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부장판사 "임종헌 지시에 부담 느꼈다" 법정 첫 증언

정현숙 | 기사입력 2019/04/03 [10:05]

현직 부장판사 "임종헌 지시에 부담 느꼈다" 법정 첫 증언

정현숙 | 입력 : 2019/04/03 [10:05]

"양승태 비서실 성창호 부장, 수시로 대법원장 의중 전달"

 

재판 지연 전략을 펼치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 행정처장.  JTBC

 

사법농단 재판 첫 현직 판사 증인…"부담감 느꼈다" 

 

임종헌 전 법원 행정차장의 꼼수 지연 전략으로 장기화가 불가피한 사법농단 재판에서 첫 번째 현직 법관의 증언이 나왔다. 당사자는 의정부 지방법원 정다주 부장판사로 임종헌 전 법원 행정차장의 지시에 따르며 부담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2일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임종헌 전 차장의 공판에서 "조사 과정에서 사법부 권한을 남용하는 부분이 많았고 비밀스럽게 보고서를 작성해 부담을 느꼈다고 진술한 것이 사실이냐"는 검찰의 질문에 "그렇게 진술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관련 문건을 제가 작성한 것은 맞지만, 그것을 당연한 업무로 여기고 수행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는 임종헌 전 차장의 속행 공판을 열고 정다주 의정부지법 부장판사의 증언 심문을 진행했다. 


정다주 부장판사는 2013~2015년 법원행정처에서 기획조정심의관으로 일했던 인물로, 당시 기획조정실장이던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고 각종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재판에서 정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한 각종 문건을 작성한 사실을 인정했다. 

먼저 정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의 지시로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사건에 대해 선고를 내린 뒤 각계 동향을 파악한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털어놨다. 또 그는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상고법원 추진과 관련한 국회 동향,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민감한 사건에 대한 보고서 등을 작성했다고 시인했다. 

정 부장판사는 작성한 보고서 중 결재란이 없는 보고서의 경우 임 전 차장에게 보고한 뒤 법원행정처 차장, 처장 등에게도 보고했다고 알렸다. 다만 보고서에 담긴 청와대의 반응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제가 직접 청와대 근무자에게 이야기를 들은 바는 없다"고 설명했다. 

정 부장판사는 재직 당시 성창호 부장판사로부터 수시로 대법원장의 의중을 전달받았다는 증언도 내놨다. 성 부장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비서실에 근무했던 인물이다.


성창호 부장판사에 대해 정 부장판사는 "심의관들에게 각자 하는 업무를 보고하도록 독촉했고, 법원행정처의 실·국에 수시로 방문했다"면서 "심의관들과의 회의 석상이나 사석에서 대법원장(양승태)의 생각을 전달하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스모킹건 임종헌 USB 증거 채택.. ..법원 "압수수색 적법했다"

 

한편 검찰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확보한 USB를 법원이 증거로 인정했다. 임 전 차장 측은 검찰이 위법하게 수집한 USB라 증거로 쓸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압수수색 절차에 문제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는 2일 임 전 차장의 속행 공판에서 임 전 차장의 USB를 증거로 채택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진술로 USB가 사무실에 있음이 확인된 만큼 그 한도에 대해 사무실 압수수색이 적법하고, 공소사실과의 객관적 관련성도 인정된다"며 증거 채택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따라 USB에 담긴 법원행정처 작성 문건 중 임 전 차장이 동의하지 않은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향후 법정에서 증거 조사가 이뤄지게 됐다. 검찰은 지난해 7월 21일과 25일 2차례에 걸쳐 임 전 차장의 자택과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주거지 PC에 USB 접속 흔적이 나왔고, 임 전 차장이 사무실에 USB가 있다고 해서 사무실 압수수색에 이르렀다. 사무실에서 확보한 USB에는 임 전 차장 퇴임 전후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 8천600여건이 담겨 있어 이번 사건의 스모킹건으로 불렸다.

 

그러나 임 전 차장은 "검찰이 수색할 장소와 압수할 물건 등 영장 내용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사무실에 있는 USB 압수에 제대로 이의제기를 하지 못했다"며 위법한 압수수색이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 조력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USB 압수수색이 위법한 만큼 그 안에 담긴 문서들도 증거로 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압수수색 당시 임 전 차장에게 영장을 제시했고, 사무실로 이동한 것도 임 전 차장의 말에 따른 것이라며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임 전 차장이 수사 과정에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다가 재판 과정에서 위법 수집 주장을 펴는 건 재판을 지연시키려는 의도라고 꼬집기도 했다.

 

자신이 재판장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는 임종헌.. 불구속 재판 지연 전략 논란

 

사법농단 재판이 갈 길은 먼데 시작부터 가시밭길이다. 증인 채택 법관들이 갖은 핑계로 기피하고, 임종헌 전 행정처장도 기존 입장을 뒤집고 현직 판사 100여 명의 진술조서를 부동의 해서다. 우여곡절 끝에 이번에 현직 판사 첫 증언은 나왔지만  임 전 차장의 구속 만기일 안에 1심 선고는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2일 법원에 따르면 임 전 차장의 구속만기일은 오는 5월 13일이다. 1심에서 정하는 형사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로 정해져 있어, 재판부가 추가 기소 건에 대한 구속영장을 별도로 발부하지 않는 한 임 전 차장은 이후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되어 검찰은 임 전 차장이 의도적으로 재판을 지연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임 전 차장이 검찰에서 확보한 증거와 함께 검찰의 수사 방식 등에 대해 일일이 다투고 있다는 점도 재판 장기화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임 전 차장은 지난달 26일 검찰이 압수한 USB(외부저장장치)를 두고 2시간 동안 ‘검찰의 위법 수집 증거’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첫 공판 당시 검찰의 공소장에 대해 “검찰발 미세먼지로 만들어진 가공의 프레임에 의한 산물”이라고 발언하면서 검찰의 각종 수사방식 등에 대해서도 항변을 하고 있어 검찰도 뿔이난 상태다. 검찰은 재판부에 추가 기소 건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필요성을 적극 주장해 임 전 차장의 구속 상태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임 전 차장의 변론 행태는 일반 국민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마치 자신이 재판장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며 “앞으로 나올 증인들이 현직 판사인 데다가 임 전 차장이 그들의 상급자였던 만큼 여전히 구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

지법에서 열린 사법 농단 관련 속행 공판 출석을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 전 차장 측은 앞서 네 차례 열린 공판준비 단계에서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 7명만을 증인으로 부르기로 했다.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현직 판사들에 대해서는 “검찰의 진술조서에 바탕해 재판에 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공판 절차에 돌입한 임 전 차장은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현직 법관 100명 이상의 검찰 진술조서에 대해 부동의했다. 진술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현직 법관들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검찰 측은 “약 210명의 증인을 신문해야 한다”며 “증인신문 기일이 총 68차례 소요될 것으로 보여 집중심리가 필요하다”고 재판부에 밝혔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1심 재판이 집중심리로 이뤄졌음에도 증인 138명(중복 포함)을 부르는 데 350여일이 걸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임 전 차장의 1심 재판은 17주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

 

문제는 증인으로 출석해야 하는 이들인 현직 법관인 만큼 출석 날을 잡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미 증인으로 채택된 일부 부장판사는 자신들의 재판을 이유로 재판부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향후 증인으로 채택될 현직 판사들 또한 증인 출석에 즉각 응할지 미지수다. ‘재판이 1년을 넘기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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