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벗어나니 헬기·고함소리, 숨막혀요”

[포토에세이] 욕망·분노로 아픈 머리 막걸리 몇잔 들이키니 멎어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9/07/25 [00:04]

“숲 벗어나니 헬기·고함소리, 숨막혀요”

[포토에세이] 욕망·분노로 아픈 머리 막걸리 몇잔 들이키니 멎어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9/07/25 [00:04]
우후죽순이라더니 장맛비가 그친 숲속은 부산합니다. 햇볕과 공기, 물을 머금었으니 에너지를 맘껏 축적해야 할 때니까요. 삼복더위니 녹음이 짙을 땐데, 불볕을 막아주려는 섭리겠지요? 이토록 아름다운 숲속에 왔는데 왜 이리 숨이 막히는 줄 모르겠습니다. 고함소리, 헬기 굉음, 정말 미치겠습니다.

지루한 장마가 끝나가는 모양입니다. 사실 그리 길지도 않았습니다. 두어 주 소낙비에 불과했지요. 옛 장마와 좀 달랐습니다. 몇 주 쉬지 않고 오락가락 했던 그 장마가 아닙니다. 하루, 몇 시간 쏟아 붓는 게릴라성이라 하던가요? 장마와 재해도 속전속결인가봅니다.

장마에 숲 생명들이 무사한지 궁금했습니다. 주말 비와 일 핑계로 못 갔던 산성이 보고팠습니다. 숲 속 평화와 여유로움을 즐기고 싶었던 게죠. 늘 오르던 마천길로 수어장대에 올랐지만 좀 더 가기로 한 것이지요. 서문에서 남문까지 성곽순례를 감행했습니다. 내친 김에, 성남까지 고고씽...^^*
 
▲ 수어장대에서 남문으로 가는 성곽길. 짙은 녹음과 성가퀴를 따라 난 고즈넉한 길을 걷는 맛이 쏠쏠합니다.     © 최방식 기자
▲ 장맛비가 그친 성가퀴 담장 위에서 왕성한 생명력을 푸르디푸르게 펼쳐놓은 식생들이 찬란한 자태를 뽑내고 있습니다.     © 최방식 기자
▲ 장마가 그친 숲 속에 하얀 생명들이 막 피어 올랐습니다.     © 최방식 기자

 
마천에서 청량산을 오르는 길은 네다섯 개. 가장 길고 숲생을 만끽할 수 있는 등산로는 왼쪽 능선을 타는 1번 길입니다. 오늘 택한 건 이 노선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고요. 늘 1번을 타다 요즘 새로 알게 돼 애용하는 길이지요. 극좌를 비낀 좌익(?)노선이라고나 할까요?
 
장맛비 그친 남한산성엔...
 
검푸른 숲이 무섭다는 이들이 있습니다. 경외감의 표현이라면 기특하달 수 있습니다. ‘산사람’을 두고 한 말일 수도 있지요. 빨치산을 의미할 수도 있고 ‘산도둑’을 생각한 이도 있을 겁니다. 녹음이 짙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기에 한 말일 테지요?

하기야, 산속은 원래가 사람 사는 곳이 아니죠. 천(川)을 건너 구릉을 오르기 시작하는 곳부터는 이승이 아니거든요. 당연히 무서울 밖에요. 생태적으로도 벌판이 있고 물 많은 곳이 사람 사는 곳이죠. 숲 속은 인간을 뺀 동식물의 천국인 셈이죠. 인간이 침입해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파헤치거나 망가뜨리면 천벌을 받는 것이고요.

아버지·어머니, 할아버지·할머니처럼 평생 땅을 딛고 사신 분들은 천륜을 알죠. 하지만 일터가 공장이나 도심 거대한 사무실인 파괴형 인간들은 알 리가 없습니다. 산에 가면 불편할 뿐입니다. 어쩌다 한 번 가도 찻길에서 머잖은 곳에서 먹고 마시고 떠들다 오는 것이지요.

▲ 성곽을 따라 걷은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성가퀴 총안을 들여다 보는 겁니다. 시원한 바람이 등줄기 땀을 식혀주니까요. 운 좋으면 화려한 성밖의 식생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 최방식 기자

▲ 수분을 머금은 식생들은 작렬하는 태양 에너지를 허비하지 않습니다. 머잖은 이별을 기억하며 열심히 땀흘려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지요.     © 최방식 기자

▲ 남한산성 제일문인 지화문(남문)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합니다. 성남으로 통하는 관문이기도 하지요.     © 최방식 기자

 
불편하고 무서운 데니 가만두려고 하지 않겠죠? 도적떼가 살고, 빨치산이 다니는 불순한 데라고 하니 더더욱 그랬을 테고요? 허물고 파헤치려는 건 그 때문이겠지요? 숲이 좀 남아있어야 돈이 된다니 구색 맞추기로 그나마 좀 살려두는 것 아닐까요?

장맛비가 막 그친 숲은 싱그럽습니다. 산 길 여기 저기 하얀 생명이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화려한 자태를 보니 식용은 아닌 모양입니다. 표고버섯처럼 생긴 게 눈에 띄는 데 자신 없습니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도 표고·솔·싸리버섯 정도일 뿐입니다.
 
‘불순한 숲’ 가만 둘리 없지
 
늦잠을 잣는지 이제 막 순을 틔우는 식물도 있습니다. 작렬하는 8월의 태양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죠. 고운 새순도 피어납니다. 이별까지 이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서둘러 일하고 미련 없이 제 길을 가야할 인연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평일인데도 등산객들이 꽤 많습니다. ‘웰빙’ 바람 때문인가요? ‘참살이’라는 분들도 있습니다. 나이 지긋한 분들 건강을 위해 산을 오르내리는 것이지요.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부엌데기’ 신세를 면치 못했던 주부들도 많습니다.

▲ 그 멋을 드러낸 지화문.     © 최방식 기자

▲ 청량산 계곡 남쪽 능선으로 펼쳐진 계곡의 시원한 물줄기가 숲생의 갈증을 해결합니다.     © 최방식 기자

▲ 청량산 남쪽 능선 백련사 앞마당에 핀 꽃. 이름을 몰라 000이라 적어놓습니다.     © 최방식 기자

 
등산 쇠꼬챙이는 좀 조심해야 할 성 싶습니다. 나무뿌리, 흙을 가리지 않고 찍어대니 숲 생명을 죽일 수 있으니까요. 저도 가지고 다니는데 사용하지 않고 메고만 다닙니다. 노약자더러 버리라 할 수는 없고, 그저 좀 조심해 사용했으면 하는 마음뿐이죠.

수어장대에서 시원한 하늬바람에 잠시 몸을 맡긴 뒤 남문을 향했습니다. 앞사람을 따라 가다보니 성곽길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싫은 콘크리트길... 성곽로로 길을 바꾸니 그 정취와 맛이 되살아납니다. 서쪽·동쪽 성곽 길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숲이 깊습니다. 키도 크고 나무도 다양합니다. 남쪽이라 그런 것이겠지요. 이 쪽은 처음인데, 서울과 성남을 한 눈에 내려다보며 고풍스런 성가퀴를 따라 걷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 사이로 난 총안(銃眼)이라도 들여다보면 시원한 바람 한줄기 땀을 식혀줍니다.
 
“총안 하늬바람, 땀 식혀줘”
 
30여분 성곽을 따라 오르내리니 산성에서 가장 화려하고 큰 문이 나타납니다. 제 이름은 ‘지화문’(至和門)이고, 이른바 남문입니다. 성남으로 통하는 제일 관문이기도 하죠. 성문 밖에는 은폐(군사적)용 느티나무 서너 그루가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앙상합니다.

▲ 청량산 남쪽 자락에 세워진 소원탑들입니다. 한 분이 이 많은 탑들을 다 세웠다는 군요. 지성감천이라고 했는데... 소원을 이뤘겠죠?     © 최방식 기자
▲ 숲 생태계는 오묘합니다. 그루터기에 다른 나무가 뿌리를 내렸습니다. 숲생은 때론 경쟁도 하지만 이처럼 공존공생합니다.     © 최방식 기자
▲ 평화통일 기원탑들입니다. 지극정성을 바친 분이 궁금합니다.     © 최방식 기자

내친 김에 성남까지 가봅니다. 청량산 남쪽 숲이 더 보고 싶어서요. 숲이 어찌 깊은지 등산로가 캄캄할 정도입니다. 물도 훨씬 많습니다. 내려오면서 보니 약수터만 10개 남짓 되는 것 같습니다.

못 볼 걸 봤습니다. 경부 제2고속도로가 이 숲을 뚫(고가도로 또는 터널)고 지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군요. 곁에는 안타까움을 전하는 노란 리본들도 걸려있더군요. 숲을 싫어하는 파괴형 인간들의 음모가 청량산 남쪽 능선에 뻗친 것입니다.

성남 최고의 유원지라서 그런지 각종 시설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습니다. 산을 좋아해서 그런 것이려니 생각하고 싶습니다. 욕망과 쓰레기 배출구가 아니길 바랄 뿐이지요. 하지만 평화로운 생명들을 파괴와 상혼으로 전염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하산 길 또 하나 눈에 띈 건 돌탑이었습니다. 수백 개씩 세워놓은 자그마한 돌탑들이 서너 군데 모여 골을 형성하고 있더군요. 소원탑, 통일기원탑... 조성한 이의 이름은 같았습니다. 그 많은 탑을 쌓느라 고생했을 텐데 주인공이 궁금해지더군요.
 
 
▲ 썩은 나무 밑둥에 새 생명의 뿌리를 내린 버섯들이 백옥같은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 최방식 기자
▲ '파괴형 인간'들은 오늘도 아름다운 숲 생태계를 허물지 못해 안달이 났습니다. 제2경부고속도로가 뚫고 지나갈 자리에 안타까운 마음들이 노랗게 줄줄이 달렸습니다.     © 최방식 기자
▲ 청량산 남쪽 자락에 이렇게 아름다운 숲 생태계가 펼쳐져 있습니다.     © 최방식 기자

 
‘파괴형 인간’의 음모 뻗쳐
 
아파트와 건물이 시야를 가로막습니다. 숲을 벗어나려니 머리가 묵직해 옵니다. 평택 하늘의 헬기 굉음소리입니다. 여의도 어딘가에서 악다구니도 그치지 않습니다. 흐느끼는 소리,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맑았던 정신이 다시 혼미해져 옵니다. 시내 어딘가에서 들른 잔치국수 집에서 막걸리 몇 잔 들이켜니 그제야 두통이 멎는 듯합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 도배방지 이미지

  • 지나가다 2009/07/25 [12:04] 수정 | 삭제
  • 이열치열로 중복까지 다다른 제게 모처럼 편안하고 좋은 글이네요~
포토에세이, 남한산성, 남문, 숲생태계, 평택, 여의도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