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문(白首文)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연재] 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 피다' 푸른 늑대의 후손(3-1)

이슬비 | 기사입력 2017/03/01 [11:17]

"백수문(白首文)은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연재] 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 피다' 푸른 늑대의 후손(3-1)

이슬비 | 입력 : 2017/03/01 [11:17]

3장 푸른 늑대의 후손(1)
  

 
새로운 글자를 익히는 것은 무엇보다 어렵고 힘든 일일 것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글자를 배우고 익히는 것은 머리가 다 큰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이제 막 일곱 살이 된 서란에게는 오죽이나 어려운 일일까.
유흔은 서란이 , , , 네 글자를 익히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서란은 , , , 네 글자를 익히는 것이 어려운지 자꾸만 입으로 글자를 외우며 글자를 쓰다가, 백수문(白 首 文)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거냐고 짜증을 내며 빈 종이에 붓으로 선을 찍찍 긋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천지현황(天 地 玄 黃). 하늘은 누렇고, 땅은 검다. 하늘은 천(), 땅은 지(), 검음은 현(), 누름은 황()…….”
 
어느덧 서란의 발치에는 서란이 글자들을 적은 종이와 붓으로 선을 찍찍 그어버린 종이가 수북이 쌓여 나뒹굴고 있었다. 그러나 유흔은 서란이 글자들을 익히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그저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유흔은 사람이 배우고 익힌 것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혼자 애를 쓰며 익히는 과정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과정에 섣불리 끼어든다면 그것은 배우고 익히는 사람의 주체성을 파괴하고, 더 나아가 혼자 애를 쓰며 익히는 노력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만들리라는 사실 또한 유흔은 잘 알고 있었다.
 
히잉. 너무 어려워…….”
 
서란이 글자가 너무 어렵다며 한숨을 토했다. 그러나 유흔은 서란을 다그치지도, 도와주지도 않았다. 그저 서란의 벼루에 물이 마르기 시작한 것을 보고는, 시종을 불러 연적에 물을 떠오게 했을 따름이었다.
 
먹을 갈아 먹물을 만드는 데에는 보통 한 시진 정도가 걸렸다. 그 동안에도 서란은 글자를 익히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고, 유흔은 먹을 가는 사이사이에 시종을 불러 서란의 발치에 쌓인 종이들을 치우게 했다.
 
하하하. 알파벳을 배우는 것이 참 많이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멈칫. 유흔은 자신도 모르게 먹을 갈던 손을 멈추었다. 잠시 넋이 나간 것일까. 정처 없이 흔들리는 유흔의 눈동자와 함께 유흔의 손에 쥐어져 있던 먹이 스르르 미끄러져 내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유흔은 자신도 모르게 벼루를 엎지르고 말았다.
 
어서 이것을 치워라.”
 
설렁줄을 잡아당기는 소리에 달려온 시종이 마룻바닥에 엎질러진 벼룻물을 걸레로 닦아내고, 벼룻물이 묻은 종이와, 탁자에 깔린 비단을 걷어내 가지고 갔다. 유흔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절대로 서란에게 에 대한 것을 알게 해서는 안 되었다.
 
유흔, 왜 그래?”
, 아니야,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기는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벼루를 엎지르고 그래. ? 유흔,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계속 그러네.”
아무것도 아니기는. 아무것도 아닌데 고개는 왜 돌리는 건데? ?”
 
서란의 얼굴이 유흔의 고개를 집요하게 따라왔다. 유흔은 하는 수 없이 서란 몰래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어 눈물을 짜냈다.
 
, 아니야.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눈에 먼지가 들어갔는지 계속 눈이 아파서 그래. 이것 봐. 눈이 아파서 계속 눈물이 나오잖아. 그렇지, ?”
 



알파벳을 배우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꼬부랑글자들을 읽고 쓰는 법을 배우고 읽히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 유흔을 헷갈리게 했던 것은 가림토 문자나 한자와 달리, 알파벳에는 인쇄체필기체가 따로 구분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니요. 이것이 인쇄체 소문자 에이이고, 이것이 인쇄체 소문자 비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
그리고 이것은 필기체 소문자 에이가 아니라, 인쇄체 소문자 큐입니다.”
…….”
또 이것은 인쇄체 대문자 엑스가 아니라, 필기체 대문자 엑스입니다.”
…….”
이렇게 매일같이 하나하나 다 틀리니 어찌 저의 가르침을 따라올 수 있겠습니까?”
 
의 가르침을 따라가지 못하고, 꼬부랑글자들과 씨름을 하는 동안,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매일매일 사선지라고 불리는 공책에 꼬부랑글자들을 써가며, 유흔에게 똑같이 따라 읽고 쓰게 하는 의 표정에는 점차 피로감과 실망감이 짙게 드리워져 갔고, 그런 의 표정을 바라보는 유흔의 눈에도 점차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짙게 드리워져만 가고 있었다.
 
아니요, 이것은…….”
 
어느덧, 유흔이 에게 알파벳을 배우기 시작한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날도 는 사선지에 꼬부랑글자들을 써가며, 유흔에게 똑같이 따라 읽고 쓰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흔은 그날따라, 자신도 모르게 북받치는 화를 참지 못하고 공책을 찢어버리고 말았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대답 대신, 유흔은 ;의 금빛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제화족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밝은 황금빛 머리카락이 유흔의 갈색 손에 붙잡혀 더욱더 신비로운 빛을 내고 있었다.
 
.”
 
……? 유흔의 입에서 처음으로 불린, 경박스러운 호칭에 의 양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유흔은 애써 그 사실을 모른 채하며, 목소리를 높여 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가르쳐주려면 똑바로 가르쳐줘야 할 것 아냐!”
 
가르쳐주려면 똑바로 가르쳐줘야 할 것 아냐……? 그렇다면 자신이 여태 똑바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말인가? ‘가 마치 들어나 보자는 듯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유흔의 앞에 유리처럼 투명한 푸른 눈을 들이밀었다.
 
그 면상 좀 치워. 정말 돌로 으깨고 싶으니까.”
 
유흔의 입에서는 점점 더 험한 말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사선지에 글씨를 쓰던 펜촉을 세워 유흔의 손등을 쿡 찔렀다.
 
여기까지입니다. 더 이상의 무례는 참지 않겠습니다, 유흔.”
참지 않으면 어쩔 건데……?”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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