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웬왕도 훼에 서니 전쟁이 코앞인듯”[동남아일기35-베트남] 쌀쌀한 고도를 행인처럼 지나다 문득...중남부 지역의 해양도시인 냐짱(Nha Trang)을 떠나 버스로 16시간을 달려 중부 지역의 훼(Hue)에 도착한 지 3일째. 그동안 겪지 못한 쌀쌀한 공기가 나를 맞이했다.
그동안 더운 곳만 돌아다녀 몸이며, 옷이며 이런 날씨에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 조금 당황스럽다. 어제 옷을 사러 시장에 갔는데, 젠장, 명절이라 문을 닫았다. 쯥. -,.-;; 갖고 있는 옷을 여러 겹 껴입었건만 충분치 않다. 아, 손·발 시려… 웬 추위, 아 손발 시려... 도착한 날부터 안개비가 흩뿌리더니 떠나는 오늘까지도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현지인에게 물으니, 이번 주 내내 날씨가 이렇단다. 날씨 흐리다고 못 돌아다닐 내가 아니지만, 다만, 젖은 옷이 잘 안 마르니, 그게 좀 신경쓰일 뿐…
어제 거의 6시간을 걸었다. 숙소로 돌아올 때 쯤 되니, 현기증이 살짝 느껴질 정도. 너무 쉬지 않고 걸었다. 잠시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며 쉬어가도 될 것을, 왜 그렇게 무식하게 걸었는지… 그렇게 오랜 시간을 쉬지 않고 걸었는데도, 내 걸음이 너무 느려서인지, 구시가지의 동남쪽 지역밖에 못 둘러봤다. 헐~ 훼는 19세기~20세기 초까지 베트남의 응웬(Nguyen)왕조의 수도였던 곳으로 황궁은 현재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베트남전쟁 당시 남베트남의 최북단 지역으로 양진영의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불과 200년 전 건축물임에도 왕궁의 대부분의 목조건물은 소실되고 성곽은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훼에서 하루일정으로 DMZ 투어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는데, 다녀온 여행자에 따르면, 아직도 남아 있는 지뢰 때문에 버스 밖으로 나가 걸어다닐 수가 없었다고 하니, 30년 전 전쟁이 내 코앞에 다가와 앉아 있는 것 같다. ‘웰컴 투 동막골’ 떠올라 베트남전 당시 북베트남의 군의관으로 다낭(Danang) 인근 덕포(Duc Pho) 전선에서 복무했던 당 뚜이 트램(Dang Thuy Tram)의 일기를 읽었는데, 그녀가 일기에서 전했던 전쟁의 긴박감과, 이념과 인간적 욕망 사이에서 외롭게 자신을 닦아 세우던 고독한 모습이, 지금 창밖에 소리 없이 흐리게 흩뿌리는 안개비처럼 다가오는 듯하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이 떠오른다. 사람들의 소망은 참으로 단순한 것인데… 그녀의 외로운 모습이 영화와 오버랩 되니,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그녀는 하노이에서 의대를 졸업하자마자 25살의 나이로 중부전선으로 배치받아 2년 동안 군의관으로 있다가 1970년 6월 22일 미군과의 총격전 중에 사망했다. 그녀의 일기는 한 미군이 가지고 있다가 35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으며, 2005년 처음 책으로 출판됐고, 2009년엔 베트남에서 영화로 만들어졌다.
오랜 고독이 흩뿌리는 전선... 냐짱에서 이틀, 훼에서 사흘. 뭔가를 느끼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나에겐.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기에, 실망하는 것도 없지만, 그저 짧은 시간이 아쉬울 뿐이다. 그저 지나가는 행인처럼 그렇게 베트남의 중부지역을 지나간다. 다음 주 초에 후원하는 아이를 만나러 다시 다낭으로 내려오게 되면, 조금 더 느낄 수 있으려나. <저작권자 ⓒ 인터넷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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