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 술 먹기’, 이젠 그만 두려고요

[길거리통신] 술만 취하면 병 집어들고 ‘말 상처’ 주는 고질병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9/09/02 [11:52]

‘폭력적 술 먹기’, 이젠 그만 두려고요

[길거리통신] 술만 취하면 병 집어들고 ‘말 상처’ 주는 고질병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9/09/02 [11:52]
올 여름엔 사는 게 왜 이렇게 팍팍한지 모르겠습니다. 두 전직 대통령과의 이별 때문이라고 하고픈데 괜한 핑계 같습니다. MB정권의 후진주행과 ‘말 따로 행동 따로’가 불쾌지수를 크게 높이는 모양이고요. 술 좀 작작 마셔야 할 제가 술병을 끼고 사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술은 즐겁게 먹어야 할 성 싶습니다. 아니면 다치니까요.

올 여름휴가는 사실상 포기했었습니다. 진작부터 ‘방콕’을 생각 중이었으니까요. 한데, 그 놈 술 땜에 또 말썽이 생겼습니다. 술기운이 돌면 사람들이 그리워지는 건가요? 취중 전화질이 올 여름 최악의 악연을 만들어내고야 말았습니다. 에효 ㅠ.ㅠ

▲ 쪽빛 하늘에 금이 갔습니다. 동해안 어딘가에서 취중에 문득 올려다본 하늘입니다.     ©최방식 기자

▲ 시간여행은 즐겁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햇살 가득한 지중해 어딘가에 와 있는 느낌처럼.     © 최방식 기자


시민사회 네트워크 미디어에서 일하던 시절 맺어진 이웃들이 있습니다. 동해안 어디쯤에 살죠. 늘 그리운 분들입니다. 가족을 데리고 휴가도 가곤 했죠. 하지만 네트워크가 깨지고 구성원들이 흩어지면서 좀 소원해지기도 했습니다.
 
취중 전화질이 만든 ‘최악 술자리’
 
핑계를 더 대자면, 민생고를 해결하느라 좀 바빴다고나 할까요? 예전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어쩌다 만나면 반가워 술이나마 죽도록 마시곤 했죠. 그도 안 되면 취중 전화기 붙들고 그리움 타령을 하기도 했고요. 한데, 그 놈의 전화 한통이 말썽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 여름 사나흘 ‘방콕’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입니다. ‘절친’이 그리웠거나. 결국 술자리 통화로 악연이 시작됐습니다. ‘방학이 끝나기 전 한 번 봐야 할 텐데...’ 넋두리가 그만 ‘낼 보자’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술자리 대화는 늘 번갯불에 콩 굽기죠.

▲ 바다로 난 길엔 쓸쓸합니다. 마주오는 이가 없기에... 술마신 뒤 밀려오는 회한처럼. 저 길 끝에 와닫는 파도처럼...     © 최방식 기자

▲ 바다가 그리운 건 일렁임 때문입니다. 멀리 뱃고동은 희망입니다. 기약이고요.     © 최방식 기자


초간편 여름여행이 시작됐습니다. 하룻밤 새 그리운 이도 보고 술도 한 잔 마실 겸해서요. 고속버스를 타고 4시간여. 보고팠던 분들을 만났고, 마침 저녁때다 보니 바로 술자리로 이어졌지요. 하지만 늘 그렇듯 술판은 금방 끝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술자리에 늘 따라다니는 ‘폭력적 술 마시기’ 때문이죠. 술꾼들이야 과음하다보면 누구 할 것 없이 실수하고 사고치기 일쑤죠. 한데, 우리들의 폭력적 술 마시기는 좀 다른 유형입니다. 술을 마셨다하면 늘 같은 불편과 갈등을 되풀이 하지요.

절친 사이 그리움도 곧 시비로 돌변합니다. 왜 그런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내재한 불만을 터뜨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맨 정신에는 말을 않다가 술기운을 빌어 폭발시키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내성적인 이들이 화나면 더 무섭다고 하 듯이요.

▲ 뭍의 단단한 바위가 하얀 속살을 드러낸 채 파도의 속삭임에 가만히 제 몸을 맡깁니다.     © 최방식 기자

▲ 바닷바람을 따라 한적한 오솔길을 거닐다 보면 파도가 전해주는 그리움이 한 가득 실려옵니다.     © 최방식 기자
 

절친 그리움도 순식간에 시비로
 
술잔이 쉴 틈이 없습니다. 죽어라 단숨에 들이켜 댑니다. 별 말도 없이. 금방 취할 밖에요. 그 다음은 뻔합니다. 중언부언, 곁에 있는 사람 상처주기... 술자리에서도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천지차이’인 셈이죠. 그러니 취하면 곁에 있기가 여간 고된 게 아닙니다.

술 취해 점잖고 상냥한 이가 어디 그리 많겠나이까? 보통은 반갑고 즐거워서 수다 떨며 술을 즐기고, 그러다 취하면 목소리가 커지고 어쩌다 시비에 빠져들기도 하지요. 가끔은 필름이 끊겨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요.

하지만 문제의 술버릇은 그 종류가 좀 다른 겁니다. 말이면 말, 행동이면 행동, 이 모든 게 너무도 폭력적이기 때문이죠. 순식간에 취해버리고 나면 그 다음부턴 술자리가 정말이지 불편하기만 합니다. 흥겨운 대화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습니다.

▲ 오래전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기다림 하나가 바닷가 고즈넉한 곳에 눌러 앉았습니다. 망부석이 되어. 바다 거북이 되어.     © 최방식 기자

▲ 파란 나라입니다. 꿈 하나가 일렁임을 타고 들어오면 동해 작은 마을엔 제법 큰 잔치가 열립니다.     © 최방식 기자


절친이라면 사실 즐겁게 술을 마시고 흥겹게 잡담하고 싶죠. ‘폭력적 술 마시기’는 그런 기대를 순식간에 깨버리고 맙니다. 술 마시면 병을 집어 드는 이들, ‘말 폭력’으로 상처를 주는 이들, 취하면 영 딴 사람이 되는 이들과 더 이상 술을 마시고 싶지 않습니다.

지킬과 하이드를 연상시키는 폭력적 술꾼. 물론 이유가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치유할 사회적책임도 크다고 믿습니다. 술 마실 때마다 개인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하기엔 너무 힘드니까요. 즐거운 술자리를 그렇게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고요.
 
‘지킬과 하이드’와 폭력적 술꾼
 
우울한 여름이나마 벌써 끝나갑니다. 뜬금없이 ‘폭력적 술 마시기’ 이야기를 하려니 좀 거시기 하군요. ‘너나 술 좀 작작 마시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고요. 이런 때는 이른바 ‘절친노트’라도 필요한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어색한 설정이 죽기보다 싫기는 하지만요.

▲ 길은 거기서 그쳤습니다. 초록 꿈이 햇살을 받아 부서지는 그 곳. '진입금지'입니다.     © 최방식 기자

▲ 어촌 한적한 버스터미널. 오는 이도 가는 이도 없습니다. 빈 의자만 우두커니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지도록...     © 최방식 기자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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