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바빠서? 제 오욕이 부끄럽소"

[길거리통신] 김대중 전대통령 ‘행동하는 양심’ 유훈을 새기며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9/08/24 [11:55]

"먹고살기 바빠서? 제 오욕이 부끄럽소"

[길거리통신] 김대중 전대통령 ‘행동하는 양심’ 유훈을 새기며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9/08/24 [11:55]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막 보냈습니다. 몇 개월 사이에 전직 대통령을 둘을 보내려니 모두에게 좀 힘든 모양입니다. 생명은 늘 태어나고 사라지니, 어찌할 도리는 없습니다. 그저 좀 오래 살았다면 복 받았다 여길 뿐이죠. 비명에 갔을 때는 아파하고요. 하지만 어디에도 즐거운 장례나 이별은 없습니다.

김 전 대통령과 관련한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청와대에 들어가고 이듬해 대통령 인터뷰한다고 집무실에 찾아간 적이 있으니까요. 제가 편집국장을 맡고 있던 그 매체는 시민주를 모아 창간했는데, DJ가 5백여만원이나 투자했답니다. 주주가 대통령 됐으니 한번쯤 누릴 호사였죠.

▲ 서울광장 곁 전광판에 새겨진 근조 문구     © 최방식 기자

▲ 분향소를 찾은 이들. 맞이하는 이나 조문하는 이나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 최방식 기자

▲ 서울광장에 마련된 고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 분향소.     © 최방식 기자

▲ 즐겁고 기쁜 주검은 없습니다. 저승을 모르는 이들에게 죽음은 참담하기만 합니다. 몸으로 '행동하는 양심'을 가르쳐준 망자는 분명 선각자입니다.     © 최방식 기자


DJ는 우리 세대에게 애증이 교차하는 분입니다. 그 하나는 많은 이들이 꼽는 87년 후보단일화 실패의 기억입니다. 비교우위론, 비판적지지론 이야기도 이었습니다. 나름의 근거도 있었죠. 하지만 지역주의 앞에 진보(중도) 진영이 갈라지는 아픔은 참으로 컸습니다.
 
“주주 대통령 덕에 호사”
 
군부독재 종식을 염원한 모두에게 ‘표 갈림(분열)’의 결과는 참담했죠. 물론 두 후보의 표를 합치면 이길 수 있다는 단순계산에서 나온 지적이었죠. 하지만 두 후보의 차이가 지역·말투 빼고 그리 크지 않다고 여겼던 이들에겐 큰 좌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또 하나는 1992년 DJ의 패배였습니다. YS가 보수정치권과 야합을 했고 그에 맞선 선거였기에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조금 덜 보수화된 중도정치를 바랐던 유권자들은 다시 좌절감을 맛봐야 했습니다. DJ보단 지역주의에 기댄 유권자가 더 원망스러웠다고 해야 옳을 성 싶습니다.

정적에게 패하고 정계은퇴. 그리고 다시 돌아온 DJ. YS가 걸었던 길과 유사한 지역연합 으로 마침내 청와대에 입성한 그를 보고 놀라워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중도좌파 정권의 창출은 나름의 큰 기쁨이었습니다. 평화적 정권교체도 뜻 깊었고요.

▲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분향소에 고인의 오랜 시민사회 지원자였던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씁쓸한 미소 속에 아픔이 묻어납니다.     © 최방식 기자

▲ 평생을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남북화해를 위해 바친 고인에게 다들 할 말이 아직 많은 모양입니다.     © 최방식 기자

▲ 분향소에 가면 모두는 말을 잃습니다. 생각은 많은데... 그래서 펜을 드는 게 의사전달에 더 수월할 때가 많습니다.     © 최방식 기자

▲ 꼬마숙녀들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주검을 대하면서 어린이들은 크게 성숙하죠. 인륜을 알아간다고 해야 할까요?     © 최방식 기자


DJ에 대한 애증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탁월한 경제정책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고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극대화된 것을 두고는 여전히 논란거리입니다. 남북화해·협력을 이끌어내고 중국·일본 등 주변나라들과 지역 다자외교 채널을 만든 건 소위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미래지향적 리더십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봅니다.
 
DJ를 향한 두 개의 시선
 
DJ는 고난을 딛고 마침내 꽃을 피워낸 것입니다. 너무 큰 기대를 했던 이들에겐 조금의 실망을, 탐탁찮게 여겼던 이들에겐 예상 밖의 열매를 가져왔습니다. 민주화와 인권향상의 초석을 다졌고, 평생 외쳐왔던 중소기업·소농 등 서민 삶의 질을 높이려고 노력했던 그였습니다.

민족주의적 중도(조금 왼쪽) 정치인으로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격 미달의 측근 정치인들과 자식들의 비리연루는 그를 시기·질투하는 세력에게 꼬투리를 제공했습니다. 지역주의에 기댄 수구·기득권세력은 기회를 놓칠세라  대반격을 시작했고요.

하지만 그는 후임 정권 창출에 성공했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소중하게 키울 자양분을 만들어놓고 역사의 뒤안길로 조용히 내려섰습니다. 여러 차례의 죽을 고비와 수십 번의 옥중·가택 연금을 이겨내고 마침내 ‘인동초’를 피워낸 노정객의 삶은 그래서 누가 봐도 훌륭한 것입니다.

▲ 고인의 저승가는 길에 많은 이들이 위로하겠다고 길거리로 광장으로 나왔습니다. 아이들까지 데리고서...     © 최방식 기자

▲ 고인의 혼 앞에 향을 사르며 산자는 다짐합니다.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 최방식 기자

▲ 푸른 눈의 신사도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기억하고 있을까요?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     © 최방식 기자

▲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 역사앞에 그리고 산자와 죽은 자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다고.     © 최방식 기자


흠결이 없는 이가 세상에 누가 있으리까? 그토록 미워했던 ‘지역주의’도 곰곰이 생각해보니 고인의 흠결만은 아닙니다. 바로 나, 그리고 지역주의에 안주하거나 기생해온 유권자 모두의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고인만 탓할 수 있겠습니까? 고인이 가고 없는 마당에 이런 회한인들 또 무엇하리까?
 
두 전직 대통령의 ‘육보시’
 
이별이 못내 아쉬웠나요? 고인이 더 그립습니다. 이승을 뜨기 직전까지도 ‘행동하는 양심’을 주문했던 유훈이 가슴을 짓누르는 군요. 민주주의와 인권을 후퇴시키고 부자들의 천국을 만들려는 권력과 금권의 시대를 살면서도 ‘먹고살기 바쁘다’며 광장을 우회하는 제 모습이 싫어지는 때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통한 주검 앞에선 내 반쪽이 무너져 내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정권의 역사 거꾸로 돌리기 앞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했습니다. 지난 수십년간 피로 키워온 소중한 가치를 나서서 지켜야 한다고... 그리고 남은 반쪽을 내놓았습니다.

두 전직 대통령은 분명 ‘육보시’를 한 겁니다. 역사 앞에 제 몸을 던져 ‘행동하는 양심’의 길을 알려준 것이죠. 그 덕에 그간 보이지 않던 게 우리 눈엔 보이기 시작했고요. 아, 그러니 비명에 간 후배나 천수를 누리다 뒤따른 선배 대통령 모두 나에겐 선생이 됐군요.

▲ "이제 누가 있어 그른 것을 그르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고인들이여 힘을 주소서.     © 최방식 기자

▲ 김대중 전 대통령이 73년 박정희 수하들에게 붙들려 수장될 뻔한 위기에 구명에 앞장섰던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 와다 하루키 교수.     © 최방식 기자

▲ 전통 예복(상)을 입고 서울광장 분양소를 찾은 한 조문객.     © 최방식 기자

▲ 잘가요. 영면하시어요. 이승의 일일랑 산자들에게 맡겨두고. '행동하는 양심' 꼭 기억할게요.     © 최방식 기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습니다. 저승을 모르니 이승에 애착을 갖는 건 당연지사... 그러니 하나같이 제 몸을 사리는 것이지요. ‘빨리 죽고 싶다’는 말도 천하의 거짓말이라고 하고요. 그러니 몸을 던진 이들에게 우리는 늘 배우지요. 깨달음, 그리고 실천이 나보다 빠른데 감탄해서요.

"선생 앞에 옷깃을 여미자"
 
주검 앞에서 희로애락을 말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생각하는 산 자들이여, 제발 옷깃을 여미자. 역사에 몸을 던지고 불사른 망자 앞에서, 이젠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 혼 앞에서 제 오욕을 부끄러워하나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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