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들의 절망 랩소디 들리지 않나요"

[네티즌칼럼] 한겨울 철거민을 쥐잡듯 하는 나라의 자화상...

이영일 | 기사입력 2009/01/22 [00:38]

"민초들의 절망 랩소디 들리지 않나요"

[네티즌칼럼] 한겨울 철거민을 쥐잡듯 하는 나라의 자화상...

이영일 | 입력 : 2009/01/22 [00:38]

 이 가진 것 없이 조그만 나라가 지금과 같은 경제성장을 이루고 살고 있는 뒤안길에는 개발지상주의가 통치의 최대 지상과제였던 혹독한 권위주의 시대에 국가독재와 건설자본으로부터 핍박과 방임을 받으면서도 국가성장의 동력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 온 노동자들, 사회로부터 소외된 수많은 철거민들과 없는자들의 희생과 눈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정할 수 없는 통렬한 자화상을 새로운 희망강국의 진정한 모티브로 승화시키기 위해선, 있는자들의 넉넉함보다 없는 자들의 눈물을 먼저 더 살피고 화려한 재개발이 아닌 더불어 사는 재개발을 위한 상생적 정치관과 거버넌스(Governance)이념을 행정기조로 담을 줄 아는 정권이 필요하며 거기서부터 정당성을 갖춘 공권력의 사회적 동의와 계층간 갈등의 조정기능이 건강하게 작동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권력을 행사하는 정권과 힘있는 자들은 지나간 과거의 아팠던 기억을 송두리째 상실한 것처럼 기름진 오만과 풍요의 안락함에 빠진 주체할 수 없는 이기와 힘을 개발과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향해 물리적 압박수단마냥 휘두르려는 흡사 파시즘적 형태마저 보이고 있다.


 

20일 발생한 용산 철거민 참사는 개발논리 속에 그늘처럼 소외된 평범한 철거서민들의 주거이전 비용과 보상문제등을 살펴주고 따뜻하게 보듬어주기는 커녕 수수방관한 공공기관들과, 한겨울 새벽에 마치 그들을 전시상황의 적 또는 테러범 대하듯 힘으로 잡아들이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 단세포적인 경찰의 무능이 겹쳐 생긴 공권력의 미필적 고의(Dolus eventualis)에 의한 사망사건이다.


 

하지만 궁극적인 그 원인은 바로 국가 행정기관들이 없는자들을 보호하고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없게 하는 정권의 전반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마치 16년전 강기훈 유서대필조작사건을 보듯 이번 참사가 농성자중 누군가 고의로 방화했을 수도 있다는 발상을 하는 것이 여당 국회의원의 어이없는 시각이니 더 말할 나위 없다.


 

특히 경찰의 공권력이 대통령이 아닌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임을 망각한 경찰 수뇌부의 거듭된 강경일변도의 지시행태와 추모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일부 전경들의 훈련받지 못한 듯한 폭력적 대응태도는 이들이 국민 알길 얼마나 우습게 아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극명한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경찰은 아직도 불법적인 점거시위에 대응해 법과 시민들의 안전을 수호해야 했다며 정당한 진압이라는 입장을 정말 부끄럽지도 않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고가 난 용산4구역 재개발 추진구역은 이미 80%의 철거율이 진척된 곳으로 그들의 농성으로 안전에 위해를 받을 만큼 사람들이 많지 않은 곳이다.


 

게다가  망루에 시너와 인화물질이 있는 걸 알고서도 별다른 대책마련도 없이 진압에 임했다는 점, 철거민들의 생존 절규를 도심테러로 치부하고 농성 시작 3시간여만에 무슨 무장공비라도 때려잡을 기세로 경찰특공대 출동을 결정한 점, 시너로 불이 난 망루에 시너와 상극인 물을 뿌려대 불난 집 부채질한 격이 된 점등을 보면 화재 발생의 원인 공방과 상관없이 경찰은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는 셈이다. 김석기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재개발은 서민들을 위한 주거권 확보와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사회를 위한 것이지 있는자들의 투기와 건설사의 수익사업을 위한 것이 아니다. 생계를 위협받고 사회안전망에서 도태되는 소외인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의 맹점이 없는지 세심히 살피고 소수라도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피해를 입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정부와 지자체의 몫인데, 높은 건물 올리고 환경정비하는데 보상비 달라는 사람들은 몰아내면 된다는 식으로 사고한다면 그게 2009년을 살아가는 정권과 힘을 지닌 자들의 도덕성이라고 어디 부끄러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한겨울에 철거민을 쥐잡듯 하는 나라, 바로 절망의 랩소디가 분노로 흐느끼는 지금 이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경희대NGO대학원에서 NGO정책관리학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시절 총학생회장과 문화일보 대학생 기자로 활동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을 받은 후 한겨레전문필진, 동아일보e포터, 중앙일보 사이버칼럼니스트, 한국일보 디지털특파원,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참여정부 시절 서울북부지방법원 국선변호감독위원, 대통령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국무총리실 삼청교육피해자보상심의위원등 다양한 민간위원을 역임했다. 2015년 사회비평칼럼집 "NGO시선"과 2019년 "일본의 학교는 어떻게 지역과 협력할까"를 출간했고 오마이뉴스 등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평론가로 글을 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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