠. '호접'인지 '덴파레'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서양란 중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우는 녀석입니다. 추위를 녹일 만큼 아리땁게 두어 달 자태를 뽐냈나 봅니다.

지난 주말 보니 늦둥이 하나를 빼고 대여섯 개 꽃잎이 축 쳐져있습니다. 시들은 게 보기 싫어 떼 내 버리려고 꽃대를 잡아당기는 데 글쎄 이 녀석들이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한 번 더 해봤는데 마찬가집니다. 생각을 바꿔 그만두었습니다.

제 눈엔 여태 꽃만 보였는데, 문득 생명이 보인 겁니다. 생명을 마감할 때가 덜 된 것이었지요. 어리석은 농부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씨를 뿌리고 여름내 가꿔 빨리 수확하고 싶은 마음에 이삭이 피자마자 어서 영글라고 뽑아놨다는 그 바보 말입니다.
 
"시든 꽃잎들, 떨어지지를 않아"
 
그냥 바보였다면 그나마 나았겠죠. 꽃잎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는데 시든 게 지저분하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외국인들에게 창피하다고 홈리스나 노점상을 눈에 안 띄는 곳에 쓸어다 버리는 우리 행정하고 꼭 닮았다는 생각에 얼굴이 다 화끈거립니다.
 
▲ 곱게 치장 한다고요? 젊어 한 창 고운 자태를 뽐낸다고요? 아름다움은 그 겉모습이 다가 아닙니다. 외로움에 쩔쩔매고, 슬픔에 비켜서지 않으며, 서로를 보듬고 사랑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죠. 꽃이 아름다운 건 길고 가혹한 겨울을 참아내고, 뜨거운 태양과 세찬 바람을 견뎌 마침내 피어난 생명이니까요.     © 최방식 기자



화분을 집안에 들이는 작자들이 뭐 별다른 게 있겠습니까? 꽃만 보려드니 화분 속 생명이 보일 리가 있겠습니까? 생명을 봤다면 꽃을 방안에 들이지도 않았겠지요. 꽃을 구경거리로만 여기는 눈에 원숙한 생명의 가치가 보일 리 만무했을 테고요.

바보스런 이야기 하나 더 할까요. 제 집엔 자그마한 수족관이 하나 있습니다. 애들 정서발달에 좋다고 처가에서 줘 열대어를 키웠죠. 번번이 죽이면서도 사다 넣기를 수십 번. 언젠가 생각을 바꿔 물고기가 죽으면 수족관을 치워버리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006년 말인가 이듬해 정초인가? 물도 갈지 않고 밥도 주지 않았습니다. 6개월 쯤 되니 거의 다 죽어나갔죠. 그런데 한 녀석만 이끼 가득한 수족관에 살아남아 있는 겁니다. 곧 죽겠지 하고 무관심하게 지냈는데, 글쎄 1년이 넘어도 끄덕 않는 겁니다.

지난 가을 결국 제가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 녀석 죽으면 수족관을 치우더라도 살아 있는 동안은 잘 보살펴야겠다고요. 하여, 지난 연말에는 때 하닌 수족관 청소를 하고 물을 갈아주었습니다. 기포발생기도 청소했죠. 같이 좀 더 살아보자고 기원하면서요.

제겐 생명 경외감이 없는 모양입니다. 제 멋대로 생각하고, 시원찮은 그걸 대단한 가치관인양 여기며 살아왔으니까요. 예쁜 꽃들을 집에 들여 혼자 보면서 지천에 핀 야생 들꽃과 식물들은 하찮게 여기면서요. 생명가치를 떠벌이며 생명을 죽이는 우스꽝스런 짓을 하면서요.
 
"예쁜 꽃, 저 혼자만 보겠다고..."
 
그러고 보니 노랫말 생각나는 게 있죠? 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입니다.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 사람/ ... 노래의 온기를 품고 사는 바로 그대, 바로 당신/ 바로 우리, 우린 참 사랑..."

좀 더 느껴볼까요. "강물 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알게 되지 음~.../ 내내 어두웠던 산들이 저녁이 되면 왜 강으로 스미어 꿈을 꾸다/ 밤이 깊을수록 말없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부둥켜안은 채 느긋하게 정들어 가는지를, 으음...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 본 사람은 알게 되지, 음 알게 되지/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 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 꽃만이 아니라 꽃을 피워낸 줄기, 잎, 뿌리도 아름다울 수밖에요. 꽃을 떨어뜨리고 남은 꽃대와 시들어 가는 꽃잎이 추한 게 아닌 것이죠. 20대 화려하게 피어나 미래세대를 생산하고 늙어가는 이들이 보기 싫거나 빨리 사라져버려야 할 대상이 아닌 것처럼요.  ©최방식 기자


곱게 치장 한다고요? 젊어 한 창 고운 자태를 뽐낸다고요? 아름다움은 그 겉모습이 다가 아닙니다. 외로움에 쩔쩔매고, 슬픔에 비켜서지 않으며, 서로를 보듬고 사랑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죠. 꽃이 아름다운 건 길고 가혹한 겨울을 참아내고, 뜨거운 태양과 세찬 바람을 견뎌 마침내 피어난 생명이니까요.

꽃만이 아니라 꽃을 피워낸 줄기, 잎, 뿌리도 아름다울 수밖에요. 꽃을 떨어뜨리고 남은 꽃대와 시들어 가는 꽃잎이 추한 게 아닌 것이죠. 20대 화려하게 피어나 미래세대를 생산하고 늙어가는 이들이 보기 싫거나 빨리 사라져버려야 할 대상이 아닌 것처럼요.

몇 해 전 바람이 들어 해외엘 좀 싸돌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1년여 좀 넘게 허튼짓 하다가 귀국하는 데 한 눈에 보이는 게 있었습니다. 우리가 너무 무뚝뚝하다는 것입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세대를 넘나드는 소통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을 요즘 일본에 이어 고령사회라고 합니다. 사람생명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죠. 싫어해야 할 일은 분명 아닙니다. 자연과 생명을 파괴하는 욕망덩어리로 보면 좀 그렇긴 하지만요. 하지만 노소간 말문을 닫고 사니 이런 불행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익스트림 코미디? 넋나간 사회"
 
분명 퇴행입니다. 텔레비전을 켜면 젊고 예쁜이들뿐입니다. 오락프로그램을 보면 출연자 나이가 많다고 타박하기 일쑵니다. 무르팍도산지 뭔지, '서른아홉', '마흔 넷'을 거듭 외치며 뒤집어지기까지 합니다. 20대 중반을 넘으면 노인네 취급을 해대니까요.

정말이지 눈 뜨고는 못 보겠습니다. 어서 죽으라는 것인지, 나이 들면 나서지 말라는 것인지? 하여튼, 방송 프로그램을 포함해 우리 문화가 나인 든 건 추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익스트림 코미딘지, 상업주의인지, 넋 나간 사횝니다.

생명을 이야기하다 고리타분한 나이이야기로 빠졌군요. 제발,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습성을 고쳐야 할 때입니다. 20년도 안 돼 멀쩡한 집 때려 부수고 재개발·재건축 난리고, 날이면 날마다 산 허물고 강 도려내며, 6개월도 안 돼 멀쩡한 휴대전화와 핑핑 돌아가는 PC가 구닥다리로 전락하는 세상이니... 어떤 생명인들 남아나겠습니까?

예뻐도, 추해도 생명입니다. 어린 생명도 나이든 삶도 소중합니다. 제 목숨이 소중하듯 하늘·강·바다의 생명도 귀중합니다. 저 하나 편히 살자고 딴 생명을 해치는 게 파렴치한 파괴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러니 인기 좀 더 끌어보자고 4대강의 생명을 죽이는 짓은 그만둬야 합니다. 돈만 보고 생명을 못 보면, 진짜 2MB로 전락할 테니까요. 뭍생명이 고요한 이 밤 잠못들어 부스럭거리는 철 덜 든 낱생명의 번민은 끝이 없나 봅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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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흔 2009/01/19 [16:57] 수정 | 삭제
  • 오늘 아침 방바닥에 아주 작은 개미 두 마리가 머리 맡에 나타난겁니다. 얼른 손톱으로 눌렀죠. 그런데 수초 후에 납작해진 두 녀석이 살아서 발발 기어가는 겁니다. 생명의 경외가 나타난 거죠. 그래 내일까지는 살아있어라! 후하게 인심을 썼습니다.
    새해부터 한 시인이 생목숨을 버렸습니다. 아직 시집 한 채 갖지 못한 그에게 시 한편을 낭송해 올리고, 등단 시 몇편과 함께 망자를 떠나보냈습니다. 무명의 젊은 연예인이 또 목숨을 버렸다는 인터넷 기사가 떴군요.
길거리통신, 꽃, 생명, 수족관, 2MB, 4대강, 대운하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